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선 오브 갓’(하나님의 아들) 영화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요한복음을 기준으로 영화화하였는데, 대체적으로는 요한복음과 일치하지만 구체적인 부분은 약간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개봉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영화관에서는 상영 횟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하루 상영 횟수가 고작 3회 밖에 되지 않았는데, 영화관에서 볼 때 별로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상영 횟수를 처음부터 줄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노아’가 개봉되었을 때하고 분위기가 완전 다릅니다.

 

‘노아’가 개봉되었을 때 보수적인(?)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성경적인 내용에 충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러면, ‘선 오브 갓’은 보다 충실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봐도 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선 오브 갓’도 성경적인 내용과는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할까요?

 

한국 기독교계의 이런 논의 자체가 웃깁니다. 한국 교회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설교들이나 주장들이 너무나 비성경적이고 현세적인데도 교인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아니면 알아도 묵인하면서 그 패러다임에 포섭되어 버렸습니다. 가르쳐주지 않으니 모르는 것이고, 모르니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성경과 맞지 않으면 사탄적인 영화하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기독 영화 중에서 정확하게 성경과 일치하는 내용의 영화가 있었던가요? 없었습니다. 뭔가 달라도 달랐습니다. 그러면, 그런 영화들은 전부 보지 말아야 합니까? 그렇게 따지면 티비도 보지 말아야 하고, 연극도 보지 말아야 하고, 책도 보지 말아야 하고, 노래도 듣지 말아야 하면, 대체 그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듣고 삽니까? 그리고 과연 성경적인 가치의 영화는 어떤 영화를 말할까요?(제가 학생 때 이런 분위기에서 교회 다닌 기억이 나네요..) 

 

여기서 잠시 문화, 더 좁게는 영화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성경에는 ‘영화’란 말이 나오지 않고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영화는 근대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영화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일까요?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독재자의 홍보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이데올로기의 봉사자, 자본주의의 첨병 역할을 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영화가 악용된 것이지요. 그런 개념에서 하나님은 이 영화를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독 영화의 가장 좋은 점은 영화를 통해 평면적으로 보이는 성경 말씀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선 오브 갓’에서는 그런 장면들이 많았는데, 한 가지 예를 들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을 때 이미 대제사장과 그 세력들은 예수님이 기적-특히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을 행하고 군중들이 따르는 것을 주시하면서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습니다. 갈릴리에서는 선한 것이 날 수 없다면서...

 

이들은 예수님이 참 메시아가 아니라고 전제를 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판단에 예수님은 율법과 전통을 무시하고 세리와 죄인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등 도저히 하나님이 용납하시지 않을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성전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예수님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우선 순위는 성전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미 강도의 소굴이 되어 버린 성전은 무너져야 하는데도, 그리고 새로운 개념의 성전, 건물 성전이 아닌 사람의 아들-인자가 성전이 되어야 하는데도, 그들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니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의 반역자로 만들거나 민중의 반역자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런 의도로 예수님께 공개적으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이 말씀은 현대 21세기를 한국에서 사는 우리들에게는 너무 밋밋하게 다가옵니다. 1세기 이스라엘 땅의 당시 청중이 받아들이는 함의는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는 훨씬 복잡하였습니다. 당시 복잡한 상황을 영화는 한 장면으로 설명해줄 수가 있습니다. 영화에는 얼마 전에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환호하면서 호산나!를 외치던 당시 군중들, 이를 곳곳에서 지켜보던 로마 군인들의 눈길, 이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는 본디오 빌라도의 예리한 눈빛, 민란이 일 것과 권위가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의 은밀한 눈길, 예수님을 통해 혁명의 길을 가고자 하는 열심당원들의 열의에 찬 눈빛 등이 모두 오버랩되어 나타납니다. 너무나 입체적이지요.

 

이 당돌하고 계략적인 질문에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시는지 이 모든 사람들의 눈이 예수님의 입에 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말씀하시면 로마에 부역하는 자로서 낙인이 찍혀 메시아는 커녕 이스라엘의 역적이 되는 것이고, 세금을 마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면 로마에 반역하는 자로 낙인이 찍혀 체포될 것이고, 극단적으로는 십자가형을 선고 받을 것입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숨 막히는 순간, 예수님께서는 느닷없이 데나리온 동전에 새겨진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되묻습니다. 그들은 가이사의 형상과 글이 새겨져 있다고 대답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 말씀은 말 그대로 ‘신의 한수!’입니다. 우리는 흔히 절묘한 대답이나 묘수에 대한 반응을 ‘신의 한수’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이 정말 ‘신의 한수’입니다. 이 대답은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대답입니다. 인간의 지혜가 아닙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은 참 지혜이십니다. 이 지혜가 말씀이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좀 더 부연하자면,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데나리온 동전을 가이사에게 주라는 말씀은 납세 거부로 로마에 반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가이사 정권을 인정하거나 굴복하신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전제합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듯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이 사실은 모든 사람들의 창조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 말씀을 들은 주위의 유대인들은 그 말씀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창조 신앙을 가진 그들이니까요. 하지만 이 말씀은 유대인들의 생각을 넘어섭니다. 당시 선택받은 유대인, 그중에서도 율법을 지킨다는 바리새인들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고, 세리와 창기, 죄인도 하나님의 것이며, 더 나아가 당시 유대인들을 핍박 하는 로마인들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마22:22)

 

그들은 떠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예수님은 멋지십니다. 너무도 지혜로우십니다.

 

이 영화는 이렇듯 성경의 내용을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캐스팅을 잘한 인물은 본디오 빌라도 연기를 한 배우입니다. 그동안 빌라도 역할을 한 배우 중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빌라도의 잔인하면서도 냉정한 태도, 권위적인 자세와 정치적인 행동들은 실제 빌라도가 살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빌라도가 옥에 갇힌 예수님을 심문하는 영화의 장면은 러시아 화가 니콜라이 게의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작품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가야바 역할을 한 배우도 잘 하였습니다. 물론 예수님 연기를 한 배우도 잘 하였습니다.

 

영화는 예술 분야에 속합니다. 예술이 악하게 이용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예술을 선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기독 영화가 많이 개봉 될 예정입니다. 벌써 ‘노아’, ‘선 오브 갓’이 개봉되었고, 가인에 대한 영화, 모세에 대한 영화, 본디오 빌라도에 대한 영화가 제작되거나 개봉 예정입니다. 우리는 이런 영화들을 선하게 즐기면 됩니다...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cf. 영화평이 길어지다 보니 사실 하고 싶은 말은 하지 못했네요...ㅎㅎ 시간이 되면 담에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