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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1:1~13 왕의 승리 2020. 10. 14

 

1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2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셀라) 3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4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니 곧 영원한 장수로소이다 5 주의 구원이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 6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1)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7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존하신 이의 인자함으로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8 왕의 손이 왕의 모든 원수들을 찾아냄이여 왕의 오른손이 왕을 미워하는 자들을 찾아내리로다 9 왕이 노하실 때에 그들을 풀무불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삼키시리니 불이 그들을 소멸하리로다 10 왕이 그들의 2)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그들의 자손을 사람 중에서 끊으리로다 11 비록 그들이 왕을 해하려 하여 음모를 꾸몄으나 이루지 못하도다 12 왕이 그들로 돌아서게 함이여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 13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입니다. 시편 21편은 시편 20편과 내용상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편 20편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을 알기에 여호와께 그 기름부음 받은 왕을 구원하여 주시고 그 왕의 소원과 계획을 이루어달라고 합니다. 20장에서 기름부음 받은 왕의 승리를 위한 기도가 응답이 된 것처럼 오늘 본문 21장에서는 승리하였고(1~7) 또 승리할 것을(8~13) 노래합니다. 다윗의 이런 찬송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보겠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1~6절은 여호와를 3인칭으로 왕을 2인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7절은 왕과 여호와를 3인칭으로 부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여호와께 자기를 2인칭으로 부르며 주의 힘과 구원으로 즐거워한다고 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장차오실 메시아를 보고 노래한 것입니다. 다윗이 어린 목동일 때에 주의 기름부음을 받아 이제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왕이 된 것은 결코 자기의 힘이 아님을 압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일대일로 붙자고 하였지만 40일 동안 아무도 나설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런 골리앗을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겼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지금 왕이 되었지만 주의 힘과 주의 구원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크게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쁨과 즐거움은 예수님의 삶 전체가 이러하였습니다. 주의 힘과 주의 구원으로만 기뻐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양식은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하십니다(4:34). 예수님은 자기를 보내신 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기에 혼자 두지 않는다고 하십니다(8:29). 그러므로 예수님의 기쁨과 즐거움은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기쁨과 즐거움을 기름부음 받은 다윗이 부분적으로 맛을 보기에 이런 찬양을 하는 겁니다. 지난주에 본 20편의 말씀대로 세상 사람들은 병거와 말의 힘을 자랑하지만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만 자랑합니다.

 

2절입니다.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셀라)”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구별하여 세우신 겁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의 마음의 소원은 자기 혈육의 소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나타나는 소원입니다. 이런 소원은 예수님에게서 보았듯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양식이며 기쁨이 되는 겁니다. 이런 소원을 거절하지 않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다윗의 생애에서 순간순간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고 사울의 죽음소식을 가지고 온 자를 처형하여 버립니다. 자기를 저주하는 시므이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에 그대로 두라고 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성도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2:13). 그 소원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겁니다.

 

3절입니다.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왕을 영접하였다는 것은 승리를 말합니다. 그 승리란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워주신 겁니다. 다윗은 실제로 전쟁에서 암몬 자손의 랍바를 점령하여 보석 박힌 왕관을 자기의 머리에 씁니다(삼하12:30). 그러나 예수님은 성도에게 영원한 생명의 승리를 주시려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십니다. 이 내용은 다음 주에 시편 22편에서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생명의 면류관과 의의 면류관과 영광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생명과 의와 영광이 되시는 예수님을 받는 겁니다.

 

4절입니다.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니 곧 영원한 장수로소이다다윗이 생명을 구하니 영원한 장수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장수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다윗도 죽습니다. 그러면 영원한 장수란 그리스도에게서 성취가 됩니다. 베드로사도가 성령으로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 다윗이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여 달라고 하였지만(16:10).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묘가 오늘까지 우리 가운데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썩지 않고 부활하신 분이 예수님임을 증거 합니다(2:29~32).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장수시기에 그를 믿는 자가 영생을 받습니다.

 

5절입니다. 주의 구원이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이런 말씀으로 다윗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이런 모습을 봐야합니다. 베드로후서 1:17~18절입니다.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베드로 사도가 변화산에서 본 그리스도의 영광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 면류관, 영원한 장수, 영광과 존귀와 위엄은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6절입니다.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1)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복이라는 단어 앞의 각주를 보면 복이 되게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왕에게 지극한 복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지극한 복이 왕에게 있습니다. 그 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신다고 합니다. 앞에서도 보았습니다만 예수님의 즐거움은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극한 복이 되는 겁니다. 오늘 우리의 복이 무엇입니까? 지극한 복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 예수님을 알고 믿는 일이 주 앞에서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신앙생활은 억지로 지는 짐이 아닙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하신 일을 받아 누리는 일입니다.

 

7절입니다.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존하신 이의 인자함으로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왕이 여호와를 의지합니다. 지극히 존귀하신 이의 인자함, 그 언약적인 사랑으로 인하여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윗 왕이 믿은 것은 하나님의 인자함이었습니다. 그 인자함,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십자가로 나타났습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5:8).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흔들리지 않는 길은 주의 인자함의 완성인 십자가 안에 머무는 겁니다. 거기서 천국 이를 때까지 항상 머물겠네!(439).

