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직장 동료 몇 명과 회식이 있었다.

대구탕을 먹고 찻집에서의 대화.

그 긴 시간 나는 끼여 들고 싶은 내용이 별로 없었다

은근히 “니들은 이 시간이 재밌냐” 라는 자세로

비스듬히 다리를 꼬고 앉아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차원 다른 존재임을 즐기며 듣고 있었다.

 

웃고 떠드는 누군가를 보며

너 지금 위선을 떠는구나.....

뒷전에서는 안 그러면서 누구 앞에서는 천사처럼 너 정말 겁난다...

뭐? 연구점수가 부족해서 그런 약삭빠른 행동을 해서 가로채?

너 때문에 손해 보는 사람 생각은 왜 못해?

그렇게 타인을 밟고 올라 뭐 할 껀데?

그거 다 쓰레기야..다 사라질 것들이라고..

나는 그런 것에 연연해 하지 않아...라며

스스로 끊임없이 그들을 난도질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리를 꼬고 앉아 그런 고상을 떨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렇구나.

나도 다를거 없네.

아니 저들 보다 한가지 악을 더하고 살고 있는거 아닌가.

복음을 안다는 그 기고만장한 자긍심.

정말 복음을 아는 자라면

하늘나라를 설명하려고 오신

그분 앞에 엎드린 자세가 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내 마음껏 선악을 판단하며

천박한 자긍심의 은혜에 잠겨 있었구나.

넌 도대체 뭐가 그렇게 다른데?..

 

그랬을 것이다

그분의 은혜가 아니였다면

그렇게 천박한 자존심이나 챙기면서

주제도 모르고

죽은자의 삶을 이어 갔을 자였을 뿐이다

그런 벌레 같은 나에게 그분께서 말씀을 허락하셨다.

너가 선 그 땅은 진짜가 아니다...

내가 창조했지.

이 하늘을 설명하기 위해 모형으로 내가 세운 곳이 니가 선 땅이지

그러니 이것은 선이고 저것은 악이라는 판단은 네가 할 몫이 아니다

그리고 그곳은 너가 가치를 두고 목매고 살아야 할 곳이 아니라는 사실도

나는 내가 택한 자들에게 내 방법으로 알려 주는 것이다.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말이지.

내가 알려 주려는 그 자들에게 너도 그 말을 전해 주는 것이 네 몫이야.

 

나는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믿음의 선진들의 고백이 와 닿고 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누가 없어질 이 땅에서 지랄을 떨든 고상을 떨든

내가 할 일은 그 값싼 자긍심이 아니였던 것 이다.

툭 툭 떨어져서 사라지는 가을 낙엽.

그렇게 이 선악구조의 그림자 같은 세상역사는 사라질 것이다.

이 역사는 묵시를 위해 창조된 그림자일 뿐이며

그분의 움직임 아래 세팅된 무대이다.

그러니

나는 그 사실을 잊지 말고 내 몫을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그분이 그렇게 내 속에 추함을 들추어 내시며

갈고리 같은 말씀으로 파 내어 가시니

가을..저 단풍잎이 다 떨어져도 좋고

비둘기가 똥을 싸도 좋은 것이다.

하루 종일 나는 비둘기 똥 냄새 보다 더 격한 냄새를

풍기며 살았음에도 그분은 나를 향해 계속 다가오신다.

은혜다

그 사랑을 은혜외에는 설명 할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순간순간 잊는다는 사실이 슬픈 것이다.

               

                  - 가을 어느 점심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