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독교 매체에서 '부자 성직자' 라는 제목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신모 집사란 분이 아주 신랄하게 비판한 내용들이 요즘 교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그런 내용들이지요.

그래서 일부만 옮겨 놓으면 이렇습니다.


"교회의 성직을 맡은 목사가 과연 무슨 비상한 재주로 그런 부를 이루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하여간에 대형 교회를 세운 목사도 부자이고, 삼대 세습의 과업을 이룬 목사도 부자이고, 표절을 좋아하는 목사도 부자이고, 여신도와 간통한 목사도 부자이고, 상습적으로 교회 돈을 횡령한 목사도 부자이고, 그리고 교단을 장악하여 종교 마피아의 소두목이 된 목사들도 제법 부자다.


게다가 강해 설교 잘하는 어느 목사도 부자이고, 금식 기도 잘하는 목사도 부자이고, 새벽 예배 잘 인도하는 목사도 부자이고, 부흥회 잘하는 목사도 부자이고, 직통 계시를 받는다는 목사도 부자이고, 신유 은사가 충만하다는 목사도 부자이고, 그리고 거액 헌금 잘하는 목사도 알부자이다. 이들은 분명히 충성스럽게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희안하게도 상당수가 부자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교인들이 헌금한 돈으로 신학교를 세운 목사도 부자이고, 기도원을 세운 목사도 부자이고, 유치원과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세운 목사도 부자이다. 아울러 언론사를 만든 목사도 부자이고, 선교 단체를 만든 목사도 부자이고, 구호 단체를 만든 목사도 부자이고, 병원을 만든 목사도 부자이고, 교회 묘지를 만든 목사도 부자이고, 그리고 수십 억 목돈을 마련해 장학 재단를 만든 세습 목사도 상당한 부자이다.


(중  략)


초창기 천막을 치거나 상가건물을 세 내어 경제적 궁핍의 개천에서 헤매던 목사들이 오로지 목회만으로 불과 십수 년만에 용꿈을 이룬 개부자가 되었다면, 그게 과연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단지 종교와 위선의 가면을 쓰고 신도들에게 열심히 사기친 결과일 뿐이다.


그러므로 무슨 구구한 명분을 대든 성직자가 부자인 종교는 그냥 '사교 집단'이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이런 엄청난 말씀을 하셨을까.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막10:25)."


--------------------------------------------------------------------



오늘날 개신교회의 비리와 목사의 타락상을 잘 보여주는 글임에 틀림은 없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껍데기만 보고 실상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현대교회의 부패의 원인과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부자가 된 목사들의 비도덕적인 면만 보았을 뿐 그들이 전한 다른복음, 다른 예수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목사들이 교인들의 돈으로 호의호식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교인들에게 전한 다른 복음이 교인들을 영원한 심판으로 함께 끌어들이고 있다는 엄청난 현실에 대해선 왜 침묵하느냐는 말입니다. 왜 당신이 전한 예수가 다른 예수이며 다른 영인지를 성경을 기준해서 분별하고 책망하지 못하느냐는 거지요. 교회는 경제공동체도 아니고 정치공동체도 아닙니다. 세상적 정의와 평등이 실현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존재양식과 하나님의 의를 전하고 그 은혜만 찬송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만 감사하고 그 사랑만 나누는 곳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예수 이름만 높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그 은혜를 갚아야 구원받은 자 맞다고, 안 바치면 하나님꺼 도둑질한 놈들이라고 헌금을 강요해서 자기 배나 불리는 목사들을 비판하기 전에 그런 자들이 전한 예수의 은혜가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 복음과 어떻게 다른지를 증거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성도의 본무입니다. 목사가 부자가 되든 가난하게 살든 그런거 살피는 게 집사가 할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가령 목사가 올바른 복음을 전한다면 신 집사가 걱정 안 해주셔도 부자 될 일은 결코 없다는 말입니다. 부자 아니라 교인들에게 돌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지요. 그만큼 세상은 복음을 싫어하고 십자가 지신 예수를 꺼려한다는 걸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삯군들이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자아성취의 욕망에 동기부여나 해주는 그런 가짜복음을 전하니까 새벽부터 수천 수만명씩 예배당에 몰려와서 하나님께 돈 달라고 직장 달라고 좋은 대학 보내달라고 병 고쳐 내라고 승진시켜 달라고,내가 원하는 거 내놓으라고 하나님을 협박하는 것이지 목사가 참 복음을 전하면 새벽부터 잠 안자고 와서 행패 부리는 자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예수 전하는 나쁜 놈이나 지 욕심으로 그런 목사 이용하는 놈이나 공생공사 하는 것이지 진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다른 거 요구해선 안 됩니다. 목사는 복음만 제대로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모든 직분 역시 서로를 말씀으로 섬기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부도덕한 모습만 보고 세상적인 정의와 평등의 기준으로 교회를 개혁하자고 하는 게 요즘 교회개혁파의 주장인데 이런 개혁은 그 자체로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대적하는 또 다른 원수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중세의 종교개혁은 수직적 개혁이라면 자기들의 개혁은 수평적 개혁이라면서 그런 개혁으로 악질 목사들을 쫒아내고 교회 내에서 독재적 성직계급을 타파하고 투명한 재정관리와 세상이 인정 할만한 선한 실적을 쌓으면 교회가 부흥되고 세상도 정화 할 수 있으리라는 헛된 망상을 꿈꾸는 것입니다. 얼마전 돌아가신 장로 대통령처럼 간절히 기도해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곳이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가 왕으로서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하나님나라의 모형으로서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십자가는 참으로 헛된 것입니다. 얼마든지 정의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교회가 개혁의 이름으로 만들 수 있는데 쓸데없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분이 십자가로 세상을 부정하고 인간들을 무시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야 말로 성경이 말하는 자기 의로 충만한 부자인 것입니다. 부자 목사보다 그런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 보다 더 어렵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십자가의 원수라고 합니다.