 

본문 1~6절은 왕이 승리하였음을 순금 면류관을 쓴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절은 그 승리 안에 머무는 길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겁니다. 지존하신 이의 인자하심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8~12절은 이미 승리한 왕이 미래에도 승리하기를 기원하는 찬양입니다. 그래서 왕이 모든 원수들을 찾아내며 왕의 오른손으로 왕을 미워하는 자들을 찾아내서 심판합니다. 그런 심판을 풀무불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도 진노하셔서 그 불로 소멸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금 면류관을 쓴 왕이 풀무불로 심판을 할 것이며 왕이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겼다고 합니다. 13절은 여호와께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시며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본문 8~13절을 봅니다. 봉독이미 승리한 왕이 앞으로도 원수들을 찾아내어 풀무불로 심판할 것을 말합니다. 원수들이 왕을 해하려고 음모를 꾸몄지만 이루지 못합니다. 왕이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깁니다. 왕에게 이런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께서 그 능력으로 높임을 받도록 찬송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전쟁을 다윗이 부분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다윗을 모해하려고 한 자들이 실패하고 다윗이 다시 왕위를 회복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을 이루신 결과입니다. 이러한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이런 시편을 기록한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승리하실 지를 미리 보고 찬송한 겁니다.

 

마태복음 3:11~12절입니다.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역할이 추수입니다.

 

마태복음 13:41~42절입니다.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좋은 씨와 가라지에 대한 해석의 결론입니다. 좋은 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인데 그 악한 자는 원수 마귀라고 합니다. 좋은 씨와 가라지가 섞여 사는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서 분리하여 냅니다. 곡식은 모아 곳간 안에 가라지를 불에 태우듯이 분리하시는 일을 예수님께서 이루십니다. 그 이루신 길이 복음을 전하시고 복음을 이루신 겁니다. 그 복음은 그의 선포와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을 보내심으로 지금도 이루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3:47~50절입니다.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풀무 불에 들어가는 가라지와 못된 물고기가 어떤 자들입니까? 오늘 본문 7절에서 본 대로 주의 인자하심, 그 언약적인 사랑에 머물러 있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그릇에 담긴 자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창기들같이 주의 절대적인 긍휼이 필요한 자들이었습니다.

 

본문 3절과 12절입니다. “3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12 왕이 그들로 돌아서게 함이여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이미 앞에서 살펴본 대로 다윗이 전쟁을 하면서 면류관을 빼앗아 쓴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활을 쏜다는 것은 시편 18:34절입니다.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기름부음 받은 다윗이 면류관도 쓰고 활도 당기는 자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다윗은 오실 메시아를 예표합니다.

 

하박국 3:8~13절입니다. “8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 9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2)화살을 바로 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10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11 날아가는 주의 화살의 빛과 번쩍이는 주의 창의 광채로 말미암아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12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을 두르셨으며 분을 내사 여러 나라를 밟으셨나이다 13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말을 타고 구원의 병거를 몰고 활을 쏘시는 이런 내용이 혈과 육의 말과 병거와 활이 아닙니다.

 

스가랴 9:9~13절입니다.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1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말과 병거로 구원하심이 아닙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본이 말과 병거를 끊어버리고 전쟁의 활도 끊어버립니다. 오직 언약의 피로 구원하십니다.

 

이어지는 16절입니다.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1)빛나리로다자기 백성을 양 떼 같이 구원하십니다. 그렇게 구원받은 자들은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서 빛인 날 것이라고 합니다. 어린이 찬송 중에 예수께서 오실 때에 그 귀중한 보배 하나라도 남김없이 다 찾으셔서 면류관의 보석처럼 반짝 반짝 빛나게 하신다고 하는 가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 그 보배로운 언약의 피로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6:2절의 면류관을 쓰신 분이 활을 가지고 이기고 이기시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미 구약의 성도를 구속하셨고 신약의 성도들도 그 십자가로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골로새서 2:14~15절입니다.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2)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이 세상의 힘인 말과 병거와 활로 원수를 이기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이기셨습니다. 세상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이 세상의 신 곧 원수 마귀들입니다. 이들을 십자가로 무력화 하여 구경거리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승리는 십자가입니다. 그 승리인 십자가는 아직도 세상에서 거리끼고 미련하게 보이지만 구원 받은 자들은 그 십자가만이 참된 승리임을 믿기에 그 십자가 안에 머물며 그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요한계시록 6:1~2절을 봅니다. “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주일 오전에 보는 내용입니다만 죽인 당한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첫째 인을 뗐습니다. 그러자 네 생물중 하나가 오라 하는데 흰 말이 나옵니다. 그 흰 말에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갑니다. 면류관과 활에 대하여 오늘 본문에서 보았습니다. 면류관은 이미 승리하였기에 쓴 겁니다. 그런데 그 승리한 자가 이기고 또 이기려고 나갑니다. 이런 전쟁은 세대주의 종말론 자들이 말하는 물리적인 전쟁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원수를 이기신 승리이며 십자가의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됨으로 자기 백성을 그 피로 구원하시는 영적인 전쟁의 승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승리가 구약에서 전쟁의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선지자들은 그런 말과 병거를 끊어버리는 왕의 승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왕의 승리가 십자가입니다. 거리끼고 미련한 십자가가 승리임을 믿는 자들이 왕의 승리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세상 힘의 승리가 아닌 십자가의 승리가 보여 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