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라서 모처럼 가족들과 영화 ‘엑소더스’를 보려고 하였더니 벌써 상영관에서 내렸고, 할 수 없어 ‘국제시장’을 보려고 하였더니 예매를 안 해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VOD로 ‘나의 독재자’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72년경 군사 독재시절, 남북 화해모드가 조성되던 시기에 김일성과 남북정상회담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던 박정희 정부가 회담의 철저한 준비를 위해 김일성 대역을 할 사람을 찾아서 중앙정보부에서 연습을 시키는데 그 사람이 조그만 소극장에서 잡일을 하면서 연극 배우의 꿈을 키워가던 설경구입니다. 거의 반 감금되다시피 한 상태에서 몇 개월을 김일성의 말투, 제스처, 심지어 몸까지 살을 찌워가며 김일성 대역을 연습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선포하면서 정상회담은 연기 되고, 결국 무산되면서 설경구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김일성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박해일)은 미친 아버지를 등지고 살면서 아버지와 화해를 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1994년이 되자 정권이 바뀌어 다시 정상회담이 추진되면서 설경구가 드디어 청와대에서 김일성 대역을 합니다. 그런데, 이 리허설 때 설경구가 김일성 대역을 하는 게 아니라 김일성이 됩니다. 그동안 삶으로서 연습하던 김일성, 즉 말투, 몸짓, 사상, 생각까지도 따라 하던 설경구가 자신도 모르게 김일성이 된 것입니다. 설경구의 연기가 압권입니다...

 

제가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이 그레고리 비일의 『예배자인가 우상숭배자인가?』라는 책인데, 원제목은 'we become what we worship' 인데, 우리는 우리가 숭배하는 그것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게 될 것이고, 우상을 숭배하면 우상처럼 된다는 것인데, 우상의 특징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기 때문에 허상이라는 것이 이 책의 요지입니다.

 

이 영화에서 설경구가 김일성 대역을 연습하면서 점차 김일성화 되어 가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이 책이 생각났습니다. 물론 설경구가 김일성을 숭배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숭배하는 대상을 닮아갑니다. 숭배하는 대상이 하나님이면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할 것이고, 우상을 숭배하면 우상을 닮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우상이 허망한 것처럼 우상을 쫒아가는 사람도 허무하게 되어 결국은 멸망할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아니 우리에게 우상은 무엇입니까?

 

이 영화의 결말은 설경구가 청와대에서 리허설을 할 때 김일성화 되다보니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설경구를 미친 사람 취급을 하면서 리허설은 중단되고, 1994년 여름에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정상회담은 결국 추진되지 못하고 설경구도 며칠 뒤에 사망합니다. 김일성처럼 죽은 것이지요....

 

그런데, 설경구의 사인이 뭐냐면 머리 뒤쪽에 종양이 생겨서 사망하였습니다... 김일성의 머리 뒤에 혹이 있었던 것처럼 설경구도 김일성을 대역하면서 점차 종양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