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익 목사님이 딸 다인에게 보낸 이 메일을  사모님(자근들꽃)이 화평교회 홈에 올린 것을 펌)

 

받는이 "호박이파리"

 

오늘 여기 눈와

많이는 아니고 그냥 쏙쏙 빠지는 식으로 한 알 한 알 떨어지고 있어

하늘은 잿빛이고

여기 도서관 앞에 흐르는 하천의 물도 잿빛이고(이 물은 갯물이라 늘 저렇지)

저 물이 잿빛이라 그럴까 여기 새들도 색깔이 다 저래. 좀 칙칙하달까

 

이젠 제법 눈이 오네. 아까와는 또 다르게 보이는 눈.

이런게 인간이 뭔가를 관찰하고 표현하고 소통하는 한계라고...

잠시 전의 것을 관찰하고 표현한 그것은 이미 아까 것이고 지금것은 아니잖아.

 

지금 보는 태양이 지금 것이 아니라 빛이 달려오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8분전의 태양을 보는 거래. 예를 들어 빛이 150년 걸려서 도달하는 곳에 있는 별을 우리가 보고 있을라치면 그 별은 150년 전의 별을 보고 있는 것이지.

 

150년 전에 그 별이 이미 사라졌다면 그걸 아는데 150년 걸린다는 거야.

머리가 좀 아픈 이야기지.

 

그래서 플라톤이라는 사람은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하는 것들로 알게 되는 것은

참된 것이 아니라고 한것이지. 맨날 변하니까 맨날 달라지니까

그리고는 시간이 흘러흘러 오늘날에는 어떻게 되었냐고?

 

우리가 느끼고 맛보고 하는 그것 말고 또 뭐가 분명한게 있느냐? 그렇게 되었다고.

눈으로 보지 않고는 안되고 맛보지 않고는 안되고 느끼지 않고는 안된다는 거야.

뭐든 나에게 해당 안되면 다 없는 것이고 의미도 없지.

그게 요즘 사람들의 머리속에 든 생각이라고.

 

그런데 오늘의 세상에서는 눈으로 보고 맛보고 느끼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게 뭐냐?

 

돈이야.

 

왜 그런지 좀 설명이 필요하지

 

모든 것을, 세상의 모든 것들을, 국가라는 거대한 기관이 관리하고 통제해.

학교 병원 어른들이 다니는 모든 직장 혹은 애들이 다니는 유아원까지 다 그래. 동네 빵집이든 약국이든 다 그래.(이게 공산주의하고는 관리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나기는 하지.)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하느냐

돈이 되는 쪽으로, 사람도 시장에서 팔리는 물건처럼 잘팔리는 물건,

높은 값을 받을수 있는 품질좋은 물건으로 만들듯이 관리하는거야.

그래서 가는데마다 공부해라 공부해라 그러는거야

 

그 말은 어서 높은 품질의 인간, 높은 가격을 매길수 있는 질좋은 상품의 인간이 되어라, 그 말하고 같은 말이 되는 거지.

 

이게 말만 그런게 아니라 실제로 돈되는 인간될수록 더 많은 것을 누리고(뭔가를 가질수 있고 또 줄수도 있고 또 다른 인간들을 부려먹기도 하고 하면서) 맛보고 느끼는 면에서 남과 차이지도록 한다고. 남과 자꾸 비교하게 만들어서 경쟁시키고 그 경쟁속에서 이긴자는 보너스를 주고 진자는 실망감과 패배감과 쓴맛을 보게 하는 이런 구조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그냥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생각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다 돈만 밝히고 원하는 거야.

사람이 다 돈으로 보이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는 나도 돈으로 보이고.

 

만원짜리 지폐로 보인다는게 아니고, 이게 나에게 도움되는 인간이냐 손해되는 인간이냐 따지는 대상으로만 보인다는 거야.

 

왜? 돈 없이는 느끼는게 안되고 느끼는게 안되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거든

 

그래서 ‘나 누구야?’ 그 말하고 ‘나(우리부모재산) 얼마 가졌지?’

