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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관계없이 교회가 교회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로 여기고 또 교회라고 우긴다고 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교회가 아니면 아닌 것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의식과 제도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교회의 교회됨이 복음에 있는 이상 교회는 언제나 복음으로 교회를 확인하고자 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복음으로 교회됨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행하는 사회사업과 종교사업 등으로 교회됨을 확인하고자 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항상 시골의 작은 규모의 교회나, 도시에 있다고 해도 형편이 열악한 교회는 교회됨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돈이 없으니 사회사업이나 종교사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국 교회를 부흥시키지 못한 것이 잘못된 것인가? 그러나 교회됨은 교회의 규모와 전혀 상관없이 오직 복음만으로 증거되고 확인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바라보고 기준으로 세워야 하는 것은 복음인 것이다.

교회가 만약 복음에 관심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자연히 복음이 아닌 것이 복음 행세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인들은 무엇이 복음인가에 대해 관심이 없기에 목사에게서 설교되어지는 것은 무작정 복음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결과는 교회가 비복음으로 채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복음의 내용을 담고 있지 아니한 교회가 예수님에게로부터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겨질리가 만무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다만 기독교라는 종교를 선택한 사람들의 모임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냥 종교 모임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생명이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결국 나름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였지만 그 결과는 생명과 상관이 없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바른 복음을 알고, 그 복음으로 비복음을 분별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 받은 교회로서 교회됨을 유지하고자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분별의 기준이 되는 바른 복음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무엇이 복음이고 무엇이 비복음인가를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결국 분별을 위해서는 참된 복음이 등장해야 한다. 그리고 참된 복음은 성경에서 사도가 증거하고 가르쳤던 것에서 찾아야 한다.

사도가 증거했던 것만이 참된 복음이기에 그 누구의 가르침이 아니라 사도의 가르침만을 기초로 하여 참된 복음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분별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가 증거하고 가르쳤던 복음의 내용은 사도의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신자의 모임에서 항상 필요한 것은, 모두가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 복음을 이해하고 힘쓰고 있으며 성경의 말씀을 우리의 욕망을 내포한 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를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오직 복음을 위해 존재한다. 복음의 내용을 담고 그 내용을 세상에 토해 놓기 위해 부름 받고 모이는 것이 교회인 만큼 교회는 복음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교인들이 복음의 참된 내용을 거부하고 등을 돌린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뒤로 하고 다만 교회가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은, 복음에 대해 원수된 생각일 수밖에 없다.복음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복음이 곧 생명이기에 복음이 없다는 것은, 있다고 해도 다른 복음을 안고 있는 것이라면 곧 생명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기에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진심으로 복음이 귀하다면 복음의 귀함을 증거하자.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성령은 오늘도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교회를 세우신다. 그러므로 교회로 모일 때마다 우리가 과연 참된 교회로 모이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20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