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엘 제도

 

고대 근동 히브리 사회에 고엘 제도라는 것이 있는데 친족 혈연 공동체에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고 상환해 주는 독특한 제도입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난으로 인한 빚 때문에 노예가 됐을 경우 친척이 대신 그 빚을 갚아 주어서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가난 때문에 판 토지를 친척이 다시 사 주거나 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그들의 친족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들에게 주신 제도 이상입니다. 대신 갚아줄 사람은 이 고엘 제도의 원칙에 의하면 반드시 同族이어야 하고 意思가 있어야 하며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간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의, 다시 말해서 사탄의 종입니다(6:6, 8:21, 4:8).


이런 우리를 노예에서 해방 시킬 수 있는 세 종류의 상환자(대신 갚아 주는 사람-redeemer) 중에서 사탄은 일단 意思도 없고 同族이 아니기 때문에 자격 미달입니다. 하나님은 意思도 있고 능력도 있으시지만 同族이 아니기 때문에 역시 안 됩니다. 우리 인간은 意思도 있고 同族이지만 능력이 없습니다. 왜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아무도 없지요? 이 때문에 요한이 요한 계시록 5:4에서 크게 울었던 이유입니다(5:1~5 을 잘 읽어 보십시오-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죄에 종노릇하는 우리의 노예문서라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러나 우리 인간들을 너무너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신 것이 바로 당신 자신이 직접 동족이 되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바로 그 분이 예수님이시지요. 이제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 졌지요. 100% 하나님이면서 100% 인간이신(죄가 없으신 것 만 우리와 다릅니다.) 예수님! 우리의 同族 이지요? 물론 당연히 意思 있으시지요? 그리고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능력도 있으신 분입니다. 이 분이 피 값으로 지불하셔서 우리를 사탄의 노예에서 해방시켜주신 분입니다.

 

이 이야기가 성경의 여러 곳에서 암시되고 있지만 특별히 잘 묘사되어 있는 곳이 바로 룻기입니다. 룻기는 단순히 착한 여인들의 귀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나중에 복 받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룻기 3:9 에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kinsman redeemer-동족 상환자) 됨이니이다’. 이걸 우리가 예수님에게 하는 이야기로 바꾸어 볼까요? ‘당신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덮어 주소서 당신은 우리를 죄의 노예에서 해방 시켜 줄 분 됨이니이다.‘ 어때요. 보아스와 룻의 이야기는 예수님과 우리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