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시편 31:1~24 주께 피하오니 2020. 12. 23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2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3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4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6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1)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 8 나를 원수의 수중에 가두지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 9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10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11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12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13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17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악인들을 부끄럽게 하사 스올에서 잠잠하게 하소서 18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이 말 못하는 자 되게 하소서 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20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21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22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24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표제어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도 되어있지만 저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다윗보다는 욥이 먼저 생각이 났습니다. 다윗도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인하여 수많은 고난이 닥칩니다만 이 내용에서 욥의 고난이 떠올랐습니다. 다윗이나 욥도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들이기에 결론은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봅니다. 그런데 성도들도 이러한 고난을 역사 속에서 겪는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이러한 고난을 받는 이유는 영원한 피난처를 찾게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 1~3절을 봅니다. 다윗이 주님께 피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 한 구절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고양이나 산토끼 같은 동물들이 종종 차에 치여 죽어 있는 것을 봅니다. 저 동물들도 가족이 있을 텐데, 안전한 거처가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 사태로 구걸하는 분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구걸을 못 하면 더 힘들 텐데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귀찮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몇 사람이 다시 오는 것을 봅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안전한 거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왜 주님께 피한다고 하는 겁니까?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져달라고 합니다.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주께 피한다고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사람들은 생존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것이 자존심을 세우는 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다윗은 세상의 자존심 문제를 위하여 주님께 피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주님의 의로 나를 건져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자신의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어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일이 자기 공로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기에 주의 이름을 생각하여 인도하여 달라고 합니다.

 

4~6절입니다. 다윗이 주님께 피하려고 하는 이유는 대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적들은 몰래 쳐 놓은 그물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그물에서 빼내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속량하였다고 완료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썩어 없어질 우상을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여호와만 의지한다고 합니다. 세상이 요란한 이유는 썩어 없어질 것을 피난처로 삼으려고 경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든 피난처가 우상인데 이런 우상숭배를 성도가 미워하기에 핍박을 받는 겁니다.

 

7~8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7 주의 한결같은 그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주님은 나의 고난을 돌아보시며, 내 영혼의 아픔을 알고 계십니다. 8 주님은 나를 원수의 손에 넘기지 않으시고, 내 발을 평탄한 곳에 세워 주셨습니다.” 4~6절에서도 탄식의 간구와 구원하여 주심을 찬송하는데 여기서도 원수의 손에 넘기지 않으시고 내 발을 평탄한 곳에 세워 주셨다고 찬양합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됩니다.

 

계속하여 새 번역으로 9~13절을 봅니다. “9 주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한에 사무쳐서, 내 눈이 시력조차 잃었습니다. 내 혼과 몸도 기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10 나는 극심한 고통으로 생명이 끝장났으며,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근력은 고통 속에서 말라 버렸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 11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한결같이 나를 비난합니다. 이웃 사람들도 나를 혐오하고, 친구들마저도 나를 끔찍한 것 보듯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마다 나를 피하여 지나갑니다. 12 내가 죽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으며, 깨진 그릇과 같이 되었습니다. 13 많은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사방에서 협박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내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이런 본문에서 다윗의 고난과 욥의 까닭 모를 고난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함께 보입니다. 물론 성도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성도들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피할 곳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미 앞에서 본 대로 사람들이 의지하고 피난처로 삼는 것은 세상의 헛된 우상들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아무리 든든한 피난처를 만들어 두어도 주님께서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이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이 역사 속에서 환난을 통하여 참된 피난처를 찾아가게 되는 자들입니다.

 

14~17절입니다. “14 누가 뭐라고 해도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기에, 나는 주님만 의지합니다. 15 내 앞날은 주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로 돌리시고, 빛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17 내가 주께 부르짖으니, 주님,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오히려 악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죽음의 세계로 내려가서, 잠잠하게 해주십시오. 18 오만한 자세로, 경멸하는 태도로, 의로운 사람을 거스려서 함부로 말하는 거짓말쟁이들의 입을 막아 주십시오.”

