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요한 목사님께서 보내주신 설교원고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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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안에서 성취된 성도의 휴거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6~18)“

 

마지막날 성도의 휴거를 믿고 공중으로 들림받게 되는 휴거 신앙을 갖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성도의 휴거를 믿고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근거로 삼고 있는 성경구절이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6절 18절의

말씀이죠.

 

(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 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휴거란 용어는 성경 혹은 사전에서 전혀 사용된 일은 없으나 (살전 4:17) 공중으로 '끌어올려,를 라틴어 성경에

번역한데서 기인하여 현재의 "Rapture"  휴거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단어는 황홀경 무아지경 이런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공중으로 끌어 올려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그

하나님과의 관계성보다는 들림 받는 장면에 꽃혀 그 의미를 두다 보니 휴거란 성경적 개념과 좀 다른 환상을 갖게

된 듯 합니다.

 

그런데 원래 끌어 올린다는 단어 '하르파조,란 원어는 그 의미가 ① 훔치다 ② 잡아채다 3),데려가다 등

(느닷없이 집어 올리다)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로써 수동태로 사용된 경우를 볼 때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에 상관없이

어떤 힘에 의해 이끌림을 받는 것을 뜻하고 있으며 원래 수동태이기 때문에 갑자기 낚아챔을 당하다.

이런 의미가 됨으로 이 '끌어올려,를 공중 휴거로 충분히 오해할만 합니다.

 

그래서 (눅17:35)"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르파조,가 수등태로 사용될 땐 데려감을 당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되이진다는 것이거든요.

(살전 4장14~15)"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우리 살아 있는 자들이 갑자기 휴거 된다 해도 지금 주안에 잠자고 있던 자들보다 앞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휴거로 인해 주 안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는 것인데요.

십자가는 시공을 초월하는 신비로운 사건 묵시적인 사건의 성취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잠자던 영혼들을 순간적으로 이동시켜 주 안으로 끌어 올릴 수 있게 됨으로 데리고 오신다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시공을 초월하는 신비적인 사건이기에 이것이 가능합니다

즉, 구약시대에 믿었던 모든 믿음의 선진들의 죄가 보혈에 의해 소급되어 단번에 사할 수 있는 권세가 있었으며 수천년 동안 잠자던 영혼을 단번에 아들의 나라로 옮길 수 있는 초유의 사건이 예수 십자가 죽으심이요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사심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그 증거를 보여주신 기적적인 사건이 구약 성도의 부활 사건입니다.

 

(마태 27장 50~53)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영혼이 떠나심과 동시에 성소 휘장이 찢어지고 바위가 터지면서 무덤에

잠자던 자들이 일어나 예수 부활 후에는 거룩한 성에 들어갔다는 것은 이제 하늘 문이 열렸다는 겁니다.

이제 십자가 이후 부터는 성도가 더 이상 무덤에 머물러 있지 않고 데려가신 다는 것을 모형적으로 보여준 표적이죠.

 

대체로 휴거를 믿는 분들은 다 중도에 데려가는 들림받는 그런 휴거를 믿고있는 것인데요.

하나님이 주신 수명을 다하지 않고 중간에 데려 가시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요.

그 이유가 환란의 강도가 강하기 때문에 그냥 놔두면 죽을거 같아서 미리 데려가는 거라고 그렇게 주장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성도가 이 세상에 보내진 것은 고난을 통해 온전케 하기 위함인데 그 과정을 피해 들림받는다는 주장이 앞 뒤가 안

맞아요. 죽으면 천국이잖아요.

죽어서 가나 산 채로 들림받나 결과는 똑같은데 말입니다.

 

이제 십자가 이후부터는 죽음의 잠을 잘 필요없이 성도의 개인 종말과 동시에 주님 앞으로 육의 몸에서 신령한 몸으로 순간 이동을 하듯. 옮겨지기 때문에 마지막 날 휴거는 십자가 안에서 이미 성취 된 약속이며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성령으로. 주님이 성도 안에 임재하기 시작 하면서 휴거 즉 영적 부활은 실제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현생의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에서 하나님이 날 끌어 올린다는 의미로 성도의 휴거가 강조되고 있는데요.

그러한 도피적 의미보다는 성도의 휴거는 구속사 안에서 예수 십자가 전과 후를 확연히 구분하는 사건인 동시에 이제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 부활에 연합한 자가 되어 현재 내 안에 이루어진 천국을 살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끌어올릴 휴(携), ’와 ‘들 거(擧)’가 합쳐진 이 말은 종말론을 주장하는 개신교의 한 종파에서 만들어낸 신조어인데요.

들어올림, 이끌어올림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며 영생에 들어가는 것보단 큰 환란에서의 도피적 측면이 강조된 단어입니다. 일부 기독교 교단에서 이 ‘휴거’ 현상이 세상 종말의 날에 심판의 징조로 나타날 것이라고 선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사회적으로도 큰 물의를 일으켰으나, 후에 이 교리의 허황됨과 시한부 종말론의 세대주의임이 널리 알려지면서 휴거 논쟁이 가라앉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휴거의 모형.

