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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8:1-9 지성소를 향하여 2020. 12. 2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2 내가 주의 1)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3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옵소서 그들은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4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행위가 악한 대로 갚으시며 그들의 손이 지은 대로 그들에게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그들에게 갚으소서 5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 6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8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시편 28편도 표제어를 보면 다윗의 시입니다. 시편은 시의 형태로 되어있지만, 내용은 기도와 찬양입니다. 기도와 찬양에도 여러 내용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탄식의 기도를 하다가 갑자기 감사의 찬송을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의 반전은 실제 상황이 해결된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믿음의 고백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배 중에 얻을 수도 있고 예배의 처소에서 멀리 떨어져서 성소를 향하여 간구하여 응답받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여호와를 나의 반석이라고 합니다.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 터를 말합니다. 다윗이 반석을 향하여 부르짖는 것은 영원한 반석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다윗 자신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반석을 향하여 내게 귀를 막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무덤에 내려간다는 말은 성경에서 죽은 자들이 가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무덤에 들어간다는 표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는 곳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주께서 잠잠하지 마시고 말씀하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모든 사람이 기도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본능입니다. 자기가 믿는 무엇에 기도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무신론자라서 기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기도합니다. 어떤 식으로 기도합니까?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식입니다. 이런 것은 자기 자신에게 기도하는 겁니다. 여기에다 한술 더 떠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도의 내용은 자기 소원의 성취이며 자아의 확장에 불과합니다. 성경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초점이 있습니다.

 

본문 2절입니다. 전에 번역은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는다고 하였는데 이번에는 지성소를 향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성소를 향한다는 단어가 성소 안이라는 뜻이기에 이번에는 지성소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지성소를 향하여 손을 든다는 것은 지성소에 무엇이 있습니까? 언약궤가 있고 그 언약궤의 뚜껑이 속죄소입니다. 그 속죄소 위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출애굽기 25:21~22절입니다. “21 5)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4)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5)속죄소 위 곧 6)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여호와 하나님께서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에서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왜 다른 곳에서 말씀하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다른 곳에서 말씀하시면 두려워서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속죄소 위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속죄소를 향하여 기도한다는 말은 다윗 자신의 자격이 아니라 속죄를 믿고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은 속죄소가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 3~5절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끌어내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악인들이 행하는 그 악한 행위를 따라 갚아달라고 합니다. 여기서 악인들의 행위가 두 가지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는 표리부동(表裏不同)입니다. 겉과 속이 다릅니다. 겉으로는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함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심판하여 달라고 합니다.

 

먼저 표리부동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이유는 인간이 타락하고 난 이후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나니 두렵고 부끄러워서 무화과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가리는 일이 표리부동의 시작입니다. 타락 이후로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인격(personality)이라는 단어가 가면(persona)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사회에서 가면을 쓰지 않고서는 사회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모두가 적당한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겉과 속이 같아지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죄가 없는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에 가장 거룩하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보고 화를 선포하시면서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심으로 그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겉과 속이 다름을 죄라고 증거 합니다.

 

시편 62:4절입니다.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잠언 26:24~25절입니다. “24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25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겉 다르고 속 다름이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말이 좋아도 믿지 말라고 합니다.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일곱이란 완전하다는 의미이기에 인간의 표리부동은 끝도 없습니다.

 

사무엘하 20:9~10절을 보면 요압이 아마사에게 수염을 잡고 입을 맞추려는 체하면서 칼로 배를 찔러 죽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입맞춤으로 팔아넘깁니다(26:48~49). 이런 모습이 인간의 악함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런데 다윗도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합니다. 사무엘상 21장을 보면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 몸을 피하려고 갑니다. 그런데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이 어떤 자인지 말을 하자 위기를 느끼고 미친 체하여 살아남습니다. 대문에 몸을 비비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줄줄 흘리면서 미치광이 짓을 하여 살아남았습니다. 이런 다윗이 왜 겉과 속이 다른 자를 악하다고 하면서 자기를 구원하여 달라고 하는 겁니까? 그 이유는 5절에서 보겠습니다.