땅의 일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구하는 자이며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 자기 자존심만 섬기기에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마음을 미혹하는 자 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은 배입니다. 돈 밝히는 목사만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공격하면서 또 다른 개혁복음을 퍼뜨리는 이들 역시 복음의 광채를 가리고 십자가 은혜를 대적하기는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렇게 사단의 궤계는 놀랍습니다. 예수이름으로 모여야 할 교회가 사람의 가능성과 존재가치를 확인하고 높이는 사단의 신학에 장악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의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만 교회입니다. 십자가 사건의 재현으로서 교회만 교회이며 죄인의 괴수들이 찬송하는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만 교회입니다. 다른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간들이 만들 수도 없고, 타락할 수도 개혁 할 수도 없으며, 깰수도 없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가 주인이시며 성령이 십자가 피의 거룩과 권능으로 지키시며 다스리시고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세상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 존재하는 교회가 어떻게 타락하며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개혁한단 말입니까? 그래서 교회를 에클레시아 라고 합니다.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과 질이 다른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그 교회를 인간들의 때묻은 손이 개입하게 되면 세상과의 경계가 무너지고 세상의 정신과 가치와 힘이 장악하게 되면서 사단의 회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단의 회당 안에 피로사신 성도가 고통하고 신음하면서 묵시의 실체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 아들들의 세상 속 실존이며 그들을 아담으로부터 세상 끝날까지 십자가의 행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악당들을 심판하고 쫒아내는 정의의 용사들이 아니라 이리들에게 잡아 먹히는 양으로서 성도는 세상 속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가 선 곳 영문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보이는 교회가 교회가 아니며 보이는 세상이 성도가 살 세상이 아닌 것입니다.

세상에 뿌리내리고 살도록 힘을 보태주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란 말입니다. 좋은 세상 좋은 교회 만들어서 잘 살아보세 라고 가르치는 자들은 그리스도밖에 있는 자들이지 결코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이 아닙니다. 성도는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세상 나그네입니다. 세상 속에서 하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별세하는 교회입니다. 그들에게는 질이 다른 시간이 흐르고 다른 눈과 다른 가치가 있으며 질이 다른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알아줄 리 없고 세상과 섞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땅에 오신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추방 당했듯이 그들 역시 세상의 법과 세상정신에 의해 추방 당해야 하는 것은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로 그의 운명에 연합된 자들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십자가 죽음에 넘기우는 그들에게만 예수의 생명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의 흔적을 가진 자는 위엣 것을 찾게 됩니다. 그의 생명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품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성도의 믿음이며 진리이며 구원이며 영생입니다. 그분이 그들의 시작이요 마지막이며 전부입니다.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을 위해서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 안에서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의 것들이 재통일 될 것입니다. 성도는 그날의 영광을 보기를 기다리는 자들이며 그 영광이 약속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닙니다. 세상과 역사는 참음으로 기다리는 그들을 위해 잠시 지나가는 배경으로 있을 뿐입니다. 창세전 완성된 묵시의 현실, 영원한 복음, 그 보이지 않는 소망 안에 우리가 다 함께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 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딛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