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와 포용      미로슬라브 볼프  IVP

이 책을 보는 중에 인상깊은 한 문단을 옮깁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니체는 복음서를 심층적으로 읽어 내면서

예수님의 적들이 스스로를  '선하다'고 생각하는 태도와 그분을 죽이고자 하는 태도 사이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사악한 사람들의 짓이 아니라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의 짓이었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은 영혼이 '자신의 선한 양심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분이 선에 대한 자신들의 관념을 거부하신 것을 악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니체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은 이미 선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안적인 덕목을 제안하는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한다.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악의 부재를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다.

마치 독침을 가진 벌레처럼 "그들은 사람을 쏘되", 완전히 '순전한 마음으로'그렇게 행한다.

배제는 '악한 마음'에 의한 죄일 수도 있지만, 또한 '선한 양심'에 의한 죄일 수도 있다.

"세상의 악당들이 어떤 해를 입힌다 할지라도 선한 사람이 입히는 피해만큼 해롭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니체의 경고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저자의 '기억의 종말'이라는 책을 보다가 이 책도 보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유고슬라비아 군대에 소집이 되면서 감시를 받았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기억의 종말에서 잘 나오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이 땅의 기억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도 해 보게 하는 책입니다.


배제와 포용을 보면서 인용한 이 문단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겹쳐졌습니다.

인간이 말하는 선한 양심,

선악의 주체,

배제와 포용에는 경계가 생김,

인간은 늘 자기를 중심으로 경계를 정하기에  '배제와 포용'도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자기중심성이 무너지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헤쳐 모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