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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7:1-14 내 평생의 소원 2020. 11. 25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1)여전히 태연하리로다 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7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2)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12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13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14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여러분에게 평생에 간절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 테니 말하라고 하면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간절한 소원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처한 상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병든 자는 건강을 소원할 겁니다. 가난한 자는 부함을 소원합니다. 외로운 자는 친구를 원할 겁니다. 취준생은 취직을 원합니다. 무주택자는 자기 집을 원할 것입니다. 개척교회는 자립을 원합니다. 오늘 우리의 평생소원은 무엇입니까?

 

본문 1~3절에서 다윗의 상황을 먼저 봅니다. 악인들이 자신의 살을 먹으려고 옵니다. 원수들이 대적하여 진을 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적들에게서 구원을 받는 것이 소원일 겁니다. 다윗은 나의 대적들이 내게로 왔지만, 나의 대적과 원수들이 실족하여 넘어졌다고 합니다. 구원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빛이며 구원이며 생명의 능력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을 친다고 하여도 두렵지 않고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전히 태연할 것이라는 말에 각주가 있습니다. 각주를 보면 그 중에서 안연하리로다고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두렵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계속하여 문제가 일어나는 전쟁 중이라고 하여도 나의 빛과 나의 구원과 나의 생명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태연하다는 겁니다.

 

우리의 일상도 늘 전쟁과 같습니다. 전쟁과 같은 일상 속에서 무엇이 우리의 대적이며 원수입니까? 나의 평안함이 삶의 목적이고 소원이라면 나의 평안함을 무너뜨리는 모든 상황이 다 원수들입니다. 아파트의 층간 소음으로 살인까지 일어납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 상황과 환경들이 다 원수가 됩니다. 이런 환경을 만든 사람이 원수가 됩니다. 그래서 전능한 신이 있다면 그런 원수를 멸하여 달라고 할 겁니다. 그런데 그런 신이 나의 환경을 그렇게 만들었다면 그런 신조차 죽이려는 자들이 선악과를 먹고 난 이후의 인간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소원이 무엇인지 보면 그 사람을 압니다.

 

본문 4절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지금 다윗은 적들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한 가지 평생의 소원이 여호와의 집에서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고 싶다는 겁니다. 이것이 평생의 한 가지 소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의 기름 부음 받음으로 인하여 이런 소원이 생기면 그때부터 주변에 원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입니다.

 

요한복음 15:19절입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예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증거가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령이 임함으로 인하여 원수가 생기고 고난이 닥칩니다. 이럴 때 낯선 소원이 생깁니다.

 

본문 5~6절입니다. 다윗의 소원이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을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장막 은밀한 곳, 높은 바위 위에 두신다고 합니다. 장막의 가장 은밀한 곳은 지성소입니다. 지성소란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일 년에 한 번 대 속죄일에 들어갑니다. 그 속죄와 지성소의 내용을 다 완성하신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본문 7~14절을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1~6절과 7~14절을 두 편의 시로 나누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연결됩니다. 그 이유는 앞부분에서 다윗의 평생소원이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것입니다. 뒷부분은 여호와께서 얼굴을 찾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1~6절을 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원수들이 실족하고 넘어짐으로 여호와의 도우심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시 소리 내어 부르짖어야 할 일들이 계속 일어나기에 여호와께 긍휼을 구합니다.

 

본문 7~8절을 봅니다. 여호와께 소리 내어 부르짖습니다. 얼마나 간절하면 소리 내어 부르짖을까요? 그 부르짖는 내용은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지금 다윗의 기도는 무엇을 위한 기도입니까? 앞에서 다윗의 평생소원이 여호와의 집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사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모하면 그 얼굴을 보고 싶어 합니다. 얼마나 보고 싶은지 부르짖어 간구하니 주님께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내 얼굴을 찾으라고 하셔야 찾을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함부로 주의 얼굴을 뵙게 되면 그것은 죽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보고 살자 가 없습니다(33:2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의 얼굴을 구하라고 하심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민수기 6:24~26절입니다.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축도의 내용이 여호와의 얼굴을 비추어주시라는 겁니다. 다윗은 그 얼굴을 구하라는 말씀에 구하였고 그 얼굴을 뵙게 되었기에 전쟁 중에도 태연합니다.

