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교회는 교회력을 따른 절기를 지키지는 않습니다만 극동방송부장이 고난주간 3분 정도의 묵상 5편을 준비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주 저녁 6시부터 7시 사이에 방송(인터넷으로 지난 방송을 들어보니 6시 50분쯤에 나옵니다)이 나간다고 합니다. 이 글을 올리려고하지 않았는데 곽 집사님의 묵상 글을 보고서 생각이 나서 올렸습니다. 곽집사님의 글이 다 올려지면 이곳에 정리하여 한번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마가복음 1:15~18. 성전청결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ㄱ)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ㄱ)(사 56:7렘 7:11)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오늘부터 고난 주간이 시작됩니다. 많은 교회들이 고난주간에 특별한 행사들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고난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성전을 통하여 먹고 사는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그의 가족들까지 하면 수십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거대한 권력체입니다. 권력은 반드시 돈과 연결이 됩니다. 이런 성전에 예수님께서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둘러엎으십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그 상들을 둘러엎은 것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나님은 제사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통회하고 자복하는 상한심령을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이 말씀들도 이사야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미리 그리스도의 영으로 고발한 내용들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행동과 말씀으로 인하여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를 의논합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난주간이 시작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 교회에 오시면 어떻게 하실까요? 우리의 마음에는 과연 매매하는 모습이 없습니까? 주일날 여전도회 사업한다고 참기름 파는 것이 장사일까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여전도회가 주일날 장사해서 선교헌금 마련하여 선교를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교회에 복을 주셔서 세상에서 잘 되게 하실 것이라고 하는 이 마음이 바로 매매하는 마음입니다. 매매란 사고파는 것입니다. 내가 요구하는 것과 상대방이 요구하는 것을 서로 교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평소에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충만하여 스데반 집사처럼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는 그런 것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달라고 합니까? 많은 설교와 간증들 속에 후자가 들어있습니다. 신에게 정성 바쳐 복을 받자는 이런 마음이 바로 매매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우리를 죄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죄가 무엇입니까? 신과 거래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내려고 하는 것이 죄입니다. 이것이 강도의 소굴이 되는 모습입니다. 이 고난 주간에 예수님의 고난이 왜 일어났는지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마가복음 11:27~35. 어디로 온 권위냐?

 

27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31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32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어제 말씀드린 대로 성전은 권력단체가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에서 예수님은 상을 둘러엎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이 모습을 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말하는 어떤 권위도 없습니다. 제사장 출신도 아니고 율법학교에 배운 랍비도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권위로 하느냐고 따집니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반대질문을 하십니다. 내가 묻는 것을 너희가 답하면 알려주겠다고 하시면서 세례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온 것이냐고 묻습니다. 그들이 의논합니다. 하늘로부터라고 하면 어찌하여 예수님을 믿지 않느냐고 할 것이고 사람으로부터 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백성들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래서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런 대답이 바로 악입니다. ‘예’와 ‘아니요’가 아니라 자기들의 피할 길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에 아무에게도 성령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에게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가 증거 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그 기득권을 놓치기 싫은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예수만 제거하면 그들의 기득권이 계속 유지될 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속마음을 예수님은 다 드러내십니다.

 

