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라는 갑각, 전병욱의 갑각을 떼어 내자
전병욱 개척이 보여 주는 하등 종교 한국교회
[0호] 2012년 06월 26일 (화) 13:55:40 옥성호 newsnjoy@newsnjoy.or.kr

한두 명도 아니고 또 한두 달 사이에 발생한 일도 아니고…. 다수의 여성들에 대해 수년에 걸친 긴 시간 동안 발생해 온 이런 추잡한 일이 어떻게 이처럼 철저하게 교회 안에서 숨겨진 채 유지될 수 있었을까? 전병욱에게 그런 일을 당한 여자들은 왜 침묵하고 결국은 수긍 아닌 수긍으로 받아들였을까?

 

대충 짐작은 했지만 이번에 이진오 목사가 오픈한 '전병욱 목사, 진실을 밝힙니다'라는 사이트의 내용들을 보면서 든 가장 큰 궁금함은 바로 이 점이었다. 이 궁금함을 나름 해결하려고 생각하면서 이 글을 쓴다. 내가 생각한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일. 믿음(신앙) 좋은 자매라는 환상

잠시 눈을 감고 내 머리에 떠오르는 교회 내 믿음 좋은 자매, 신앙 좋은 자매를 한번 떠올려 보자. 아마 최소 몇 명의 여자들이 생각날 것이다.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하고 얼굴에는 항상 미소를 띄고 있으며, 무엇보다 지도자(권위)에게 순종하고 교회 내에서 봉사 내지 선교 활동에 열심이며 공적 모임에 절대 빠지지 않고 집회 시간 중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두 손 들고 눈물로 찬양하며 하루도 Q.T를 빼먹지 않는 그런 자매. 몇 명은 분명 우리 주변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 평생을 기독교 환경 안에서 특히나 목사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도식 아래 살아온 사람들 중에서도 주변에서 믿음 좋다는 소리를 듣는 여자의 심리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그런 여자가 아니라 100%는 모르지만 나도 나름 교회 밥 먹고 자란 사람이라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겠다. 그런 여자들의 심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 속의 여자들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그들은 좋게 말하면 착하고 나쁘게 말하면 나름의 환상 속에서 살고 있다. 누가 보아도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의 모습들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데, 어딘가 아주 중요한 부분에서 나사가 한두 개 이상 빠진 것 같은 사람. 이런 자매들이 그런 성향을 더 강화시키며 나이가 먹어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면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런 경우 그런 자매로부터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그들의 자식이다. 주변으로부터 수도 없이 '신앙 좋다, 믿음 좋다'라는 말을 듣는 그들, 그러나 그런 칭찬들은 그들을 더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 가두게 하는 독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큰 교회 목사라는 위치가 주는 말할 수 없는 위엄과 권위

교회에서 믿음 좋다는 칭찬을 받기 위한 선결 조건은 무엇보다 지도자에 대한 절대 순종이다. 큰 교회, 작은 교회를 떠나 교회 지도자와 의견 충돌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의견이 아무리 옳더라도 교회에서 믿음 좋다는 칭찬받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마태복음 한 번도 안 읽어 본 초신자이지만 등록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교회 내 봉사에 열심을 내고 담당 목사에게 밥도 자주 대접하고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조만간 믿음 좋은 형제로 바로 등극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 교회에서 목사, 특히 담임목사가 갖는 지위는 거의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교회 전체에서 목사라는 타이틀이 주는 힘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이게 얼마나 웃긴가? 그 어려운 화란 자유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손봉호 장로도 목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인해 목사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따' 또는 '무시'를 받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딸랑 몇 달 과정의 단기 속성 코스로 목사가 된 사람도 자신이 목사라고 몇 년 걸쳐 신학을 공부한 사람을 웃기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성도들은 그냥 그 사람 뒤에 붙은 타이틀만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웃긴 일이다. 그러나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자, 크던 작던 목사라는 타이틀이 주는 힘은 분명한 현실이고 교회 성도에게 있어서 그들에 대한 순종은 성도가 교회 내에서 갖는 위상에 절대적 영향을 발휘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목사가 무슨 시골 작은 교회도 아니고, 보통 중형 교회도 아니고 바로 다음과 같은 목사이다.

 

그는 그냥 남 또는 아버지가 키워 놓은 큰 교회를 덜컹 물려받은 재수 좋은 목사가 아니라 스스로 이름도 없던 작은 교회를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들 중의 하나로 직접 성장시킨 목사이다. 또한 한국에선 드물게 자신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스스로 글을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는 작가이기도 하다(교보문고에는 전병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 온다. 이문열 같은 작가도 출판사의 적극적 홍보가 없으면 한 시간 사인회를 유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인데 전병욱이 사인회를 했을 때 두 시간이 넘게 줄이 줄어들지 않아 교보 역사상 최초로 사인회 시간을 연장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인터넷에 올리는 설교는 최소 수 만의 사람들이 접속해 들으며, 홈페이지에 그가 사소한 글 한 줄 또는 사진 한 장 올리면 채 30분이 안 되어 수백의 조회 수를 기록한다. 그는 매일 남들이 정신없이 자고 있을 새벽 3시 전에 일어나 낙타 무릎이 되도록 기도한 후, 자전거를 타고 체력을 다지며 보통 사람이 한 달에 한 권 읽기도 힘든 책들을 하루에도 몇 권씩 읽는다.

