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점심 식사는 하셨습니까. 하셨겠지요!


어제밤에는 비바람이 몰아 쳤었지요.

교회를 가면서 누군가에게 말했습니다..예수님은 비오는 수욜밤에 오신대..헉 누가?

응..이런 날도 교회 가는 스스로를 대견해 하며 하는 농담이다.


어찌되었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가고 있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비가 오니 추워서 달달한 커피 한잔 내리는 것도 잊지 않고 만족한 기분으로 의자에 겸손히 앉아서 정겨운 얼굴들을 살피고 눈인사도 하고 무척이나 평화로웠습니다. 그건 외부조건에서 오는 변할 수 밖에 없는 평화라는 걸 모르는바 아닙니다.


그런데 말씀을 선포하시는 목사님께서 유독 저를 노려 보시는 듯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스스로 착하다고 증거(?) 하시는 목사님께 이런 표현을....하다니. 녜 솔직히 말씀 드리죠..어제 밤 분명 목사님께서는 저를 보시며 시건방!! 시건방!! 이라고 하셨습니다.  전 기가 막혔습니다. 시건방 하면 떠오르는 얼굴이 근간에 한명 더 생길려고 했는데 목사님께서는 “니가 시건방” 이라며 저를 향해 계속 화살을 날리시더군요..

그리곤 더 점입가경으로 거기 왜 앉아 있냐..머 하려고 거기 있냐 교회가 무슨 취미 생활이냐..


아니 왜 오늘은 나를 향해 저런 돌직구를? 어쩌면 목사님께서는 집사님께 날린 돌직구가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그때는 분명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나 홀로 앉아서 당황하고 있던 모습을 분명 기억합니다.  욥의 고난은 인간으로서 당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였고 절체절명의 순간이였다. 너가 당하는 삶의 사소한 짜증스러운 일 정도가 아니였다. 그런 약간의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고난이라고 우기고 싶은 거냐.. 욥은 선지자적 멧세지를 온 몸으로 전달하고 있다. 고난 가운데서 욥은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욥이 구했던 담보물은 자신의 증인과 중보자가 있음을 알게 된 믿음의 고백이 아니냐. 너도 담보물을 애타게 찾고 찾는 거냐. 너에게 담보물이 필요한 줄 알기나 하고 거기 앉아 있냐? 그 담보물을 얻은자 만이 하나님의 평강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니 인생에서 일어나는 어줍잖은 일들을 제발 부풀거리며 나불대지 말고 욥이 고난의 끝에서 맛보게 된 하나님을 깊이 생각해 보아라. 이보다 더한 고통의 끝을 그분께서 맛보실 것이다. 하나님이 살 찢으시겠다는 것 아니냐..피 흘리시겠다는 것 아니냐. 시건방이나 떨어대는 너로서는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역사속에서 일어났다. 십자가 위에서.


목사님. 전 하마트면 소리 칠 뻔 했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그만 그만 하십시요” 이렇게 발발 떠는 제 모습 혹시 못 보셨어요 ?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이런 저주의 말을 그분께서 고스란히 받아 내셨단 말씀 아닌가요 저로선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고난을 통과하셨는데 그 고난으로 제게 이런 소망을 안겨 주셨단 말씀 아닌가요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목사님..꽁치 김치찌개, 멸치조림, 계란후라이를 콩밥에 얹어 점심을 먹었습니다. 메뉴와는 약간 언발란스 한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도 들렸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오늘은 호사로 여겨져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눈으로 주를 뵈옵길 원합니다...라는 기도를 저는 못 하겠습니다 저는 작은 불편함도 고난으로 간주하며 사람 살려달라고 아우성이나 칠게 뻔하니까요. 이 철 없는 집사 어쩌시렵니까. 어제 밤처럼 너 거기 왜 앉아 있냐고 하실 거라면 미리 말씀 좀 해 주세요. 방탄조끼 입고 가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