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사의 딸>(박혜란, 아가페북스) '故 박윤선 목사의 딸이 말하는 아버지의 신앙관과 가슴 아픈 가족사'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목사의 딸'이란 책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슬픈 가족사'란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는 한국교회가 존경해마지 않는 박윤선 목사의 딸로 박윤선 목사의 삶을 어쩌면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생생한 증인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 그려 주는 박윤선 목사의 민낯은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과연 딸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하여 이렇게 적나라하게 글을 쓸 수 있을지 한국적 마인드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에서 지내면서 한국적 온정주의에 빠져 있지 않고, 부모라 할지라도 사랑으로써 진실을 말할 수 있는(speaking the truth in love) 성경적 관점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아내와 함께 먼 길을 가면서 운전대를 잡은 아내에게 이 책을 읽어 주었다. 아내는 내가 책을 읽어 줄 때 책의 내용에 놀라움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어머나… 이럴 수가…" 문장 하나하나를 읽어 나갈 때마다 어쩜 그렇게 박윤선 목사가 매정했을까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박윤선 목사는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분이었다고 저자는 증언한다. 아내에게 매정하게 대했고 자녀들에게도 전혀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보여 주지 않고, 오직 연구하고 책을 쓰는 일과 교회의 일을 하는 일에만 매어 달렸던 분으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성경적인 세계관보다는 육과 영을 구분하고 육적인 차원은 무가치하고 더러운 것으로 보는 비성경적인 이원론적 세계관에서 나온 행동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모습이 한국교회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데, 거슬러 올라가면 목회자들의 스승이었던 박윤선 목사에게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하긴 박윤선 목사가 원래 유교적 전통에 깊이 뿌리박힌 상태에서 복음을 받아들였으니, 당신 스스로 유교적 전통을 벗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는 박윤선 목사에게서 율법주의 신앙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면을 지적한다. 박윤선 목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기보다는 죄를 지으면 엄벌에 처하는 무서운 하나님이었고, 따라서 하나님의 벌을 피하기 위하여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율법주의적 신앙으로 일관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박윤선 목사가 선교사를 배웅하기 위하여 택시를 탔다가 결국 교단으로부터 교수직을 박탈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박윤선 목사가 그때 택시를 탄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게 저자의 증언이다. 박윤선 목사는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는 것을 생명으로 알고 지켜야 했으며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알려 주는 데에는 실패했던 분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얼마 전 우리 가족의 경사가 있어서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예전에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단벌 신사였던 나의 선친이 양복 윗도리를 큰집에 놔두고 오는 바람에 어머니는 주일날 동생인 나의 외삼촌에게 자전거를 타고 가져오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다른 외삼촌이 나의 어머니를 향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고 한다. "누나만 혼자 지옥을 갈 것이지, 왜 동생에게까지 일을 시켜서 동생도 지옥 가게 해?" 

그렇다. 당시에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은 주일 성수는 하나의 가장 중요한 율법이었고 주일을 범하면 지옥을 가는 줄 알았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결국 신학교에서 가르치던 박윤선 목사에게로 그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율법주의적 신앙에는 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야 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구원파를 비롯하여 수많은 이단들이 발호하는 것은 결국 한국교회의 율법적인 신앙관에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는 철저하게 율법주의를 배격하고 있지만 왜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율법주의적 신앙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더 나아가 박윤선 목사는 샤머니즘적 기복주의에 사로잡힌 분이었다.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여 복을 얻는 것이 신앙의 기조였던 것이다. 그가 네덜란드에서 보낸 편지를 보면 하나님을 잘 믿은 국가였기 때문에 화란이 잘 사는 나라이며 선진국이라는 천박한 생각이 나타난다. 우리가 흔히 듣던 철저하게 물질주의적이고 기복주의적인 생각이 별로 공부를 하지 못한 부흥사들의 입에서만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그래도 당시에 가장 많은 학문을 했다고 생각되는 박윤선 목사의 생각에서 나왔다고 하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 한국교회 안에 깊게 뿌리박혀 있는 샤머니즘적인 기복주의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임을 잊게 만들고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화를 내고 정성을 다하면 축복해 주는 샤머니즘적 신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김성수 목사의 말대로 한국 안에는 양복 입은 무당들이 가득하게 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박윤선 목사는 시대의 아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철저하게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사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가족들을 돌보지 않고 그저 태연한 척 하는 것이 선비라고 생각되는 문화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아무리 복음을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비판보다는 안타깝게 생각하며 동정하는 마음이 있다. 사실 나도 목사의 아들인데, 나의 선친도 박윤선 목사보다는 좀 더 나은 것 같았지만 크게 보면 다르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몇 부분에서는 나의 선친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했다. 아니 아직까지도 내 안에 들어 있는 나의 단점을 읽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회개한다. 좀 더 철저하게 복음으로 변화되는 내가 되기 위해서 기도한다.

박윤선 목사가 한국교회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은 분명 무시할 수 없다. 박혜란은 자신의 아버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남편 욕을 하는 아낙네들이 은근슬쩍 남편 자랑을 일삼듯, 박혜란의 글 속에서는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박윤선 박사의 장점들도 여기저기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시대의 아들로 태생적 한계를 지닌 분이었다. 

박혜란의 책 '목사의 딸'은 한국교회의 갱신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바로 이때에 타이밍을 잘 맞추어 등장했다. 나는 이 책이 단순히 전처의 딸로서 아버지에게 맺혀 있던 한풀이를 악의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한국교회가 더욱 복음으로 갱신되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우리에게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시의적절하고 한국교회의 현재를 고민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아픈 가족사를 들추어내면서까지 한국교회의 갱신을 걱정해 준 박혜란 목사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나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더더욱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깨닫는다. 한 없이 부족하고 자격이 없는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이국진 / 대구 남부교회 목사. 저서로 <예수는 있다>, <사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