 

본문 5절을 다시 봅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겉과 속이 다른 자들이 악인이지만 여기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 악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윗 자신도 겉과 속이 다른 자임을 압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는 자가 됩니다.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 속죄소를 만들게 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속죄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겉과 속이 다르게 행하면서 여호와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여호와의 심판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5:12~13절입니다. “1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12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아침부터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위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여호와께서 금하신 부동산 투기로 이익을 취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잔치하면서 여러 악기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않습니다. 이들이 악인이기에 심판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3~5절의 악인들의 모습이 겉과 속이 다른 자들이며 이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이 악인에 대한 심판이며 또한 속죄소를 만들게 하셔서 속죄의 길을 열어두신 겁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정말로 악인인 줄 아는 것이 은혜입니다. 자신이 겉과 속이 다른 죄인임을 안다면 여호와의 속죄소를 향하여 손을 들 것입니다. 그러나 겉과 속이 다르면서도 겉과 속이 다름도 알지 못하는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들은 악을 행하면서 큰 소리 칩니다.

 

이사야 5:1~2절입니다.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 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포도원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셔서 약속의 땅에 심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어 주었지만 맺힌 것은 들 포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정의를 바랐는데 오히려 포학이 나왔으며 공의를 바라셨는데 부르짖음만 가득합니다.

 

그 이유가 8절입니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은 여호와의 전쟁으로 얻은 선물이기에 사고팔고 할 수가 없습니다. 살다가 형편이 어려워 경작권을 팔 수 있지만 언제라도 되 무를 수 있습니다. 본인이 무를 형편이 안 되면 친척이 무를 수 있습니다. 친척도 없으면 희년에는 돌아옵니다. 그러나 이런 법이 시행되지 않음으로 천박한 자본주의의 폐해가 그대로 나타납니다. 불의한 이익을 취한 자들이 먹고 마시며 여호와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와 심판과 속죄에 관한 내용을 보지 않습니다.

 

18~23절입니다. “18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19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자기의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에게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2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3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에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조롱합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 계신다면 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해 보라고 합니다. 죄악을 일삼고 살아도 하나님의 심판이 당장 일어나지 않으니 이렇게 큰소리를 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은 악을 선하다고 하며 선을 악하다고 합니다. 흑암을 광명이라고 하고 광명을 흑암이라고 합니다. 쓴 것을 단 것이라고 하고 단 것을 쓴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술을 마시기에 용감합니다. 뇌물을 받고 악인을 의롭다고 하기에 의인에게서 공의를 빼앗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여호와의 일에 관심이 없는 악한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3~5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3 나를 악인들과 함께 선고하지 마시고 못된 일을 저지른 자들같이 나를 끌어가지 마십시오. 그들은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지만, 마음에는 악을 품고 있습니다. 4 그들의 행실과 그 저지른 악을 그들에게 고스란히 갚아 주십시오. 그들이 한 그대로 그들에게 갚아 주십시오. 그들이 받을 벌을 그들에게 되돌려주십시오. 5 주께서 하신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손수 지으신 것들을 하찮게 여기는 그들. 그들을 벌하시고 그들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멸하십시오두 가지 악에 대하여 심판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런 악으로 인하여 세상이 늘 요란합니다. 그런데 이런 악을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은 자는 지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본문 6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애원하는 나의 간구를 들어 주셨으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지성소를 향하여 기도하였더니 주님께서 응답하여 주셨기에 주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지금 악인들이 심판받은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겉 다르고 속 다른 자들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일하심에 관심이 없이 온갖 악을 행하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 계신다면 자기의 일을 나타내 보라고 하는 자들이 기세등등하게 살아 있음에도 다윗은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버려두심이 심판인 겁니다. 생존 세상에서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그들이 심판을 받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찬송하면서 시편을 마무리합니다.

 

본문 7~9절을 봅니다. 봉독 기도를 들어주셨기에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주님이 나의 힘이며 방패라고 합니다. 악인들은 불의하게 취한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자기의 힘과 방패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주님을 의지하기에 주님께서 건져 주십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기뻐하며 노래로 감사합니다. 주님은 주의 백성에게 힘이 되십니다. 기름 부은 왕에게 구원의 요새입니다. 그러면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주의 소유인 백성에게 복을 내려 달라고 합니다. 그 복이란 영원토록 그들의 목자가 되어 보살펴 달라는 겁니다. 양은 목자만 있으면 만족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무엇이 복입니까? 지성소가 있다는 겁니다. 지성소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 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순간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집니다(27:51, 15:38). 이 일을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0:19~22절입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다윗이 지성소를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 지성소의 일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늘 성소에 담대히 들어갑니다.

 

히브리서 12:1~2절입니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1)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다윗도 허다한 증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믿음의 경주를 합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란 오늘 본문에서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하신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과 기도로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 힘으로 되지 않기에 다윗이 지성소를 향하여 기도하듯이 오늘 우리는 더욱더 분명한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