구약 성경에 죽음을 맛보지 않고 이 땅에서 승천한 사람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창세기 5장 24절에 나오는 “에녹”이라는 사람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십니다.

또 한 사람은 선지자 엘리야입니다.

에녹을 하나님은 성도의 휴거의 표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그를 하나님이 데려 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생명이 옮겨진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산상에 죽은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출애굽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어디엔가는 살아 있었던 것이 분며하죠.

물론 모세는 죽음의 잠을 자다 주님이 데리고 오실 자들을 대표하고 있으며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홀연히 변화되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할 몸으로 그리고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만나게 되는 부활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몰론 휴거의 성도가 홀연히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대면하게 되는 일이 마지막 날 있겠죠.

그러므로 성도의 휴거는 예수의 부할과 승천 안에 있으며. 주를 영접 하는 순간 믿는 자는 살아나 이제 죽은자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영적으로 산 자가 되기 때문에 다시 죽음을 경험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휴거를 그저 장래에 일어날 사건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이것이 영적 부활이예요,

계시록은 첫째 부활이라고 하는데 이 생명이 옮겨지는 이것을 거듭남이라 하고 구원 받았다 하는 것이죠.

이 말씀을 자세히 한번 살펴 보실까요?

(고전15장 51~52)"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고전 15장12~13)"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부활은 마지막 날이나 사후에 존재하는 미래적 사건으로만 믿고 있으면 안 됩니다.

 

(요한복음 11장23~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잡고 있으며 죽음을 정복하신 분임을 알게 하시기 위해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려 내시는 이적을 보이실 때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 나리라 했을 때 그는"마지막 날 부활 때 다시 살아날 것을 믿나이다" 했단 말이죠. 주님은 지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게 될 것을 믿어주기를 원했던 거잖아요.

 

그러므로 우리가 주장하는 휴거는 어떤 모앙과 형태로 들림받게 되는가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망의 몸이 어떤 생명의 몸으로 옮겨지게 되는지 이제 살아서 예수 믿는 자는 어떻게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게 되는지 이 사실에 더 집중해야 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젔으니 하나님이 그롤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11:5)

 

많은 사람들이 은혜 안에서 영적 실존으로 이끌려 옮겨지는 영적 내면의 부활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세상 종말에 이 몸이 들림받는 휴거만 믿는 미혹에 빠져있는 그리스도인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휴거는 왜 예수 십자가에서 성취된 언약인가? (7가지 이유)

 

1),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골로새서 2장14~15)<개역한글>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율법으로 심판하고 정죄할 권한을 폐지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죄로 인하여 사망 권세로 인간을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건져내기 위함인 것이죠.

그것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후서 1장에서 이렇게 예수의 오신 목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후서 1장10)"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예수께서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다고요.

그래서 십자가 이후 구약시대 성도는 죽음에서 일어나 천국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2),구약시대 믿음의 선진들이 십자가 이전에 하늘에 올라간 사실이 없없다는 거다.

 

그러면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진 것은 무엇이며 엘리야가 회리 바람을 타고 승천 했다고 되어 있는데 어디로 간 것이며 변회산상에 모세가 엘리야가 나타난 예수와 대화를 나눈 것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3장 13)"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볼 때 예수님이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사망 권세를 멸하기 전까지 아무도 크로노스의 역시 안에서 천국에 들어간 자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히브리기자는 히브리 11장 믿음장에서 구약시대 믿음의 조상을 열거하다가 이렇게 결론을 맺었던 것을 봅니다.

(히11장39~40)"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저들이 증거는 받았지만 약속된 하나님 나라를 아직 받지 못하였으나 저들이 그 약속을 언제 받게 되었습니까?

하늘문이 언제 열리게 되었는지 그때부터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사를 드리고 성전 휘장을 찢으시고 하나님 우편에 승천히신 후부터 진정한 의미로서 성도의 휴거는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20)"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님이 죽으실 때 성소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 실제 현장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구속과 부활 승천 이후에 구약의 믿음의 성도가 일괄적으로 단번에 하늘에 들어가는 그림이 바로 마태복음 27장의 무덤에서 성도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허물과 죄로 죽어있던 성도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앉히셨으니) 과거형이잖아요.

 

그러면 구약 시대의 성도가 예수 피로 인해 이른 곳은 어디입니까?

(히12:22~24)"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및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들과 새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

 

3), 휴거는 곧 영적 부활이다.

 

(요한복음 8장 51)"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주님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게 될 자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이미 예수 부활 안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개인의 수명을 다해 죽든지 아니면 갑작스런 사고로 죽임을 당하게 될지라도 죽음을 보지 않고 그대로 죽을 몸이 죽지 않는 몸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인데요. 이 보이지 않는 신령한 변화를 데려감을 당하는 휴거로 묘사하고 있는데 오늘 날 이 휴거 신앙의 진의가 많이 왜곡 되었죠.