 

9~13절의 일이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주님만 의지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다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주께 피하는 이유는 세상의 부끄러움이 아니라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은 세상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 믿는다더니 왜 저런 꼴을 당하느냐는 소리를 듣습니다. 전능한 하나님을 믿는다더니 왜 저렇게 망하게 되었느냐고 조롱합니다. 그런 일을 당한 자들이 구약의 선지자들이며 신약의 사도들입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님께 피하는 겁니다. 주님께 피한 자들은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지만, 세상의 헛된 것들을 의지하면서 주님께 피하는 자들을 조롱하던 자들은 결국 주님 앞에서 입을 닫고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19~21절입니다. “19 주를 경외하는 사람에게 주시려고 주께서 마련해 두신 복이 어찌 그리도 큰지요? 주께서는 주께로 피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베푸셨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20 주님은 그들을 주님 앞 그윽한 곳에 숨기시어 헐뜯는 무리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고, 그들을 안전한 곳에 감추시어 말다툼하는 자들에게서 건져 주셨습니다. 21 주님,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포위당했을 때, 주께서 나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푸셨기에,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께 피하는 자들에게 주신 복이 어떠한지를 찬송합니다. 그런데 또다시 반전이 있습니다.

 

22~24절은 개역입니다. “22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24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내가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고 부르짖는데 그때 주께서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하여 주셨기에 모든 성도에게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비록 지금 세상에서 온갖 환난과 조롱을 당한다고 하여도 여호와를 바라는 자들이라면 강하고 담대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세 곳의 말씀을 다시 봅니다. 첫째는 주께 피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1절과 17절을 보면 여호와께 피하는 이유는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 의로 구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주를 부른 자들을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악인들을 부끄럽게 하셔서 스올에서 잠잠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생존 세상에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았기에 세상의 헛된 것들을 피난처로 삼지 않는다고 조롱을 하고 핍박을 한 자들이 스올에서 잠잠하게 됩니다. 입을 닫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핍박하고 조롱한 자들의 말이 진리임을 그제야 알고서는 입을 닫게 되는 곳이 스올입니다.

 

로마서 9:30~33절입니다.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 ㅋ)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바울 사도가 이사야 28:16절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주께 피한 이유가 바로 이 내용이 됩니다.

 

베드로전서 2:6~8절입니다.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ㄱ)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ㄴ)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ㄷ)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베드로 사도도 이사야 28:16절과 시편 118:22절과 이사야 8:14 절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믿음으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음을 증언합니다.

 

둘째는 5절입니다. 다윗이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신을 속량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부탁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이유는 자신이 사람이 되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 사람됨의 표준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누가복음 23:46절입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십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어떻게 그 영혼을 부탁하는지 봅니다. 사도행전 7:59절입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는 그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22절입니다.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여러 환난을 통하여 주께 피합니다. 환난과 구원의 경험이 계속 반복이 되는데 거의 마지막 구절에서 놀라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의 환난인지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고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신다고 하면서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 하라고 합니다. 주의 목전에서 끊어지는 것 같지만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27:46절입니다. 제구 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누가 봐도 하나님께 저주받아 끊어지는 자리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부르짖습니다. 그 부르짖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죽습니다. 완전히 끊어진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2절처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고 하였지만 주께서는 그 소리를 들으신 겁니다. 오히려 그 끊어짐으로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로 버림을 받아 그들을 끌어안으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시는 일을 하심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입니다.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이 다 사라지면 함께 사라질 것들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가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길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겁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저주받아 죽은 십자가,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믿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역사 속에서 십자가의 복음이 들리는 사람은 세상에 믿던 것들이 헛된 것임을 알게 되는 자들입니다.

 

찬송가 488 가사를 보면 이 몸의 소망이 우리 주 예수뿐이라고 합니다.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고 합니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끊어져도 구주의 언약을 믿기에 내 소망 더욱 크다고 합니다. 환난과 풍파로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끊어지게 하심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망의 닻을 내리게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을 받은 성도라면 반드시 여러 모양의 풍랑이 일어날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풍랑 인연 하여서 더 빨리 주님께 피하여 간다고 노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낮은 마구간에 아기로 오신 하나님, 그 영원한 처소로 우리를 영접하시려고 짐승의 먹이통에 오셔서 자신의 살과 피를 십자가로 내어주신 사람이 되신 하나님, 짐승처럼 보이는 것만 찾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자기 죽음으로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이며 반석이며 흔들리지 않은 영원한 거처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