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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0:1~12 잠깐과 영원 2020. 12. 16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7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8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12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시편 30편의 표제어를 보면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로 되어있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지 않았기에 여러 가지 해석이 따릅니다. 성전이라는 단어가 집이라는 뜻도 있기에 왕궁을 건축한 후 지은 시라고도 합니다. 다윗이 인구조사 후에 전염병이 일어날 때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사서 제단을 쌓은 곳이 나중에 성전의 터가 되기에 그때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전 낙성가는 후대에 붙인 것으로 봅니다. 그 이유는 안티오쿠스 4세에게 더럽혀진 성전을 주전 165년에 되찾아 회복한 날에 이 시편을 낭독한다고 합니다. 수전절은 요한복음 10:22 절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높인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나를 원수에게서 끌어내셔서 원수가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윗이 어떤 상황에서 구원을 받아 찬양하는지 그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만 다윗은 여러 가지 어려운 곤경에서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구원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구원을 받음으로 다윗을 조롱하는 원수들이 조롱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2~3절입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친밀한 관계입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나를 고쳐주셨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무엇에서 고쳐주셨는지 언급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해석하기를 병에서 고침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음 구절을 보면 자기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병으로만 볼 수가 없습니다. 나의 영혼을 스올 곧 무덤에 내려가지 않게 하였다는 것은, 병으로 죽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말합니다. 스올 곧 무덤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곳을 말합니다.

 

시편 28:1절을 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주께서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 것 같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죽어서 무덤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무덤에 내려가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간구를 듣지 않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 3절에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다고 찬양합니다.

 

본문 4절입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우리가 성도가 맞습니까?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거룩한 무리라고 하기에 성도라고 합니다. 신약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을 성도라고 합니다. 성도가 되는 것은 우리의 계획과 뜻이 아닙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여 내심으로 성도가 되는 일이기에 우리가 정말로 성도가 되었다면 사망에서 건져내신 그 놀라운 은총으로 인하여 찬송하게 됩니다.

 

골로새서 1:12~14절입니다.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것입니다. 그 아들 안에서 속량을 받아 그 기업까지 얻게 되었기에 감사하는 겁니다. 그러나 구약의 성도나 신약의 성도나 간에 이 역사 속에서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자녀이기에 징계하십니다.

 

본문 5절입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노염은 잠깐이지만 그의 은총은 평생입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평생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는 하이인데 살아있는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은총이 누구에게서 오는 겁니까?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기에 다른 번역 성경은 평생영원으로 번역합니다. 그러면 은총만 주시면 되실 텐데 왜 노여워하시는 일이 있습니까? 그러나 노여움도 은총의 다른 면입니다.

 

본문 6~7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6 내가 편히 지낼 때에는 "이제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겠지" 하였지만, 7 ,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으로 나를 지켜 주시던 주께서 나를 외면하시자마자 나는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무덤에 내려가는 것 같은 곤경에서 부르짖어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형통함이 영원할 것이며 그 은총이 태산보다 더 든든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나를 외면하시자마자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외면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반석이 아니라 나의 형통한 것을 의지한 겁니다. 심각한 질병이 있으면 그것이 평생의 괴로움입니다. 가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삶의 곤경이 있을 때 부르짖어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응답받았다고 그 형통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이제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단한 기쁨이 찾아오면 이렇게들 말합니다. 불행 끝 행복 시작, 그러나 그 행복을 하루도 우리 힘으로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형통함을 내가 든든하다고 믿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기에 내가 근심하였다고 합니다. 무엇이 참된 근심인지를 말씀합니다.

 

시편 39:4~7절입니다.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든든하고 형통하다는 것들이 얼마나 허무한지 세상의 사람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하여도 그 헛된 든든함을 추구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로 부름을 받은 자는 세상 사람이 든든하다고 하는 것을 의지할 수 없게 하십니다. 그래서 나의 종말과 연한을 알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내가 형통하고 든든하다고 하는 것이 주의 앞에서 한 뼘 같은 나의 인생살이에 나의 든든함이라는 것들이 모두 허사라는 겁니다. 그림자처럼 다니며 재물을 모은다고 해도 그것이 누구 것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나의 소망이 주님께 있지 않고 나의 든든함에 두고 산다면 주께서 노하십니다.

