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화목교회 차경민 목사)




20180114 소선지서 강해#72 스가랴 2장 6절~13절 '도망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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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목사님께서 설교는 ‘자기부인’이라고 하셨었습니다.

하면 할수록 능력의 한계가 느껴지고 자기를 부인(부정)하게 되네요.

   

 

예전엔 정말 잘했던 것 같아서 우쭐했는데,

요샌 도대체 이게 뭔가 싶습니다.

그래서 자기부인이 아니라 자기비하가 될 때가 더 많습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았는데

한숨만 나옵니다.

기도도 했다가 말씀도 봤다가...

   

 

도무지 머리가 하얘서

설교 뜯어 고치기만 여러번입니다.

   

 

차라리 설교를 안해야겠습니다.

   

 

그냥 시를 쓰렵니다.

그냥 느끼는데로 은혜 받은데로 시를 씁니다.

   

 

옛날에 문학책에

‘시를 쓰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했으니

시도 아닌 시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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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 vs. 나

   

 

1

   

 

유대인 포로들 소원이 유대 땅으로 돌아가는 것일텐데

‘돌아가라 돌아가라’가 아니고

‘도망가라 도망가라’??? (스가랴 2장 6, 7절)

   

 

왜?

   

 

아... 그렇구나...

   

 

안 도망가고 싶어하는구나!

계속 거기 살고 싶구나!

   

 

70년 전에는 유다에서 안 망한다고 하더니

70년 뒤에는 바벨론에서 안 망하고 계속 살고 싶구나.

겨우 터전 잡은거 정리하기 싫구나.

   

 

그렇구나, 이게 인간이구나.

그게 바로 ‘나’구나.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나’는 안 망하고 싶구나.

   

 

그래서 오늘도 예수님 바지단 붙잡고

‘축복하시지 않으면 안 놔줄겁니다!’라며 씨름하고 있구나.

   

 

그러나 은혜는, 그러한 ‘나’를 죽여버리시는 것.

나의 환도뼈를 무너뜨리시는 것.

   

 

그렇게 다리 저는 야곱이 되어도

언약을 가졌으니 다 가진 것이구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18:8)

이 말씀이 그 뜻이구나.

   

 

‘나’를 죽여주시는 과정,

‘나’를 열 두 토막으로 살해하시는 과정이

이 땅의 삶이구나.

   

 

그런 ‘나’와, 예수님이라는 ‘나(야훼, 에고 에이미)’가

오늘도 싸우고 있구나. (나 vs. 나 / 출세 vs. 출세상)

   

 

2

   

 

말씀에 순종하여

약속의 땅으로 도망왔어도

나는 여전히 ‘나’구나.

   

 

‘내’가 내 의지로 도망왔다 여기는구나.

내가 잘나서 복음에 눈을 떴다 여기는구나.

내가 내 의지로, 내 열심으로, 교회를 이루어 가는구나.

   

 

70년 전에는 유다에서 안 망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교회에서 안 망하려고 하는구나.

손해 안 볼려고 하는구나.

   

 

그런 ‘나’에게 예수님은

‘나(야훼, 에고 에이미)’라고만 하시는구나.

   

 

포로잡혀가게 하신 분도 나(야훼, 에고 에이미)이시고

본향으로 도망하게 하신 분도 나(야훼, 에고 에이미)이시구나. (6절 ‘내가 너희를 하늘 사방에...’)

   

 

나는 내 영광만 위해서 사는데 (요5:44)

예수님은 예수님 영광만 위해서 일하시는구나. (8절 ‘영광을 위하여 나(메시야)를...’)

   

 

‘나’를 범하는 자는 하나님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자랑했는데 (8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그것이 라멕의 자랑이구나. (창4:24)

   

 

하나님은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는게 아니라,

‘언약’을 눈동자 같이 지키시는구나.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창12:3)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눈동자 같이 지키시는구나. (8절)

   

 

내가 손을 움직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손이 일을 하시는구나. (9절)

   

 

내가 신부가 되어 신랑에게 가는 줄 알았는데,

신랑이 직접 내게로 와서 머무시는구나. (성육신, 임마누엘. 10절)

   

 

나는 나만 복음을 아는줄 알았는데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였구나. (11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네 하나님이 되리라’는 약속을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루시는구나. (11절)

   

 

내가 땅을 거룩케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땅을 거룩케 하시는구나.

내가 예수님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소유하시는구나. (12절)

   

 

이렇게 ‘나’와 ‘나(야훼, 에고 에이미)’가 겨루니

참으로 우리는 목이 곧은 ‘이스라엘’이구나. (창32:28, 호12:4)

   

 

그런 나를 보고

‘네가 이겼다’라고 하시면서 ‘패배’시키시니 (창32:28, 호12:4)

이 은혜가 나에게 크도다!

   

 

이 은혜 앞에서 무슨 말을 하리요!

오직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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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벨론으로부터 복음에게로 도망가야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예수님에게로 도망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출세상’하는 것입니다. ‘출세’는 ‘나’가 사는 것이지만, ‘출세상’은 ‘나’가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으로 출세상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손해볼 줄 모르는 '나'는, 아직 도망한게 아니지요. 하나님은 그런 '나'로부터 도망가라고 하십니다. 환도뼈가 위골되고, 다리를 절면서, 약속의 땅으로 도망쳐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