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청년이 예배에 참석했다. 그 청년 왈  "복음을 증거한다고 해서 이곳까지 찾아 왔는데, 이 교회는 왜 사람들이 많은 거유?"

"글쎄 올시다. 복음 증거하는 것하고 사람 많은 것하고 왜 연관을 짓는 거죠"라고 웃으면서 응대했다.

"복음이 아닌 것을 증거하니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 아니예요?  지금 제가 나가고 있는 교회에는 목사님이 오직 복음만을 외치기 때문에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람이 목사님 가족하고 저하고 권사님 한분밖에 없어요. 그나마 제가 빠지고 권사님도 가끔 빠지면 예배드리는 목사님 식구뿐이예요."

 

"그렇구나. 지금 내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성도가 불어나는 재미로 지내왔구나. " 씁쓸하지만 자신을 되돌아 보았다.

청년은  "이 교회는 복음이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라며 어느 집사에게 말을 건냈다. 그 집사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복음이 증거되면 사람들이 다 떠나는 거예요. 복음이라는 것이 뭔지 모를 때 사람들이 몰리거든요." 이 청년은 복음의 유무를 교회 보이는 현실로 판별하고 있었다.

 "이 조국교회가 제대로 된 복음이 증거되어 망하는 교회를 보는 것이 나의 소원"이라던 박윤선 목사가 한 유명한 일화가 떠올랐다.

그후 복음 아는 것의 유무를 불구하고 십자가복음을 마스터한 많은 분들이 오고갔다. 그들 중의 일부는 복음을  누구 보다 자기가 아는 복음이 더 확실하다며 파당을 지었다. "나는 이근호!, 나는 정낙원!, 나는 누구 누구~"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어떤 집사님이 복음에 감격하여 교회에 나와서 식사봉사를 하려고 했다. 그러자 또 다른 복음을 안다는 집사가 말하기를 "그것은 당신의 의를 드러내는 거예요." 하면서 그냥 주님의 다이루심 안에서 감사만 하란다.

봉사하려는 그 집사님도 놀라서 "복음이 이런 거예요? 참 편하네! 복음을 모르는 자들이 이것도 하려고 하고 저것도 하려고 하는구나! 복음을 알면 가만히 있어야 되는구나!" 그 후에 이 집사님도 조용히 사라졌고 연락이 두절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러나 저러나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이니" 무엇을 더바라리요! 

 

그리고 교회는 복음을 안다는 이쪽 파들도 떠났다. 복음을 더 아는 목사들을 찾아서 저쪽 파들도 떠났다.

그리고 기존(복음에 무관심한 분들) 교인들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의 이유는 또 달랐다.

"복음을 아는 사람들이 왜 저러는 거요? 함께 섞이지도 않고  가르치려고만 하고 봉사나 섬김은 없고 입만 가지고 다니면서 이러쿵 저러쿵 말만 무성하고 행함이 안 나타나니 웬 참!" 그들은 나름대로 행함으로 복음을 판단했다. 그리고 책망해주지 않는 목사에게 화살을 돌렸다. 지금 이러한 십자가복음의 현실이 교회에 닥쳤다. 떠난 분들은 또 다른 곳에서 민들레 홀씨되어 복음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다 떠나고 난 예배당은 혹독히 밀려오는 임대료의 고지서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관심사를 지금 어디에 두고 있는가?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말한다. "그 목사의 잘못은 간단하다." 무관심의 관심?

이제 문을 닫아야 한다..... 그 청년의 말이 옳았다.  문닫기 위해 복음 전하는 교회가 많이 나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