 

본문 8~10절입니다. 자신의 형통함을 든든히 여기고 있으면 안 되기에 여호와께서 잠시 얼굴을 가리십니다. 그러자 다윗은 주께 부르짖고 간구합니다. 여호와의 외면이 다윗에게는 무덤에 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죽어서 무덤으로 가면 주께서 무슨 유익이 되시겠느냐고 합니다. 한 줌의 티끌로 돌아가면 그 티끌이 주님을 찬양할 수도 없고 주의 진리를 전파할 수도 없으니 주께서 귀를 기울여 달라고 합니다. 주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나를 돕는 분이 되어 달라고 합니다.

 

본문 11~12절입니다. 다시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곤경 중에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을 때 자기의 형통함을 든든하게 여기고 그것을 의지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를 지키시는 주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잠깐 있다가 사라질 것들을 든든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다시 얼굴을 가리시자 정신이 번쩍 들어서 다시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래서 응답받았기에 내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고,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의 띠를 띠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주셨기에 내 영혼이 잠잠할 수가 없어서 주님께 영원토록 감사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의 형통함과 든든함입니까?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을 우리의 형통함과 든든함으로 여기고 있는 자를 성경은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말씀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잠깐 있다가 사라질 것들을 의지하고 그것을 든든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흑암의 권세 아래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우리도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한 이 영향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평생토록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먹고 살아가는 삶은 썩을 양식입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우리의 땀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피 흘리심으로 주어집니다. 성도는 자신의 피와 땀으로 이룬 것은 잠깐이며 오직 주님의 피 흘리심만이 영원함을 반드시 알고 믿게 하십니다.

 

시편 90:1~2절입니다.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성도의 원래 자리는 영원한 주님 안에 거하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보다 다른 것을 든든한 피난처로 삼으면 진노하십니다.

 

3~12절입니다. “3 주께서 사람을 1)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주님의 노여움이 어떤지를 아는 자들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주의 노여움을 알고 주께 다음과 같은 간구를 합니다.

 

13~17절입니다.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 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16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 주 우리 하나님의 2)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잠깐의 진노가 7~8십 년의 평생이지만 그 잠깐의 진노를 통하여 주의 은총을 구하게 된다면 그 잠깐의 진노 속에서 영원한 은총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참된 복임을 성경이 증거 하고 있습니다.

 

세상살이가 힘이 드시지요? 힘들지 않은 인생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본문과 시편 90편에서 너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든든히 서야 할 주님 안에 서지 않고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들을 든든한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풀과 같은 인생이 든든하게 섰다고 자랑하여도 그것이 겨우 칠팔 십 년의 세월입니다. 그 든든함이 실로 허사임을 알고 영원한 주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이 참으로 크고 영원한 복임을 아는 자가 성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한 자들의 자기변명이라고 할지라도 성도는 그런 조롱이 아무것도 아니게 들립니다.

 

이사야 54:6~8절입니다. “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잠깐의 진노와 영원한 긍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이루시려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2:13~21절입니다.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2)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생명이신 예수님께 자기에게 올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요청하는 자가 어리석은 부자와 같습니다.

 

히브리서 12:2절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합니다. 잠깐의 십자가로 영원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 홀로 이 일을 이루셨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함께 보좌 우편에 앉히셨기에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게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16~18절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우리가 성도라면 속사람이 있는 사람입니다. 속사람이 있는 사람은 보이는 것이 잠깐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한 것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잠시 받는 칠팔 십 년의 환난의 가벼운 것이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요한 것을 이루게 하시는 과정임을 알기에 잠깐의 진노 속에서 영원한 은총을 믿고 구하는 자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