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이해를 위한 선이해

- 구약 안식일법 -

 

* 이번 여름성경학교 주제가 ‘주일성수’라고 합니다. 주일성수에 대한 여러 논쟁이 있지만 중요한 점은 구약과 신약의 ‘안식’ 개념을 알 때 ‘주일’ 개념도 알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안식’에 대한 책들은 예전에도 몇 권 출판되었지만 최근에도 몇 권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들의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예전에 신현우 교수가 작성한 ‘예수님과 안식일’에 대한 6편의 글들을 차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안식이 없는 시대에 ‘안식’에 대해 묵상하는 계기가 되시길...

 

신현우 교수

 

1. 서론

 

신약을 이해하려면 구약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신약은 구약을 알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해서 쓰여진 책이기 때문이다. 구약 중에서도 모세오경은 매우 중요한 책이며, 그 중에 담긴 십계명은 오경 중에서도 중요하다. 이 십계명 중에서 신약이해에 매우 중요한 계명이 ‘안식일을 지키라’는 제4계명이다. 그러면 안식일 계명을 살펴보기로 하자.

 

2. 안식일

 

출애굽기 20:8-11을 보자: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이 안식일에 쉬어야 하는 이유는 11절에 밝혀지듯이 하나님께서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께서 쉬셨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쉬어야 하는가? 여기에 안식일의 비밀이 있다. 안식일은 단지 명령에 의해 무의미하게 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날에 쉬신 하나님을 닮기 위해 쉬는 것이다. 즉, 안식일 계명은 imitatio Dei, 하나님을 모방함을 명하는 것이다. 안식일에 쉬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 칠일에 쉬신 것을 본받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일은 하나님의 쉬심만이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쉬심을 본받는 날이다.

 

신명기 5:12-15를 읽어 보자: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15절은 안식일에 종들이 일하지 않고 쉬도록 해야 하는 이유를 밝힌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이 없이 끝없이 중노동에 시달리는 애굽 땅에서 노예 신분이었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서 자유케 하셨다. 이처럼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본받아 중노동에 시달리는 종들을 안식일에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예를 해방하신 하나님을 닮기 위해 우리는 오늘날 노예를 해방시켜야 하는 것이다.

 

안식일의 기본적 내용은 스스로 쉬는 것과 종들을 쉬도록 하는 것이다. 안식일의 기본적 동기는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끝없는 노동이 삶의 전부가 아님을 안식일을 통해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해 인간이 단지 일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은 일 그 자체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임을 가르쳐 주신다. 또한 하나님은 안식일 계명을 통해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는 가치 있는 존재임을 말씀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해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노예적 상황에 있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신다. 그들도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고 하나님의 관심과 염려의 대상임을 가르쳐 주신다. 안식일 계명을 통해 하나님은 생산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인간을 착취하는 사회체제를 부정하신다. 인간은 생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음을 선언하신다.

 

또한 자유인과 종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게 쉬어야만 하는 안식일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함을 선언하신다. 안식일은 그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이다. 특히 이 사랑은 고된 노동으로 고난당하는 인간을 향하여 애타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또한 인간만이 아니라 노동에 시달리는 가축들에게도 향하고 있다. 짐승들마저도 인간의 생산과 이익을 위해 마구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선언을 안식일 계명은 담고 있다. 출애굽기 23:12을 보자: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3. 안식년

 

안식일 계명의 정신은 안식년법에서도 나타난다. 제 칠일을 안식일로 인간이 쉬어야 하는 것처럼 제 칠년에는 인간과 함께 경작되는 땅도 쉬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안식년법을 통해 자연이 인간에 의해 무한대로 착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

 

출애굽기 23:10-11를 읽어 보자: "10 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11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안식년은 자연적으로 자라난 곡식은 이스라엘 사회 속에서 안식년을 대비해 저축된 곡식이 없는 가난한 자들의 것이며, 또한 들짐승들의 것이다. 안식일 계명에서 계시된 노예와 가축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제 토지와 함께, 자유롭지만 가난한 자들과 야생동물을 포함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안식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환경을 사랑하심을 선포하신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지만 착취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됨을 가르쳐 주신다. 안식년은 경작을 중단하여 땅을 쉬게 하는 휴경의 해이면서 동시에 궁핍한 자들이 빌린 빚이 탕감되는 면제의 해이다.