누가복음 2:34~35절에 나옵니다.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예수님은 패하게도 하시고 흥하게도 하십니다. 그래서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사람들이 비방하고 미워하고 싫어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립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성령께서 말씀의 검으로 우리 마음의 생각들을 벌거벗은 듯이 드러내십니다. 그렇게 들추어질 때 변명하지 마시고 예, 주님 제가 그러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3. 마가복음 14:1~9.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가셔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옥함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삼백데나리온은 성인 남자가 삼백일을 일해야 하는 돈이기에 약 1년 동안 일해야 되는 큰 돈입니다. 이런 큰 금액의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입니다. 복음서에 조금 다르게 표현이 되는데 한 곳에서는 이 여인이 많이 사함을 받았기에 많이 사랑한다는 말씀으로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이것도 같이 연결이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 죽음으로 사랑입니다. 로마서 5: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런데 이 여인의 이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면서 허비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지 왜 그랬느냐고 여자를 책망합니다. 평행구절인 요한복음에서는 가룟 유다가 도적이라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돈궤를 맡은 자로서 착복하기 위한 말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지만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비한 자가 없습니다. 그렇게 측근에서 따른 제자들도 예수님의 죽으심을 알아차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이 증거 되는 곳에는 어디든지 이 여인의 이야기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여인이 예수님께 바친 향유의 가격을 이야기하라는 말입니까? 그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한 것을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번주간을 고난주간으로 지킨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죽으심, 그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면 기독교가 복음이 아니라 종교가 되어버립니다. 십자가의 미련하고 어리석은 방식으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하신 말씀이 자신의 죽음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26절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난 주간만이 아니라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주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4.마가복음 14:22~25. 언약의 피

 

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가니라

 

흔히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는 본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잔을 가지시고 감사하신 후에 그들에게 주시니 다 마십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그 잔을 왜 자신의 흘리는 피라고 하셨습니까? 그리고 그 피를 언약을 피라고 하셨습니까?

 

마가복음 14:1~2절을 보시면 대자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예수를 죽여야 하지만 많은 백성들이 따르고 있기에 명절에 죽이면 사람이 많아서 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들은 사람들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아는 자들입니다. 민심이라는 것은 여론을 어떻게 조작하느냐에 따라 단숨에 바뀐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절에 죽이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그러나 그들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신 주님은 유월절에 잡히시고 죽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세우시는 언약의 피 언약이며 이것이 새 언약입니다. 구약의 모든 언약들을 다 완성하시는 언약의 바로 새 언약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최초의 언약인 노아의 언약에서 정결한 짐승의 희생이 들어있습니다. 아주 구체적인 언약의 체결을 보여주는 아브라함의 언약에서는 하나님께서 타는 횃불의 형상으로 쪼개진 짐승사이로 지나가십니다. 고대근동의 언약체결방식입니다. 만약에 언약을 체결한 자가 언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쪼개진 짐승처럼 죽임을 당한다는 생명 즉 피를 건 언약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언약이 체결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일방적으로 부르시고 그에게 언약을 체결하시고 하나님의 자기희생으로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만들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복입니다. 이러한 복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지금 유월절 만찬에서 잔을 주시면서 언약의 피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언약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선물과 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됩니다. 이 보혈이 새 언약의 완성이며 이 언약의 피 안에서만 용서가 있고 사랑이 있고 하늘의 신령한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 주간에 우리가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자기 피로서 이루어내셨는지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 마가복음 15:33~39.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의 고난의 최 정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려지는 것이 저주임을 유일하게 아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만이 아버지와 하나 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자들이기에 그 생명에서 끊어지는 고통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장 최고의 고통과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인 십자가를 통하여 아버지께 버림받는 고통이 무엇인지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이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와 여러분의 구원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만 십자가에서 구원하셨다면 더 이상 대속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부르짖음에 철저하게 외면하신 것입니다. 그 길만이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기 백성을 구하여 내시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죽으심으로 인하여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진 것입니다. 이 휘장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라고 히브리서는 증거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버림 받으심이 저와 여러분의 구원이 소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도 이런 방식으로 증거가 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었더니 이런 저런 세상의 성공을 주었다는 것은 십자가의 복음이 아니라 번영신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버림 받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된 것처럼 오늘 복음을 받고 믿어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 또한 십자가의 모습으로 증거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어지는 21절을 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란 십자가의 도를 전해야 전도입니다. 이 십자가의 도는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얻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능력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고서 세상의 영광을 얻었다고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예수님을 믿고서 세상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만 한 것들이 다 날아가 버렸지만 십자가 지신 예수님 한 분 만으로 기쁘다고 말하는 자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입니다. 이 은혜가 이 고난 주간에 더욱 풍성하여 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