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8:9~10 안식일의 번제 2021. 5. 16

 

9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10 이는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매 안식일의 번제니라

 

지난주는 상번제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안식일의 번제입니다. 안식일에 왜 번제를 드리는지 안식의 뜻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죄의 삯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결과는 참된 안식이 없이 살다가 결국은 밤낮 쉼이 없는 영원한 둘째 사망에 들어갑니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안식일이 시간의 지성소라고 합니다. 안식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유대의 랍비로서 안식일을 말하고 있지만, 안식일의 완성인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 랍비의 한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안식이 있습니까?

 

본문 9~10절입니다. 상번제의 제물 외에 매 안식일의 번제는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전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상번제는 안식일에도 늘 드려집니다. 그러므로 상번제 외에 안식일에 따로 드리는 번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왜 상번제를 드려야 한다고 하였습니까? 우리가 항상 죄를 짓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기에 상번제가 없으면 날마다 아니 분초마다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상번제를 드리는 목표는 늘 주의 인자와 은혜와 긍휼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고 믿게 합니다. 그 믿음의 결과는 안식입니다.

 

창세기 2:1~3절입니다.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자기 안식이 목적입니다. 천지창조로 하나님의 자기 안식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 그 영원하신 뜻을 보여주는 것이 성경의 계시입니다.

 

사도행전 3:18~21절입니다. “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베드로 사도가 전하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실 것을 미리 알게 하시고 이루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이켜 죄 사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회개란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임을 인정하고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옵니다. 새롭게 된다는 말을 표준 새 번역은 편히 쉴 때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으니 죄책에서 쉼을 얻을 뿐만 아니라 몸의 부활로 인한 완전한 안식을 소망하게 됩니다(8:23).

 

그날은 주님 다시 오시는 날이기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동안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십니까? 만물을 회복할 때까지 하늘이 받아두신다고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무엇을 하십니까? 성령님을 보내주실 뿐만 아니라(2:33, 8:26)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8:34). 기도하신다는 말씀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들을 구원하여 내시는 주와 그리스도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 일을 만물을 회복할 때까지 하십니다. 만물의 회복은 만물을 새롭게 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성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한 자들의 나라입니다. 이들이 다 찾아지면 하나님의 안식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선지자들은 영원 전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영원 전이라고 합니까? 그래서 다른 번역은 오래전부터, 영원으로부터, 일찍이, 초창기부터, 사람의 기억 속에 가장 오래된 시간부터,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번역합니다. 영원 전이라는 말이 어려워서 이렇게 많은 번역을 합니다. 헬라어로도 영원에서부터입니다. 그러므로 영원 전이라는 하나님이 영원하시기에 천지창조 전에 영원하신 삼위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이루시는 겁니다. 천지창조라는 시간과 공간의 창조 이전에 언약하신 내용이기에 영원 전 언약이라고 합니다.

 

디모데후서 1:8~10절입니다.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이 복음을 전하는데 옥에 갇힙니다. 세상은 복음을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옥에 갇힌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야 구원됩니다. 우리가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구원하여 내심이 복음입니다. 영원 전이란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때이며, 혹 상상하였다고 하여도 유한한 우리가 전혀 손 쓸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 영원한 복음이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드러난 겁니다.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 썩지 않을 생명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천지창조의 목적이 하나님의 안식인데 그 안식을 영원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신데 영원하신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어 오셨고 십자가로 그 뜻을 다 이루신 겁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시면 성경의 이런 말씀들이 이해되고 믿어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소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겁니다(1:2). 유다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를 창조하신 이유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 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1:25)”

 

영원 전을 창세 전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기 전에 나를 창세 전의 그 영화를 회복하여 달라고 합니다(17:5). 예수님의 십자가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는 일도 합니다(1:4). 그 구원은 창세 전부터 가지고 계신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17:24). 그러므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그 아들 안에서 택한 자들을 그 아들의 희생으로 다 구원하면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인 안식입니다. 지금도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성전이 지어지고 있습니다(2:20~22). 이렇게 창조의 완성이 이루어지면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님을 찬송합니다(대상16:36, 41:13, 2:20,,,).

