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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0:1~9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 2020. 10. 7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5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 1)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시편 20편도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5절을 보면 다윗이 자신을 객관화 시켜서 너라는 표현을 합니다. 이런 표현은 자신을 객관화 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왕의 승리를 기도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6~9절은 나와 우리로 고백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용은 백성들이 다윗 왕의 승리를 기도하는 내용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다윗의 왕이신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승리를 찬송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승리하기를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들어주시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하나님의 이름이입니다. 1절에서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그리고 5절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들며 8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한 줄로 말하면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도와주시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들고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사람의 이름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지난 월요일에도 장례식을 다녀왔습니다. 장지가 김해 하늘공원이었습니다. 그곳은 교인들의 묘지가 많았습니다. 어떤 곳은 교회가 땅을 사서 교회 공동묘지로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비석을 보니 성도, 집사, 권사, 장로라는 직분을 이름과 함께 새겨놓았습니다. 천국에서는 그런 직분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면류관을 받았다고 하여도 보좌 앞에 돌려드리는 겁니다. 국립묘지에도 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도 무덤의 차별이 있습니다. 장군의 무덤은 평수가 큽니다. 정작 전쟁에서 죽어간 자들은 사병입니다. 죽지도 않은 장군들은 큰 무덤에 큰 비석을 세웁니다. 이렇게 무덤을 꾸미고 비석을 세우는 것은 결국 자기들의 이름을 위한 것입니다. 저도 평토장한 무덤에 작은 비석을 세우고 왔습니다. 교회의 직분을 빼고 성도라는 이름을 감히 썼습니다. 저도 죽으면 성도라는 이름만 남겨지면 좋겠습니다.

 

본문 1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임금님께서 고난을 받으시는 날에, 임금님께서 주께 기도하실 때에 주께서 임금님께 응답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임금님을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를 보게 하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이란 그 존재자의 속성을 다 담고 있습니다. 이순신이라고 하면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장군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완용 그러면 경술국치(庚戌國恥)의 주범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이름에 그 사람의 행한 일이 다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1절에서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왜 야곱의 하나님입니까?

 

창세기 49:24~26절입니다.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야곱이 죽기 전에 열두 아들에 대한 축복 중에 요셉에 대한 축복입니다. 여기서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을 얼마나 개인적인 친밀함으로 부르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이라고 합니다.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신 하나님입니다. 그 과정은 환도 뼈가 위골됩니다. 그래서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신 하나님을 야곱은 전능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야곱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낫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삭과 아브라함의 축복보다 낫다고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야곱이 가장 많은 환난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환난으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반드시 만들어 내시는 언약에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더욱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1절에서 환난을 말하면서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구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들어 달라고 합니다. 성소나 시온은 두 가지 뜻으로 성경에서 사용됩니다. 지상의 성전과 예루살렘을 성소와 시온으로 말하지만 완전한 성소와 시온은 하늘나라의 성소와 시온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성전이나 시온이라고 불리는 예루살렘은 주의 이름을 두는 자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성전이라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파괴하여 버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왕상9:1~9). 그러므로 영원한 성소와 시온은 하늘에 속한 겁니다.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가 도우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3절입니다.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전쟁에 나가기 전에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 제사를 받아주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종교적인 제사는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내가 지극한 정성을 바치면 신은 나에게 응답하여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소제나 번제를 받아주시고 받아 주시지 않고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린 겁니다. 피조물이 창조주께 소제나 번제를 드림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아담 이후로 타락한 인생에게서 하나님은 섬김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제물이 있다면 그 제물을 드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용납하셨기 때문에 받아주십니다. 이렇게 받아들여진 자가 아벨입니다. 그런 아벨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가인에 의하여 살해당합니다. 아벨은 오실 메시아의 모델입니다.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입은 자들만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집니다(12:24).

 

4~5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4 임금님의 소원대로, 주께서 임금님께 모든 것을 허락하여 주시고, 임금님의 계획대로, 주께서 임금님께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5 우리는 임금님의 승리를 소리 높여 기뻐하고,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 세울 것이니, 주께서 임금님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백성들이 다윗 왕의 승리를 위한 기도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다윗 왕은 기름부음을 받았기에 여호와의 전쟁을 합니다. 이런 왕은 장치 오실 기름부음을 받은 자 메시아를 보여주는 역할입니다. 그 메시아의 소원이 다 이루어지기를 노래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 세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메시아의 소원이 무엇인지 봅니다.

 

마태복음 11:25~27절입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권능을 많이 행하신 곳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책망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신다는 것은 주님께서 알게 하여 주셔야하는데 그것이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야만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계시를 받아서 아버지를 아는 자는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이 그 아들에게 있음을 또한 압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계시를 받은 자는 그 마음에 쉼을 얻게 됩니다(11:28~30).

 

마태복음 21:9~11절입니다.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주의 이름이 승리하게 하시고 주의 이름으로 깃발을 들게 하시는 그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 겸손하여 나귀 새끼 타고 오시는 분이십니다(9:9). 그래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놓은 고에서 호산나라고 찬송을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 갈릴라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는 분입니다. 이 분이 주의 이름으로 오셔서 주의 일을 이루십니다.

 

요한복음 6:38~40절입니다.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 아들이 소원입니다. 그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가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소원은 자신을 자기 백성들에게 주어 생명을 얻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본문 4~6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다시 봅니다. 봉독여기서 임금님 대신에 예수님을 넣어서 읽어보겠습니다. “4 예수님의 소원대로, 주께서 예수님께 모든 것을 허락하여 주시고, 예수님의 계획대로, 주께서 예수님께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5 우리는 예수님의 승리를 소리 높여 기뻐하고,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 세울 것이니, 주께서 예수님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6 나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주께서는 기름을 부으신 예수님에게 승리를 주시고, 그 거룩한 하늘에서 예수님에게 응답하여 주시고, 주의 힘찬 오른손으로, 예수님에게 승리를 안겨 주시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금님의 소원 즉 예수님의 소원을 이루어주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예수님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무엇으로 승리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7:1~5절입니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십자기 지기 직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문자로 보면 승리가 아니라 저주 받아 죽은 죽음입니다. 나무에 달려 죽는 죽음이 저주 받아 죽는 죽음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버림받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택하신 자들의 죽음 안으로 들어와서 함께 연합되어 함께 일으키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믿게 된 모든 자들과 신약의 택한 모든 자들이 기름을 부음을 받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는 깃발이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의 성도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드립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기도 후에 십자가를 지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심으로 승리의 깃발을 세우십니다.

오늘 본문 7~8절을 봅니다. “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 1)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이 당시의 전쟁에는 병거와 말이 최고의 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앞에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 예수님이며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심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택한 백성들 곧 주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며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자들은 기름부음을 받는 자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18~22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2)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구원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의 깃발을 드는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만 자랑합니다. 이 내용을 구약과 신약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이 말씀의 성취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의 깃발을 드는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만 자랑합니다. 그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자들이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심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의 힘인 말과 병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자기 자랑이 되는 자기의 의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요한일서 2:15~17절입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것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자랑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예수님의 기도대로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입니다. 이들의 자랑은 이 세상이 보기에 거리끼고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6:14). 이런 자들은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구원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들게 되고 하나님의 이름만 자랑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