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허락지 않으면 그 한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엇그제 아침에 일하러 나와 보니
통유리 창 바닦에 죽은 참새 한마리가
목이 부러져 죽어 있었던 거다.
처참한 모습을 보니 새 한마리의 죽음에도
섬뜻했다.

참새 한마리도 그분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땅에 떨어질 수 없다 했는데,
왜 이렇게 처참하게 떨어져 죽었을까?

왜 그렇게 죽었나?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기 위함일 거다.
새는 투명 거울의 이치를 모르지 않는가?
시각적으로 통해 있는데 공간적으로 담이
가로막혀 있다는 한 차원 높은
투명 유리의 원리를 참새 머리로 알리 없다.

그래서 그냥 통과하려다 즉사한 거다.

우리 죄인이란 실존이 저지르는 일들이
다 이러하지 않나?
우린 얼마든지 신과 소통할 수 있다며 자주
그 신과 거래를 한다.
나의 모든 소원과 간구는 그분이 받으신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리고 나의 신념으로 그분을 움직여 보려는
헛된 시도를 우리는 신앙으로 착각한다.

하나님과 나의 가로 막힌 담이 있음을
모르고 그냥 돌진하려는 인간의 무지와
과신의 결과와
막힌 유리벽의 원리를 모르고 그냥,
돌진하려다 목이 부러져버린 참새 한마리와
무엇이 다를까?

그것이 바로 네 모습이란다.
그걸 보여주기 위하여,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새 머리를 허락하시고 새의 지능을 제한 하시고
그렇게 인간의 눈에 처참하게 전사하게 하신 모습을
허락하신 것은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던 아침이었다.

나름대로 곡예 비행을 하고 그 많은 장애물을
무사 통과하지만, 시각과 공간의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유리벽 앞에서는 맥 못추고 떨어져 버린다.

그렇게 비명횡사한 참새는 땅에 떨어지면서
짹소리 한번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그 새는 죽어서 말한다.

제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자들.
하나님과 가로막힌 거대한 담을 모르고
십자가의 피 언약의 피에 대한 믿음으로
해결하지 않고 그냥 통과하려는 자들,
짹소리 못하고 죽어 있는 참새 한마리보다
그들이 나은 신세일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니, 죽지 않고 시퍼렇게 살아
여기 저기 자기가 산 존재임을 자랑하며
앞뒤 가리지 않고 부딪히는 자가 있다면
죽어 있는 참새 한 마리만도 못할 거다.

그 피로 구속받고 은혜 입었다고
자녀가 되었다 생각하는 우리들은 어떤가?

십자가를 통하여
거저 얻은 은혜의 유익마저도
나의 기를 세워 주는데,
나의 의를 챙기는데,
나의 구원을 더 공고히 하는데,
열심히 적용하는 악당들이 아닌가?

땅에 떨어진 한마리 참새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우리는
내가 나에게 그리고 남에게 난 분수 모르고
돌진하다 목이 부러져 땅에 떨어져 죽은
난 참새입니다.

그렇게 깨닫는 자들만이 죽은 참새로부터
살아나는...
교훈을 받고 산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참새의 죽음이 헛되지 않은 것이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이유 중 하나일 거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