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오목사님이 딸에게 보낸 편지이고 이것은 아내에게 보낸 편지임)

 

한 남자의 남자...내 팔자 펴야 정의(正義)다.

2010. 1. 19. 받는 이 : wildflower9@hanmail.net

1. 신이(딸)가 원하는 두가지 일을 해주다. 사회탐구 참고서 사다주는 일로 중앙동 대동서적에 왕래했고 오후 자율학습을 가정학습으로 대신한다는 확인서를 써주다. 대동서적에 갔다가 철학 인문 심리가 나란히 있는 코너에서 책냄새와 제목구경만 실컷하다 집에 사놓은 책을 언제 다 읽나 하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 약간 그리고 한숨 절반 그리고 체념절반쯤을 하다. 이걸 다 버무려서 그릇으로 빚으면 귀신도 도망갈 거다. 으흐흐흐허이킬킬킬컬컬켈켈...........그러다 늑대로 변하고 말걸.

확인서 건은 참 우습다. 못믿겠다 못 믿것다 아무도 못믿겄다 하고 서로 서로 악을 쓰는 꼴이라니. 언어의 신뢰가 개인의 인격에 달린 것이 아니라 배후의 힘에 의존되어 있다. 얼마나 탱탱한 돈의 근육이 버티고 있느냐에 따른다. 일단 못믿겠다고 질러놓고 돈의 힘이 다시 신뢰를 매겨줄 때 그것도 일시적으로 그때그때 잠시 나타났다가 금시 사라지는 형국이다. 그 사라짐을 있음으로 다시 조립하려는 눈물겨운 노동의 흔적들마저 돈의 힘은 다시 잠식 또 잠식하고야 만다. 아예 체념하고 그냥 놀아나야 편하고 정신차리면 차리는대로 놀아나면 놀아나는대로 자아는 환영처럼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면서 유령놀이를 계속하고 신들린듯이 무엇에 몰두해서 미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만든다.

미쳐야 산다. 살려면 미쳐라. 미칠 대상을 다오. 제일 싼 것 라디오 그 다음 텔레비 그 다음 영화 그 다음 휴대폰이나 엠피 갖고 놀기 신문이나 잡지보기 얄팍한 책읽기, 연애는 꿈도 못꾸지. 사치일 뿐이고 바라보지 못하는 꿈같은 것. 일용직 노무자에게 스키장이나 골프장 같은 것. 자본의 유령이 자비의 신으로 둔갑하고 천년묵은 여우마냥 환생해서 설치는 데가 교회. 오늘도 난 님(돈)보러 왔나이다 오늘도 나는 뽕(돈)따러 왔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님도 보고 뽕도 따게 하여 주시되 그저 대박나게 하옵소서. 수능대박 건강대박 가정화목대박 가문번창대박 사업대박 승진대박 여기서 반드시 이게 들어가야 맛이다. 나 빼고 다른 놈들 다 쪽박!


2. 비가 내린다. 비도 아내의 은유중의 하나다. 부슬부슬 청승맞게 내려야 옳다. 이게 아내의 은유가 내리는 정의다. 이렇듯 정의는 자기팔자에서 나온다. 내 팔자 펴야 정의다. 이 세상에 정의롭지 않은 인간 하나도 없다. 나보다 더 옳은놈 나와 보라고 해라. 아니라고 하면 그 놈이 나쁜 놈이다 서로 인정하지 내가 제일 옳다. 서로 서로 인정하고 서로 서로 세상에서 제일 착한 놈 되고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위선자가 되고 가장 자기밖에 모르는 살해자 살인자 된다.

그런데 다 죽으라고 한 그 대상 속에 자기 아들만 살려낸 신이 버젓이 살아 있고, 그 신의 주장이란 그 아들의 주장이란 ‘나 외에 옳은 자가 없다’이다. 세상을 악하다 증거했다 이다. 너 나 마음에 두기 싫지? 이다. 나 빛인데 너 어둠 맞지? 이다. 이 어둠을 비집고 톡톡 새순 돋듯이 튼살 비집고 새살 나오듯이 나오는 새 피조물, 곧 창조란 이제 증거자 혹은 목격자라는 방편으로 뿐이다. 도구라는 방편, 그릇이라는 방편, 전달자라는 방편, 웃음소리 와하하 웃어 내용만 남기고 형식을 안개처럼 흩날리고 사라지는 바람의 자식들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데 그저 아는 것이라고는 나를 나되게 하신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분 따로 계셔서 이렇게 만들고 계셨군요...


3. 참을만하다. 견딜만하다. 약간의 우울 잠시의 격랑같은 울분, 다 나의 육의 일부요 육의 잔재요 함께 숨 끊어질 날까지 싸들고 갈 도시락같은 것이다. 내 세포 세포가 이런 지저분한 것 먹고 산다. 자아가 먹는 양식은 자존심 하나뿐이다. 그래 먹자, 썩을 양식이 아니던가. 이것조차 참된 양식인 피뿐임의 증거용으로 바닥에 지천에 깔려줘야 하는 먹어도 죽는 양식, 원망과 대듦과 대적의 흔적들로서 기쁘게 언약완성의 재료로서 말씀의 수거작용의 일부이다.

누룽지처럼 박박 긁어서 쓸어담으시는 주부의 섬세하고도 야멸찬 살림솜씨를 오늘도 믿자. 집안 살림 거덜날일 없다. 한푼도 허투루 새어나가지 않도록 틀어막아 한푼조차도 자기입으로 다시 되가져가시는 말씀성취의 공로회수의 권세에 이끌려 우리가 부활의 세계에 덩달아 회수당하고 있음의, 시간정지의 순간들을 맛보게 하옵시기를. 그래서 ‘내가 과연 이 나라가 내 나라아니다’ 하신 그분의 세계에 속한자인지를 확인해 주옵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