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롬9:27~28)

 

여기에 등장하는 '남은 자들'의 사상은 구원론의 핵심 개념으로 사용되는 데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와 같을 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라”(롬9:27) 고 하면서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다락방 같은 경우는 렘넌트(remnant) 사상이라 하여 남은자가 되어야 함에 강조점을 두면서 자기들이말로

이 시대에 그 사역을 감당하고 있음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겁니다.

 

또한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은 자기들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참 종교의 남은자 반열이라고 우겨대고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남은자만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하는 성경의 말씀은 누가 이땅에 남아 있는 구원의 백성이란 말인가요?

 

이사야 6장 13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중의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죄로 인하여 모든 백성은 다 망하게 되었고, 진멸하게 되어 있으나 하나님은 이 땅에 그루터기를 남겨 두시겠다

하십니다. 그 그루터기가 거룩한 씨가 될 것이라고 말씀 하시면서 이사야 11장에서는 그 그루터기에서 싹이나게 될

것인데 그 “싹”은 예수이며 남은 자들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싹"은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입니다. 이 싹은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11장에서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11:1)로 시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과 그가 공의로 심판하고 여호와의 날을 이루실 것을 예언합니다.

또한 이 싹은 "남은 자"를 의미합니다. 그렇게 그루터기와 같이 싹과 같이 하나님 앞에 거룩함을 지키고,

남은 자로 살아가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사 6:13)

 

과연 이 땅에 남아 하나님 앞에 거룩한 씨로 그루터기로 남아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는 그런 존재가 있습니까?

창세가 3장에서는 인간의 타락 이후에 여자의 씨가  등장하여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사야에서는 거룩한 씨 그루터기로 로마서에서는 남은자로 묘사하고 있는 그 씨가 누구입니까?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전능한 하나님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이 땅에 거룩한 그루터기로 남아있는 자는 오직 한분 예수그리스를 가리키고 있는 겁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3:16)

엄밀하게 말하면 이 땅에 거룩한 씨는 예수그리스도요. 하나님에 의하여 구원 받게 될 남은자는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는 것이 정확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느냐? 이 말이죠.

이것을 오직 은혜, 하나님의 여겨주심의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겁니다. 

그 은혜로 인하여 남은 씨가 아님에도 남은자로 예수와 동일하게 봐 주시는 그 긍휼히 여겨주심의 은혜 밖에는 이를

설명할 길이 없는 겁니다.

 

내가 구원의 주체요.

성경은 내 구원을 위한 책이요.

십자가는 예수가 날 구원하기 위하여 의도치 않았던 구원의 도구로만 생각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릴 겁니다.

그래도 나는 예수 잘 믿고 거룩함에 힘쓰고 있는 성도로 당연히 구원의 남은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나와

상관없는 그런 말씀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연히 나를 구원 하시는 것이 맞다는 전제에는 이런 면목없는 은혜가 작동할 게제가 없게 됩니다.

그저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므로 내 구원을 위하여 예수를 구원자로 그리고 십자가를 도구로 주셨기에 나는 내 믿음으로

예수 이름을 의지하고 그 도구를 필요할 때 사용하면, 그 피의 효능에 의하여 내가 구원 받기에 합당한 자로 변화되어

그 존재의 가치로 인하여 당당하게 구원 받게 된다는 그런 네러티브는 하나님을 믿어보려는 애씀과 변화 되어 보려는

몸부림과 발버둥은 있을지언정, 내가 왜 부정되어야 하고, 왜 예수 안에 연합되어 나는 존재가 사라져야 하는지 그리고

왜 내 이름이 삭제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안에는 예수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씨 그루터기의 남은자는 오직 에수그리스도 입니다.

다만 얼마의 사람들을 이미 창세 전에 작정하여 그 언약으로 인하여 예수 안에 감추어 두시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예수와 한 묶음으로 보시고(여겨주시고) 덤으로 예수와 하나로 봐 주시기로 약속하신 그 말씀이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그 안에서만이 우리가 여전히 역사 안에서 구원 받은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그리스도로의 역할이나 공로로 말미암아 그럴듯하게 변화된 그 존재 가치의 자격으로 인하여 내가 당당하게

구원 받는 그림으로 성경을 보면 언제나  결론에 가면 내가 구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는 누를 범하게 됩니다.

 

예수에 접붙임받는 원리도 매 마차가지입니다.

나란 나무에 예수가 접붙여져 내가 예수의 열매를 맺는 것이 그리스도의 접붙임이다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예수의 나무가 잘려나가고 나란 접목이 완전히 잘려져 예수께 접붙여진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접붙여진 가지는 겉으로 보기엔 여전히 나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열매가 맺지, 거기서 거룩한  예수의 열매가 맺는다고 착각하면 다시 자기 위선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란 나무에 붙어 있기에, 그 뿌리로부터 진액을 공급 받기에, 예수와 하나로 보시고(봐 주시고) 그렇게

여겨 주시는 그 은혜로  인하여, 겨우 구원 얻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연합의 교리가 설명해 주려는 진의입니다.

오늘도 이 은혜로 인하여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