 

그러므로 성도의 휴거는 즉 부활과 땔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자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마지막 나팔 소리에 홀연히 변화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첫째 부활에 참여하고 있던 자라는 겁니다.

에녹이 옮겨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 했기 때문이라고 한 것처럼 마지막 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동행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자 가운데 연합되어 그 부활에 연합된 자가 됨으로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4),휴거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 연합되는 것이다.

(고전15장22~23)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여기 보면 휴거에 차례가 있는데 먼저는 첫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엔 그리스도에게 '속한자, <개역한글> 번역은 '붙은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을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32)"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휴거는 예수의 부활 안에 연합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활에 연합되기 전에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리스도께 연합 될 수 있습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 맞이하는 죽음 반드시 건너야 하는 육체의 장막 그것이 휘장으로 비유 되었잖아요.

이 죽음을 통과 해야만 저 넘어 영생에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3:10~12)

 

그러므로 성도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되어 휴거에 이르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의 연합이 있어야 합니다.

(죽음엔 2가지로 '다나토스, 즉 첫째 부활에 이르게 하는 좋은죽음과 둘째 사망의 해를 입게 되는 나쁜 죽음이 있다)

우리는 둘째 사망의 해를 입지 않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제로 한 그 죽음에로의 연합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부활 안에 있는 살아난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5장24~25)"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5),휴거는 곧 하나님 나라다.

 

본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이 있잖아요.

주와 함께 있는 곳 거기가 어디 입니까? 거기가 천국이잖아요.

 

(빌3:20)"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면서 왜 그일을 하시는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 안에 임했다는 것을 선포하는 표징으로 성령에 힘입어 귀신을 쫏아 내신 것은 이미 귀신이 결박되었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마태 12장28)"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되는 휴거는 천국이 이루어지기 전에 마치 어디 중간 지점 정거장에서 상봉하듯 만남의

장소가 아니라 휴거는 그날 마지막 나팔에 한번 있게 되는 것이요.

휴거된 자들은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되고 휴거되지 못한 자는 영원한 심판에 슬피울며 이를 가는 길밖에는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구원도 단번에, 부활도 첫째 부활에로 단번에 그리고 심판과 휴거도 마지막 나팔에 단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으로 임재하신 그 사실 안에서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십자가 이후는 이미 성취된 사건을 성도는 현실 속에 그것을 체감하며 살아 내는 것입니다.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7)

 

저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고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되리라는 것을 볼때, 그 공중은 우리가 주님과 대면하는

그 곳이며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6),휴거는 예수그리스도의 임재 안에 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

 

내가 너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시고는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너희에게 다시 온다고 하십니다.

 

(요한14장 2~3)"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본문에서도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고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휴거는 종말의 때 홀연히 변화되어 천국으로 이끌림을 받아 주님을 실제로 뵙게 되는 것을 뜻하겠지만,

지금도 주를 영접하는 성도 안에 내주 하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넓은 의미의 휴거, 즉 주님의 영접을 받게 되는

것으로 주님과의 상봉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믿고 있는 자는 앞으로 휴거될 것을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 안에 이루어진 그 휴거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언제 죽어도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제 데려가셔도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별세 신앙이라 하죠)

 

그런데 오늘날 휴거에 대하여 너무 많은 사람들이 황홀경과 무아지경에 빠져 신비적으로 들림받는 공중 재림만을 기다리는 것은 성도의 휴거에 대하여 대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7).휴거 신앙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 생활을 하다 옮겨진 자로 휴거 신앙의 본보기가 된 인물이죠.

그는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했을까요?

 

(히 11:5)"..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구약 시대엔 증거를 주셨지만 오늘날 성도에게 확실한 약속을 주신 것처럼 그 약속의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약속의 성취가 바로 예수이고 보혜사 성령입니다.

성령이 왜 오셨습니까?

성도 안에 임재하여 함께 동행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약속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도 주신 목적이 무엇이죠?

(살전4:18)"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입니다.

그런즉 휴거 신앙은 우리가 말씀 안에 있고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이며 보혜사 성령이 함께하는 예수 부활에

연합 된 하늘나라 천국이 임한 자들이기에 예수와 동행하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일이냐 이말입니다.

이미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새언약 안으로 옮겨진 자들이잖아요.

 

그런데 휴거 신앙을 갖고 있다 하면서 왜 이 진리를 누리지 못하느냐 이말입니다.

언제나 노심초사하며 언제 휴거될까? 아니 휴거 될 수 있을까? 이렇게 살면서 들림받을 수 있을까?

환란 전에 휴거되나? 환란 후에 휴거 되면 어떡하지, 이처럼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는 휴거 신앙은 잘못 된 것이죠.

 

그러면 끝으로 휴거 신앙은 가진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요한14장 19~20)"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