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머나 카페의 어느 분의 글입니다)

 

힘겨워하시는 우리 식구들께~~

 

저는 지루하고 무조건 진지하고 도식적인 사람이예요. 벗어나고 싶지만 얼마나 깊이 저를 가두어 놓았는지 저를 찾을 수가 없어요.

 

제가 왜 어릴때부터 삶이 괴로웠는지, 그래서 자살도 시도할만큼,,,,  최근 들어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는데 그건 매순간이 긴장과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찬, 삶을 관리할 수 없는 제 정신적 노이로제 때문이었더라구요. 어릴땐 뇌를 꺼내 씻어서 사용하고 싶달만큼 극도로 불안하고 사람이,관계에서 오는 긴장이 무서웠고 힘겨웠어요.

 

가난한 농사꾼이면서 농사를 싫어하여 바깥으로만 도시던 아버지와 매맞고 노예처럼 살던 엄마에게서 너무나 달갑지 않은 아이로 태어난 저는 생애 첫날부터 반가워해주는 사람이 하나 없는 잉여인간이었어요.

젖도 굶고 사랑도 굶어 공허와 외로움으로 마음을 채웠나봐요.

남들이 교복입고 학교갈 때 공장다니며, 식당에서 자고 먹고 일하고 늘 어둡고 쳐진 삶을 살았지요.

 

그러니 누군들 저를 사랑할까요?

어찌어찌해서 순진한 부잣집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자식 둘을 낳았는데  자존감을 근본적으로 못 가진 저에게는 애들까지 모실 대상이지 사랑할 대상이 아니더군요. 완벽주의 남자인 남편 옆에서 정신질환이 생기게 될지경에 이르러서야 그간의 당연한 미움받음을 앙갚음하여 이혼했어요. 완벽주의 남편과 자존감 없는 비루한 여자. 당근 멸시천대 받고 냉대 받았는데 그걸 새기고 새겼다가 원수로 대한 거죠.

 

그간에 인생을 만드신 하나님을 만나 묻고 싶어 기웃거렸고 열심을 다했던 교회당, 조직들은 이러한 저를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여 갈기갈기 찢어 놓았습니다. 있지도 않은 자존감을 정죄로 율법으로 짓눌러서 정신과 출입하며 간질약만큼 고농도의 치료제로 수면을 취했습니다.

지금도 와인을 마시고 잠을 청합니다.

 

드디어 복음의 진수인 성경의 비밀을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듣고 나서 지금까지 속으론 통곡을 합니다.그러나 통곡조차 자연스럽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저의 도식적으로 굳어진 체질에 기암할 지경입니다.

 

카페에서 자연스럽게 자기 맘 표현하시는 분들을 보며 너무너무 부럽고 슬픕니다.

 

지금까지 산 흔적은 모두 진흙탕에서 뒹군 것뿐이고 이제야 정체성을 확립할수 있으려나,,, 매일 말씀을 듣고 또 듣고 씁니다.

 

물론 인간이 갖출 정체성은 하나님 앞에서 부숴질 바벨이지만 바벨이 되어봐야 부서짐도 받을 거 아닙니까?

하나님 말씀을 깨닫기 전부터 이미 진즉 스스로 흙인 것은 진리와 같지 않은 거 잖아요?

 

여러분은 제겐 부러움의 대상이고 은혜 받음에 있어 대선배들입니다.

 

그렇게 애쓰며 살아도 보고 노력도 해보고 실패도 해본 분들입니다. 남을 위해 희생도 하시고,,,,그러고 나서 만난 하나님과 부등켜 안고 울수도 있지 않나요?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아마 위로를 드리고 싶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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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몸이, 많이 다운된 상태에서 하나님에게 하소연하고 몸부림치는 여러분들을 떠올려 봅니다.

같이 울고 싶은데 저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내일 다시 학교에 가서 영어에 갇혀 힘겨워할 겁니다.

그래도 가야겠지요?

안녕히 주무세요^^

 

 

 

(이 글을 보다가 지난주일 오후 예레미야퀴즈 시간에 드린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렘3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여러 민족의 앞에 서서 야곱을 위하여 기뻐 외치라 너희는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8    보라 나는 그들을 북쪽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라 그들 중에는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과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있으며 큰 무리를 이루어 이 곳으로 돌아오리라
9    그들이 울며 돌아오리니 나의 인도함을 받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10    이방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남은자가 돌아오는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창기와, 다섯 남자와 헤어지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사는 여자 이야기를 하면서 교회란 그런 자들의 모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글을 쓰는 중에 떠오른 생각인데 그 여인이 일곱번째 만난 남자가 예수님이네요^^. 아니 예수님께서 일부러 그 여인을 만나주시기 위하여 유대인들이 피하여 가는 사마리아 우물가로 가셨지요! 이제 물동이 던져버려도 되는 생명수를 만난 것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