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딴에 성심성의껏 제안한다는 것이 바로 "둥지"였다 (막9:5)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심성은 꼬물도 달라진게 없다

베드로를 나무랄수가 없는것이 나라도 그러지 않았을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시간은 멈추어버려진것만 같다(창2:17)

 

우리는 늘  자기보금자리 만을 위해서 이른아침부터 사업장 ,직장 ,학교  ,가사일..

눈만뜨면 나만 살려고 애를 쓰는데  난데없이 부른적도 없는 철거반장마냥  어떤누군가가 쳐들어오신다

그분이 뜻밖에도 예수님이시다..세상에나 반전도 그런 반전은 없을텐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멋지게 차려입고 오시면 좋으려만..

처참한 몰골에 흉악하게 맞은 저주스러운 모습으로 (사53)

늘 주님의 낮아지심을 보란다...  할말없게 만드시는게  하나님이시다

자신의 열심을 알아주며 소위 말하는 "참 좋으신 하나님" 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는가?

 

언젠가 영화를 보다가 소스라쳐 놀란적이 있다

긴머리를 휘감은채 한여자가 텔레비젼에서 성큼성큼 기어나온다

실제인거 마냥...하지만 그건 분명 영화속의 한장면일뿐... 그때뿐인것을...

분명한건 다시보면 처음처럼 놀라지 않는다는 게다

 

 

하지만...말씀은 현실 그자체다

한번 놀라지 두번 안놀랍니다 가  안된다는 말이다  모든게 우리 손아귀에서 떠났다는 말이다

6월 땡볕아래 땀뻘뻘흘리며 한모한모 정성스럽게 모를 심고 있을무렵

난데없이 어디서 출몰했는지 찰거머리 마냥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래야 떨어지지 않는 기운이랄까?

떼어내면 언제그랬냐는듯 또 붙어있고 질세라 또 떼어내면 또 붙어있구 그야말로 식겁할 노릇이다

그러나 그 찰거머리가 핥키고 지나간 자리는 어김없이 피가 흐르고 있다.

요청한적도 없을뿐더러 원한적도 없었는데 그자리엔 피가 흐르고 있다

 

 

그순간   말문이 막히지 않을 사람있으랴

 욥이 재를 뒤집어쓰고 할말을 잃어버린거처럼...(욥42:6)

 지나간 구약의 옛사람들의 고백이 허구가 아니다.실제다

 

원하든 원치않든 말씀은 사건화 되어서 불쑥 내방하신다

본래 처음부터 애시당초 내것은 없었을뿐더러  내속을 나라는 인간보다 더 잘 꿰뚫고 계신다

더이상 선악과 따먹은 아담탓을 못한다  바로 자신이 선악과 따먹은 죽을수밖에 없는 죄인이기에...

더이상 숨을 곳도 없고 숨길수도 없다 집요하기 짝이없다 드디어 자신의본질(죄성)을 드러내게끔 만드신다

(히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썬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이 현실에 우리가 처해있음을 

더할것도 없이 뺼것도 없이 그저 감사하게도 목격자로서 살아가게 될뿐이다(막15:39)

 

"자신의 둥지치기"만을고수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빈틈없는 일하심(약속)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자기 영역만 고수하는지를...바보같이 이땅에 연연하는지를 

말씀(골3:1_3)을 통해 눈물나게 하신다

갈수록 괜찮아집니다가 아니라 갈수록 죄인입니다(눅5:8) 소리밖에 나올수 밖에 없는자...

 

복음에 빛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