 

다시 본문을 봅니다. “봉독 안식일에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소제와 전제를 드리라고 하신 이유는 안식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 흘리는 희생을 통하여 주어짐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영원 전부터, 또는 창세 전부터를 살펴본 이유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안식하셨다는 것은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의 뜻이 안식임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신학자 대부분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서 인간이 타락하니 구속을 예비하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찾아본 영원 전과 창세 전이라는 말씀만 찾아봐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천지창조는 하나님의 안식을 위한 영원 전 언약에 따른 일입니다.

 

출애굽기 16장을 보면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게 됩니다. 만나는 6일 동안 내리고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습니다. 하루 양식만 거두어 먹으라고 하였는데 이틀 치 거두어 보관하여 두니 다음 날 벌레가 생깁니다. 그런데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습니다. 그 앞날 이틀 치 거두어 보관하여 두어도 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러 간 자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만나를 항아리에 담아서 증거 판 앞에 보관하게 합니다. 불신의 증거물입니다.

 

그러면 왜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습니까? 안식일에 노동을 금하시기 위함입니다. 타락 이후에 에덴동산에서 추방됩니다. 그 후로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됩니다. 이 노동은 6일간 합니다. 6일 노동하고 7일은 안식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안식이 어떻게 주어지는지 알게 합니다. 인간의 노동력으로 얻는 양식은 결국은 썩을 양식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동력으로 얻는 양식조차 햇빛과 비가 없다면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0:8~11절입니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엿새 동안 힘써 일해야 합니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노동력으로 얻는 양식도 은혜이지만 영생의 양식은 아닙니다.

 

신명기 5:12~15절입니다.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안식일에 노동을 금지한 것은 구원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혜택과 구원의 혜택도 은혜입니다.

 

다시 본문을 봅니다. 봉독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소제와 전제를 드립니다. 안식일에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제물을 드리는 일은 합니다. 이 일은 제사장과 레위인이 합니다. 물론 제물은 백성들이 드립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번제를 드리는 제사장은 일해도 그것이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 신명기 본문을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신약의 본문을 봅니다.

 

마태복음 12:1~4절입니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 예수께서 이르시되 ㄱ)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배가 고파 밀이삭을 손으로 잘라 먹는 일은 율법이 허락합니다(23:25).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시비를 건 이유는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다윗이 제사장만이 먹는 진설병을 먹었다는 말씀합니다. 떡을 물려내는 날은 안식일입니다. 다음의 말씀을 봅니다.

 

마태복음 12:5~8절입니다.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5절의 각주 ㄴ)을 보면 오늘 본문인 민수기 28:9, 10절로 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에 일 년 된 흠 없는 숫양 두 마리를 번제로 드리는 일은 상당한 노동입니다. 그리고 소제와 전제도 드립니다. 이런 일을 해도 죄가 되지 않음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노동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왜 제사장이 안식일에 제물을 드리는 일을 하라고 하신 겁니까? 그 이유는 제사장의 일함과 또 그 희생제물로 인하여 안식이 주어짐을 계시하시기 위함입니다. 구약에서는 제사장이 제물을 드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제사장이시면서 동시에 제물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희생인 십자가로 참된 안식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7절의 인용된 말씀은 호세아서 6:6절입니다. 이미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 곧 긍휼입니다. 그러므로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제사는 하나님의 긍휼을 담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흠 없는 짐승의 희생도 하나님의 긍휼이며 그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안식일에 일하는 것도 희생입니다. 그 안식을 주시는 참 주인이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동시에 제물이 되시기에 온전한 안식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 이 안식을 받은 사람만이 안식을 누립니다.

 

히브리서 4:8~11절입니다. “8 만일 1)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율법을 받은 모세의 역할은 율법안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두어 여호수아에게 넘기는 역할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백성들을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여 안식을 얻게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안식을 주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만족이며 안식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오전에 본 요한계시록 14:13절의 말씀처럼 지금 이후로 주 안에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한 말씀이 바로 안식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옛 자아의 욕심이 남아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런 우리의 옛적 자아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는 일이 말씀을 보는 일입니다(4:12~13). 우리의 속 생각들이 다 드러나서 벌거벗겨져야 대제사장에게 달려갑니다. 그러므로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에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4:14~16). 그 은혜의 보좌 앞에만 참되고 영원한 안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