 

신명기 15:1-2을 보자: "1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2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빚을 정기적으로 면제하게 하신 이유는 빚이 불어나서 결국 갚지 못할 지경이 되어 남의 노예가 되는 상황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혹자는 빚을 면제하면 이것을 악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경제활동이 혼란해 질 것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식년에 면제되는 빚이란 경제활동을 위한 대부가 아니라, 굶주린 자들이 생존을 위해 빌리는 양식과 같은 종류의 빚이다.

 

신명기 15:7-11을 보자.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9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빚탕감의 해인 안식년이 다가온 상황에서는 무언가 빌려주는 것은 곧 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궁핍한 자에게 반드시 빌려주라는 명령은 구제하라는 명령과 다름없었다. 양식이 없어서 굶어가는 자들을 염려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에게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무조건 양식을 주라고 명하신 것이다. 빚으로 인해 가난한 자유인이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빚탕감법에 담겨 있다.

 

4. 제칠년: 노예해방

 

이스라엘에는 동시에 전체적으로 적용된 안식년과 함께 히브리인이 히브리인에게 노예가 된 후 제 칠년이 되면 풀려나는 노예해방의 해가 있다.

 

출애굽기 21:2를 보자: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 계명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예레미야 34:14을 보자: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칠 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 줄 것이니라 그가 육 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안식일에 노예들을 쉬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이제 노예의 상태가 6년 이상 지속되지 않도록 명령하신다. 이 계명 역시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풀어주신 하나님을 본받는 행위를 명하는 것이다. 남을 위해 6년을 보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임시적 노예 상태는 빚으로 인해 생긴 것일 것이다.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몸을 팔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6년 정도 일을 하면 대개의 경우 충분히 빚을 갚고 남을 정도의 일을 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노예로 부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매우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일 것이다.

 

5. 희년

 

안식일법과 안식년법에 나타난 노예해방 정신은 희년법에서도 표현되어 나타난다. 희년이란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후 다음 해로서 50년마다 돌아오는 해이다. 이 해는 안식년처럼 경작이 중단되어 땅이 계속 쉬며, 노예가 풀려나는 제 칠년처럼 노예가 해방되며, 나아가 가옥과 토지가 원주인에게로 돌아간다.

 

우선 희년에 일어나는 노예해방을 살펴보자. 희년에는 이방인에게 종이 되어 제 칠년에도 풀려날 수 없었던 히브리인들이 풀려난다. 레위기 25:54를 보자: "그가 이같이 속량되지 못하면 희년에 이르러는 그와 그의 자녀가 자유하리니" 이방인에게 팔린 히브리인을 가장 가까운 친척이 우선 값을 대신 지불하고 풀어주게 되어 있다.

 

