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대하여!

 

등록한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이 예배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분은 인터넷 생중계를 볼 수 없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냐 보는 것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본다는 것은 구경하는 느낌이 있어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헌금, 헌신처럼 바친다는 개념이 있어서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 않고 도리어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입니다(17:25).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습니다(20:28).

그러므로 오히려 본다는 것이 더 나은 개념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홍해 바다 앞에서 모세가 너희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고 하였습니다(14:13).

그래서 저는 예배 합니다라는 표현을 씁니다만 이것도 만족한 표현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바로 이 때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우물가의 그 여인을 만나주신 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정성을 갖추고 분초 단위로 리허설 하면서 예배를 준비하여 드린다고 하여도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종교행사는 되어도 예배는 안 된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예배란 무엇입니까?

구약은 제물을 직접 드려야 하기에 구약의 완성인 신약에서 예배를 보겠습니다.

신약에서 예배라는 단어가 한글로는 10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도 요한복음 4장에서 5(4:20,21,22,23,24) 나오고

요한복음 12:20절에 보면 명절에 예배하러온 헬라인 몇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십자가 이전에 구약적인 예배를 하러 왔습니다.

사도행전 8:27절에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 맡은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려 왔다가 돌아갑니다. 여기서 빌립을 만나 복음을 듣는데 여기서도 구약의 예배입니다.

사도행전 24:11절에서 바울이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합니다.

아직 건물이 파괴되지 않았기에 사도들도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예루살렘 성전에 오는 예배는 곧 없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표현되는 말은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 않고 예배를 한다고 합니다.

로마서 9:4절에서 유대인들에게 예배가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서 12:1절에서 너희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헬라어로 같은 단어이지만 한글로 경배라고 사용하거나 절한다고 표현한 것을 봅니다.

마태복음 2;2절에서 동방박사들이 경배하러 왔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8:2절에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절하며 나아옵니다. 절한다는 표현이 예배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히브리서 11:21절에서 야곱이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10.25 절에서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절합니다. 이 절한다는 단어가 예배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립니다.

요한계시록 4;10절에서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립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예배, 경배, 절하다는 헬라어 단어는 같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두 단어의 합성입니다.

프로스라는 전치사와 퀴네오라는 명사입니다.

프로스는 ~대하여, ~앞으로입니다.

퀴네오는 개를 말합니다.

개가 주인 앞에 엎드린 모습을 예배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수로보니게 여인과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춘 여인이 예배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당에 모여서도 예수님 앞에 엎드리지 않으면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드림으로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예배 성공하여 인생 성공하려고 하는 짓도 우상숭배입니다.

십자가 지신 그 예수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예배입니다.

 

빌립보서 2:10~11절입니다.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러면 우리가 예배라고 하는 모임에 대하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초대교회 때에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기를 힘썼습니다(2:46).

그런데 계속하여 매일 모일 수는 없으니 일주일에 한 날 모였습니다.

그 주간의 첫날(20:7)은 안식 후 첫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며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20:19).

그래서 교회전통은 이 날을 주일이라고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임을 주일을 지켰다고 하지 않고 그냥 모임이라고 합니다(고전5:4: 고전11:17~18, 20, 33: 14:6). 

그래서인지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 날짜를 미신적으로 지키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서

다른 날짜에 모여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임은 어떠해야 합니까?

히브리서 10:22~25절입니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피 뿌림을 받았다면 모이기를 힘씁니다.

그 이유는 함께 소망을 굳게 하며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모임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모임이며

주님의 그 약속을 바라보며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모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