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반 동안 무척이나 다정스레 사귀던 남친과 딸이 어제밤 헤어졌다.  사귀게 된 남친이 외부적조건들(?)도 만만찮았지만 더 가관인것은 교회문턱에도 안 가본 녀석이였다. 그러나  열심히 교회 다니고 우리 목사님 주일학교 설교도 계속 들을거라 하기에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믿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또 한사람 찾으시나 보다 라며 타협 아닌 타협을 하며 그  사귐을 허용 해 주었었다.하지만 적어도 세례는 받는거 보고 결혼은 허락하겠다 그거 안되면 안되는 거다 라고 못을 박아 둔 채로.


그러니 딸은 만날때마다 늘 하나님을 지가 이해한 방식으로 얘기했고 "나도 잘 모르지만 같이 알아가자" 라는 말로 헤어질 때 마다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곤 집에 와서 조잘거렸다. 옛날에 엄마가 우리보고 말씀보라고 잔소리 할때의 그 심정 백번 이해한다며 깔깔거리기도 하고.  그 남친은 정말 잘 생겼었다. 훤칠한 키에 착하기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착하디 착한 총각이였다. 첫날 교회 왔을때 집사님들이 모델이다 모델이다 라며 좋아하셨는데 어제 밤에 드뎌 신중히 생각해서 답해 달라는 딸의 요구에 그 멋진남은 사실 힘들다. 들어라해서 듣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왜 믿는지 모르겠다 했단다. 사후세계는 더욱 안 믿어지고.


그말에 억장 무너지는 우리 딸이 결별을 선언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불신앙. 딸은 믿음은 만인의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아 차렸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멋진남의  답변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떻게  결별을 선언할 수 있었을까.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라며 좀 더 기다려 보자 라는 양보는 왜 하지 못했을까?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렇게 결단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아직도 꾸역꾸역 버리지 못하고 바꾸지 못한 것들이 나의 신앙양심을 후려치고 있는데. 본성은 언제나 우리를 강하게 끌어 당기지 않던가 말이다. 연휴때는 만나서 간만에 실컨 놀고 올거라며 미리 약속을 받아 둔 우리 딸. 만나면 줄려고 여름 바람막이 하나 사서 쟁겨 둔 채로 그날을 기다리던 우리 딸이였는데. 그거 반품하러 가잖다.


나는 그 헤어짐의 아픔을 알기에 아무 말도 못해 주었다. 그저 안아주자 싶어 안았더니 가슴팍은 아려오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아빠가 반대하실까봐서 아직 사귀는 남친이 있다는 말도 언제나 할까 노심초사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그렇게 아빠랑 밀고 당길 일은 없어졌다. 그건 다행이긴 한데 어찌되었건 너는 나의 스승이구나. 나는 그런 결정 못했을텐데. 어느덧 나의 키를 훌쩍 넘게 자라는가 싶더니 철없던 시절 다 뒤로 하고 이제 야무진 행진을 시작하고 있었다.그 야무진 행진에는 하나님께서 만져 가시니 걱정일랑 붙들어매야 하는데 나는 믿음이 턱없이 모자라 망연히 넋을 잃고 있다. 그 행진에는 예상치 못한 복병들이 도사리고 있을텐데 어쩌니 라며.  고맙고 부끄럽고 감사하고 그런 마음으로 아침 출근길 마중했다. 눈이 퉁퉁부은 딸의 뒷모습을 가슴저며 하며 보고 있는데 엄마 걱정하지 말라는 듯 돌아보며 웃고 갔다.   진정 너는 나의 스승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