그 말 하고 같은 말이 되어 버린다고.

 

성경은 뭐라고 할까?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하지.

인간은 예외없이 흙이고 안개라고 하고

언제든지 없어지고 말 대상이라는 거지(이런게 진짜 성경의 화끈하고도 멋진 거라니까)

 

성경말씀은 이렇게 우리 마음을 낮추지.

 

우리 마음을 찔러서 쪼개고

내가 내 힘으로 살아온 것같은 착각을, 환상을

아주 고운 흙으로 잘게 부수는 것처럼 부수어서 환상을 깨주지.

 

 

그럼 산다는게 모야?

하나님이 그런 흙같은 인간에게 안개같은 인간에게 뭔가를 담아준다는 거야

 

환상을 깨고 부수어서 비워내고 말이야

하나의 깨끗한 그릇으로 만들어서.

 

뭘 담아주시고자 할까?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이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 몸을 내어준 그 사랑이지.

그 사랑은 돈없어도 되고 내 몸뚱아리가 죽어 없어져도 관계없이 끊어지지 않는 사랑이지.

 

그 사랑만 진짜 사랑이라고 담아주셔서, 배달하는 그릇으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사는 사람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진짜 사람이고 그 외에는 사람이 아니라고(짐승이라고)

성경이 말씀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매일 매일 우리를 예수님의 사랑담는 그릇으로,

사람같은 사람으로 빚으시고 만드시는 일에 수고하시는거지.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시는 사람은 새록새록 하나님의 수고가 담겨서

그 수고가 생각나게 하신단다.

 

'아하, 그렇지. 한시도 한순간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살지 않은 적이 없구나. 내가 똑똑하고 내가 잘나서 산게 아니구나'라고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이지.

 

그 사랑을 전달하는 우편배달부처럼 매일 매일 눈뜨게 하시고 살게 하시고 매일 매일 할일을 지시하시고 하게 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 사라져도 되고 언제 뭉개져도 될 흙의 운명이지만

 

그 사랑 안에서, 죽어도 사는 예수님의 영광과 한 운명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제 창밖에는 눈이 펑펑온다.

저 눈이 더 펑펑오든 아니면 내리다 그만두든지

 

수억광년 떨어진 곳에서 별들이 그 운행을 멈추든지

혹은 태양이 빛을 잃든지

 

그게 수만명을 죽이는 지진이든 해일이든 지구의 멸망이든

혹은 남들이 다 멀쩡하게 살고 있는데

나한테만 찾아온것 같이 생각되는 어떤 불행같은 것이든지

 

그리고 정작 이 모든 세상의 움직임 뒤에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지금껏 나몰라라 산 것도 관계없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든 말든 관계없이

또 나만 잘살면 최고다 하면서 살았던 것이든지

나보다 이쁘고 착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하는 식으로

의기양양 산것이든 앞으로 그렇게 살든 말든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뭘 어쩌든지 일체 관계없이

 

나는 흙일뿐이고 안개일뿐이고 죄인일뿐이고 그 죄는 나보다 더 커서 알 수도 이길수도 없어 그저 죄인일 뿐인데

 

오직 사랑은, 오직 구원은 내 공로가 아니고 나대신 흘린 예수님의 피로만 됨을, 쉬임없이 그 사랑 또 사랑으로 찾아오심으로만 됨을 알게 하신다고.    

----------------------------------------아빠가.

 

참, 작은 방 베란다 문 열어놓으면 방 추우니까 그거 잘 닫아야 돼

그 방은 외풍이 좀 심해서 공기를 따뜻하게 해야 된다고

손 잘 씻는것 잊지 말고

이 잘 닦는 것도

이런 사소한 것들 소홀히 하면 나중에 고생하게 되거든

공부든 뭐든 귀찮아도 사소한 것을 매일 매일 잘 챙기렴

그러면 시간이 희한하게 죽죽 늘어난단다

책 꾸준히 읽고.

게으르면 있는 시간도 오그라들어서 하나도 찾을수가 없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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