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다고 하셨을 때 자기들을 위한 구원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왜 우리를 구원한다고 하고서는 이렇게 고생시키는가 하는 원망이 나오는 것은 자기를 위한 구원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편 98:1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기이한 일을 행하사 구원하신 것은 자기를 위한 구원이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을 위하여 구원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구원을 온 세상에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그 보이신 구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에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을 보이시기 위한 구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행한 일이란 원망과 불평뿐이었습니다. 홍해바다 건너고서 잠시 찬송하지만 그 전과 후를 비롯하여 40년동안 끝까지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약속의 땅에까지 들어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은 그렇게 반역하는 백성들이지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드러내시기 위한 구원임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보고서 무어라고 하게 됩니까? 저렇게 반역하는 민족이 구원을 받은 것은 그들의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이구나를 보이시기 위한 구원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자신을 위한 구원이라는 구체적인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구원인 것입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주의 인자와 성실하심을 보이시기 위하여 구원하신 것입니다. 반면에 구원받은 자들의 죄악을 드러내시는 것이구요!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들은 자기들의 의로움이나 착함을 말할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주의 인자와 성실을 보이시기 위하여 구원받은 것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신약시대의 구원받은 자들이나 한결같이 의인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신다는 그 뜻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주의 인자와 성실하심으로 그 언약을 이루셨기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자들은 자기들의 성실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성실하심을 찬양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애가 3장에서 이렇게 증거 하고 있습니다.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에베소서 2:7절에서는 이렇게 증거 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구원이란 나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 주님의 인자와 성실, 자비하심의 무궁하심을 보이시기 위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구원받은 자들은 주의 자비를 드러내는 자들입니다. 자신은 죄인중의 괴수임을 고백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