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에 짜증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한번 읽어 봅시다-이장우)

 

인간들은 철저하게 현실주의이고 개인주의로 살아간다.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무관심 내지는 인간의 상상으로 치부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죽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희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일에 인간이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산다고 해도
 또 그 희망대로 이루어 졌다고 해도 결국은 죽음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참된 희망이란
 죽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때만 가능한 것이기에
 결국 인간에게 희망은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음”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이요 저항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죽음을 짊어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만일에 교회로 모이는 것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면 시간낭비일 뿐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흔적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희망은 무엇인가?
 당연히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죽음의 문제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죽음이란 죄의 결과이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문제는
 죄 문제를 해결하면 자동적으로 해결되어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어야 하고 피 흘려야 하는 하나님의 뜻에
 당신 자신의 희망을 드러내지 않고 순종하심으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여전히 자기의 욕망을 앞세워서
 자기 인생을 위해서
 자기 행복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죽음의 흔적을 드러내는 인생일 뿐이다.
 
 
 내세를 모른 채 여전히 세상에만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성도라면서 여전히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 불평을 하는 것은
 자신이 죽음에 서서 산다는 것을 모르는 불신자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죽음을 잊고 살기 때문에
 죽음 위에서 자신의 욕망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달하기 위해서
 자기의 삶을 포기하겠는가?
 그들은 세상의 악함이 자기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기고
 오직 자기 행복을 찾아 살기 때문에
 예수님이 피 흘리셔서 주신 은혜에 대해서
 전혀 관심도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찾는 것은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는 사람만이 피 흘리신 예수님을 원하게 된다.
 죽음의 흔적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고는
 예수님의 피는 한낱 짐승의 피에 불과할 뿐이다.
 
 
 죽음을 잊어버렸는데
 어떻게 죽음에서 나를 구속하신 피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죄를 멈출 수 없고
 죄를 고칠 수도 없다.
 그냥 죄 속에서 죽어가야 하는 자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라면
 주님이 깨끗케 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도의 희망은
 새 하늘과 새 땅이지 우리의 죄로 더러워진 이 땅이 아니다.
 더러운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들어가게 해주신
 사랑과 자비만이 성도의 유일한 희망이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무엇을 보여주며 살아가는가?
 돈이 있으면 행복하고
 자식이 잘되는 것이 행복하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 행복인 것을 보여주고 있는가?
 아니면 행복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있음을 보여주며 살아가는가?
 
 
 세상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인생의 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삶인가?
 
 
 오늘도 짜증이 나고
 걱정이 생기고
 근심이 일어나고
 불평이 날 때마다
 우리에게 드리워져 있는 죽음의 흔적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피 흘림의 은혜 아래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 자리에서만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삶의 목표가 분명해 질 것이다.
 
 
 세상살이가 순탄치 못하다고 원망하고 있는가?
 세상살이가 순탄하면 행복해지고
 순탄치 못하면 불행해지는 것인가?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세상을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고
 자기 편안한 것만 희망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이 세상의 마지막은 죽음일 뿐이다.
 
 
 성도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성도의 유일한 소망은 새 하늘과 새 땅이다.
 그래서 성도는 그 복음을 짊어지고 있고
 그 복음을 지키고 전달되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