 

본문 9~10절입니다. 주의 얼굴을 뵙고 그 은혜와 평강을 맛본 자는 주의 얼굴을 숨기심이 주의 진노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주님은 나의 도움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나의 부모조차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 부모조차 모른 척해야 할 지경입니다. 날 때부터 맹인된 자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을 때 그 부모들이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한 이유는 유대교에서 출회 당할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혈육이라도 나를 버리지만, 여호와께서는 버리지 않으시고 얼굴을 비추어주십니다.

 

이사야 49:13~16절입니다. “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여호와의 구원을 노래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요즈음 뉴스에 보면 젖먹이 자식을 버리는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그런 어미들은 잊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잊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손바닥에 새긴다고 합니다.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자들은 마음에 굉장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버림받은 마음이 치유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다윗이 마음으로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도 은혜이지만 그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여 그 얼굴을 뵙게 된 것도 은혜입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빛이 생긴 것과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얼굴을 구하라고 하셨기에 그 얼굴을 구할 마음이 생기게 되었고 그 얼굴을 구하여 뵙게 되었습니다.

 

본문 11~14절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되었기에 계속하여 간구합니다.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인도하여 달라고 합니다. 대적들이 계속하여 있기에 주께 간구합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다고 합니다. 산 자들의 땅이란 음부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 음부이기에 산 자들의 땅이란 생명을 얻은 자들이 가는 땅입니다. 그곳에서 여호와 선하심을 본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얼굴을 본다는 것을 여기서는 선하심을 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여호와를 기다리라고 합니다. 강하고 담대하여 여호와를 기다리라고 합니다. 얼굴을 보았는데 또 기다립니다.

 

시편 110: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친히 해석하십니다(22:41~46).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를 주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의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온다는 문자는 알고 있어도 예수님이 그 그리스도이심을 모르는 겁니다. 그러면 다윗이 여호와의 얼굴을 어디서 보았겠습니까?

 

시편 22:1절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앞에서 본 내용이기에 1절만 봅니다.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였듯이, 시편 22편도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본 것입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라는 말씀을 듣고 그 얼굴을 구한 내용이 저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보게 하신 것으로 말씀드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죄인이 직접 뵙고는 살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을 봐야 합니다. 나의 얼굴을 구하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내십니다.

 

고린도후서 4:3~6절입니다.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영광임을 누가 알겠습니까?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십자가입니다.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임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이 세상의 신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고 하지만 십자가에 다 이루신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누가 보겠습니다. 다윗은 배신당함과 버림받음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십자가로 본 겁니다.

히브리서 1:1~3절입니다.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다윗의 평생소원이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그 아름다움을 뵙는 겁니다. 그런데 여호와는 영이십니다. 그 여호와의 본체의 형상을 우리에게 나타내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임을 알고 믿는 일이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 배신당함과 고난을 통하여 그 그리스도를 보았던 겁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후에 그가 소원한 것은 그리스도의 때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8:56~59절입니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에 유대인들이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결국은 예수님을 죽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임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에게 평생의 소원이 생깁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겁니다. 그 하나님의 얼굴을 이 역사 속에서 뵙는 것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님에게서 봅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은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로 계시기에 이 역사 속에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세상에서 환난을 겪을수록 그 영광의 날을 소망하며 태연하게 살아갑니다.

 

본문 13~14절입니다. “봉독 다윗의 시편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까지 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결론도 다시 그 날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시편 17:14~15절입니다. “14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썩어질 소원이 아닌 영원한 영광의 소망이 성도의 소원입니다. 우리가 죽고 깰 때 주의 형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형상으로 만족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찬송 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