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지난밤 방선생님께서 감사하게도 우리 부부를 함께 초대해 주셔서 참 반가웠습니다.

방선생님께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우리교회 사이트 한번 소개해 드린것 뿐인데

저보다 훨씬 더 사이트를 열고 말씀을 듣고 계시는 것 같아 정말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우리가 전도한다고 내어 놓는 모든 계획과 방법들이 얼마나 치졸한 것인지 방선생님을 보며 생각하였습니다.

할례의 의미도 결국 인간의 방법이나 가능성을 배제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것임을 알려 주시는 것이구나 라는 이해가

조금씩 쌓여가기 시작합니다.

 

어제밤 방선생님께서 질문하신 그 질문이 떠 오릅니다

복음을 들은 우리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어느선까지  동의하거나

못본 척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 했었던가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냥 무덤덤히 바라보는 것이 잘하고 있는 건지

그리스도인으로서 도리적 가책을 느끼며 어느선에서 실행에 합류해야 하는지

확신 있는 판단을 할 수가 없다는 고민을 한 것이였지요?.

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목사님께서는

"국제적으로 생각하고 국지적으로 행동하라"는 어느분의 말씀을 인용해 들려 주셨지요

그 말씀을 저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국제적으로 생각하라 함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것 들을 주관하신다.

즉 태풍이나, 지진이나, 아이들이나 남편이 속을 썩이는 것 까지도

심지어 나의 어깨가 아파 돌아눕기 힘든 상황까지도 그분의 주권 아래 있음을 기억하고 맡겨라.

우리는 우리 머리털 하나도 희게 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니 맡기고 새처럼 가벼워져라. 예수님께서 내 짐은 쉽고 가볍다고 하셨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거 맞나요?

반면에 행동은 국지적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서 성실히 그 역할을 감당할 것을 요구하신다.

 교사는 열심히 교재연구를 하고 주부는 열심히 가족을 돌보기 위해 애쓰고 의사는 더 수준높은 의료행위를 위해 열공하는 것. 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 성실히 임하다가 결정을 해야하는 시기가 오면 결과는 상관없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 그 결정의 기준은 언제나 말씀일 것. 그러니 주신 그 믿음을 더 깊이 깨달아 가기 위해 말씀을 더 부지런히 공부할 것. 오늘 저는 집안 청소를 해야 합니다. 주어진 돈으로 만족하며 짜임새 있는 가계부를 꾸려가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인거지요? 이 모든 상황들속에서 기준은 믿음.  제가 이해한 국제적으로 생각하고 국지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씀을 이해하긴 한 것인가요?

 

목사님을 만난지 이제 일년반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생각해보면 긴 시간인데 전 아직도 깨달음이 더딥니다.

말씀을 펼칠때마다 어렵기도 하고 그저 무덤덤하기만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느린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말씀을 대할 때 언제나 그 말씀의 중심은 예수그리스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부분, 아니 거의 대부분의 말씀이 그동안 제가 잘못 인식하고 있었음이 드러납니다. 그 잘못된 인식으로 아이들을 다그쳤으니 아이들에게 저는 할말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마냥 그냥 있다는 것은 부모로서 성실치 못한 사랑일테지요. 그래서 나서기도 하고 간섭도 하는데 서툽니다.

 

이렇게 서툴고 느린걸음이다 보니 저보다 어린 분들이 가령 방선생 같은 분들이 빚진자의 심정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뵙게 되면 저는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 효빈이의 잠깐의 깨달음 앞에서 제 심장이 뛰었습니다. 마음껏 박수를 치고 싶었습니다. 성령님의 일하심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누군가 제대로 잘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도 나보다 훨씬 빠른걸음으로 걷는 것을 보면 질투요? 그런거 없습니다. 상급은 예수그리스도뿐이잖습니까..ㅎㅎ 그러나 자극은 됩니다. 격려도 받고 기쁨을 받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리스도안에서 그런 교제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어제밤 새삼 느꼈습니다.

 

제겐 왜 이리 그 깨달음이 더딜까요? 아직도 왜 이리 버벅거릴까요? 라는 질문에 목사님은 무어라 답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그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을 찾아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편과 진도를 맞추어야 된다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아닐까요?. 너는 거기서 기다려라. 좀 둔하게 끝자락 어디쯤 걸어가며 남편과 보조 좀 맞춰라 라는 .... 물론 내맘대로 찾은 답변이니 물론 틀렸겠지요?

 

언제나 하나님은 제편이 아니셨습니다. 내 편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그 진실앞에 서기가 아직 두렵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편이신데 그러나 내편인 줄 알았던 그분은 내편일 수가 없으심을 알아가는 이 떨림이 감사로 다가옵니다. 그분의 잔인한 사랑이라 하셨던가요..그리하여예수그리스도, 그분안에 흡수되어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것이겠지요? 완성되는 그날을 사모합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