레위기 25:47-55을 읽어 보자: "47 만일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은 부유하게 되고 그와 함께 있는 네 형제는 가난하게 되므로 그가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 또는 거류민의 가족의 후손에게 팔리면 48 그가 팔린 후에 그에게는 속량 받을 권리가 있나니 그의 형제 중 하나가 그를 속량하거나 49 또는 그의 삼촌이나 그의 삼촌의 아들이 그를 속량하거나 그의 가족 중 그의 살붙이 중에서 그를 속량할 것이요 그가 부유하게 되면 스스로 속량하되 50 자기 몸이 팔린 해로부터 희년까지를 그 산 자와 계산하여 그 연수를 따라서 그 몸의 값을 정할 때에 그 사람을 섬긴 날을 그 사람에게 고용된 날로 여길 것이라 51 만일 남은 해가 많으면 그 연수대로 팔린 값에서 속량하는 값을 그 사람에게 도로 주고 52 만일 희년까지 남은 해가 적으면 그 사람과 계산하여 그 연수대로 속량하는 그 값을 그에게 도로 줄지며 53 주인은 그를 매년의 삯꾼과 같이 여기고 네 목전에서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 54 그가 이같이 속량되지 못하면 희년에 이르러는 그와 그의 자녀가 자유하리니 55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아무도 대신 값을 지불할 친척이 없으면, 희년이 되면 이방인의 노예가 된 히브리인이 풀려날 수 있었다. 이것은 노예가 되는 몸값이 희년이 남은 햇수에 따라 결정이 되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시행될 수 있었다. 또한 희년 1년 전에 노예를 산 사람은 1년치 밖에 금액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49년치를 지불하고 노예를 풀어주어야 하는 사람에 비해 결코 손해 보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희년에 독특하게 실행되는 토지회복을 살펴보자. 이스라엘에게 토지는 기업으로서 가족이 대대로 영구히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토지는 팔 수 없었고 다만 최고 49년 동안 빌려줄 수 있었다. 그리고 빌려줄 때 받는 값은 희년이 남은 기간에 따라 정해졌다. 그리하여, 희년에 토지가 원주인에게 돌아가는 제도는 결코 토지를 잠시 빌린 사람에게 부당한 제도가 아니었다.

 

레위기 25:23-28을 보자: "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24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25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26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으면 27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자기의 소유지로 돌릴 것이니라 28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경제적인 궁핍으로 인해서 토지를 누구에겐가 빌려주게 되어 자신의 토지를 경작할 수 없게 된 사람은 그 사이에 더욱 궁핍하게 되어 빚이 늘고 결국 갚지 못하여 몸을 팔아 노예가 되기 쉽상이다. 이러한 상황은 짧게는 6년, 길게는 이방인에게 노예가 된 경우 희년 때까지 49년까지도 지속될 수 있었다. 이것을 방지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방금 읽은 본문에 나타나 있다. 가까운 친척이 토지를 잠시 상실한 자에게 대신 값을 지불하고 토지를 되찾아 주도록 하나님은 명하신다. 이것은 노예가 되는 것을 방지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이다.

 

6. 결론

 

안식년법에서 희년법에 이르는 하나님의 계명은 노예화를 방지하는 장치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철저하게 겹겹이 노예가 되지 않도록 막는 법을 만들어 놓으신 이유는 인간이 비참하게 끝없는 고역에 시달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창조된 존재로서 창조 후 쉬신 것처럼 창조적인 일을 하고 나서 쉬어야 하며, 또한 하나님께서 노예상태의 이스라엘을 풀어주신 것처럼 노예된 자들을 해방시키는 일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노동으로부터의 안식과 노예상태로부터의 해방,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고, 닮도록 명령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이다.

 

안식일법으로부터 희년법은 하나님께서 선언하시는 인간 존엄성의 대헌장인 것이다. 일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시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인생은 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안식일 신학은 오로지 생산성 증대와 이윤 극대화로 치닫는 현대문명이 많은 인간을 경제활동의 노예로 만드는 현실을 부정한다. 안식의 공간을 앗아가는 숨막히는 경쟁도, 잔인한 착취도 성경은 거부한다. 자연을 착취하는 현대 산업문명에 대한 부정이 안식일과 안식년법에 나타나 있다.

 

현대는 여가가 매우 극대화된 시대이면서도 진정한 안식이 없고, 노예가 사라졌으면서도 모두가 노예처럼 일에 매여 있는 시대이다. 경쟁과 이윤이라는 경제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그리하여 인생이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외면하고 하나님을 닮기 보다는 노예가 되는 길을 스스로 추구하고 있다. 오늘날 안식일계명은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문명비판선언문으로 우리에게 다가 올 것이다.

 

이러한 구약의 안식일 신학은 신약으로 오면서 더욱 완성되어진다. 다음시간에는 구약의 안식일 신학이 신약에 어떻게 발전적으로 계시되어 지는지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