 

그게 다가 아니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한 주에 하나 준비하기도 힘들다는 설교도 그가 손을 대면 그냥 가뿐하게 일주일에 열 개 정도는 바로 준비되고, 그의 입담을 통해 전해지는 설교에 목을 매는 사람들은 한국뿐 아니라 한국인 모여 사는 곳 어디라면 사방팔방에 널려 있다. 그래서 혹 사람들은 그를 한국교회 미래를 책임일 지도자 또는 한국교회의 황태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 이런 사람이 지금 위에서 말한 평생 교회 안에서 순종을 배우며 자란 믿음 좋은 자매에게 은밀히 다가온다면? 그것도 단 둘이, 그들 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너는 나에게 힘이 되는 존재야, 너는 내게 위로가 되는 존재야"라고 말하며 그 자매에게 손을 뻗는다면? 그걸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게다가 그 단계까지 이미 교묘하게 단계별로 발전된 상태라면 말이다.

 

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전병욱과의 사건을 남녀 간의 섹스로 인정하는 순간 그 사건은 다음 두 가지의 카테고리 중 하나에 속하게 된다. 우리의 믿음 좋은 자매는 결혼한 남자와 간통을 저질렀거나 또는 남자로부터 성폭행당했거나 둘 중 하나의 경우에 해당된다. 이 두 가지는 다 여자에게 특히 위에서 말한 신앙 좋은 자매에게 있어서는 결코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치명적 진술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의 지배하에 산다. 의식하던지 아니던지 말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경우는 믿음 좋은 자매의 경우 어떻게 하든지 외면해야만 하는 사실일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그 답은 이미 우리의 머리 좋은 전병욱이 알려 주었다.

 

믿음 좋은 자매가 겪은 일은 결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아니고…. 당연히 아니다. 그녀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크게 쓰임 받고 있는 주의 '큰' 종을 '위로'해 주었다라는 식의 자위의 형태로, 주의 종이 주의 일을 더 잘 하도록 도와줬다라는 식의 분명 무의식적인 합리화로 자신을 달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서 전병욱이 똑똑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똑똑한 전병욱은 무엇보다도 신앙 좋은 자매의 '신앙 좋음'을 철저히 악용했다.

 

"너 때문에 내가 산다", "너 때문에 내가 숨을 쉬고 제대로 목회할 수 있다" 등등의 말을 아마 그는 그 관계 중에 수도 없이 속삭였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과연 우리 교회 속의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이런 거짓을 당당히 거부하고 또 폭로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냥 시골 동네 교회 목사도 이런 식의 카리스마를 이용한 성적 희롱이 가능한데, 하물며 전병욱이야?

 

사. 지금 홍대 새교회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목사를 숭배하는 사람들

실질적 무신론자라는 말이 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삶을 보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우리 주변에는 실질적 목사 숭배자들이 차고 넘친다고 생각한다. 비록 입으로는 목사가 아닌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그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이 섬기는 것은 목사인 사람들. 하나님 앞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보다는 목사의 눈치를 살피는 데 급급한 사람들. 그들은 실질적 목사 숭배자들이다. 삼일교회의 당회와 목회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홍대 새교회라는 기막힌 교회가 또 하나 생기는 사태까지 오게 되었다.

 

입은 신을 부르지만 실상은 사람을 숭배하는 종교, 전형적인 하등 종교의 특징이다. 이 점을 통해 볼 때 기독교는 사실상 지금 한국에서만은 하등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몇몇 교회들을 생각해 보라. 그곳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비정상이 어떻게 유지가 될까? 다름 아니라 타락한 인간이 벌이는 일들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 일반 상식선에도 못 미치는 인간이 저지르는 사건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큰 일'을 하신다는 식의 사고에 사로잡힌, 기독교를 빙자한 하등 종교 신도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직까지 전병욱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나는 그의 설교를 한 열 편정도 들었던 거 같다. 그의 설교는 나에게는 전혀 아무런 감동도 또 재미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설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게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내가 그들을 이해를 하려면 못할 것도 없다. 나는 지금껏 이런 식으로 그들을 이해해왔다. 미국에는 5-hour Energy라는 조그만 음료(약?)가 있다. 그 음료의 광고가 강조하듯이 몸이 나른해지는 오후 2~3시 정도에 마시면 몸에서 확 힘이 나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음료이다. 그 솟아오른 힘은 한 다섯 시간 유지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박카스와 비슷한 음료인데 그것보다 좀 더 진하고 효과에서 노골적인 음료이다.

 

난 전병욱의 설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이런 음료의 역할을 하지 않나 싶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데 필요한 어떤 에너지, 동기부여 등을 반짝하고 제공하는 데 그의 말빨이 큰 역할을 했고 자꾸 그의 설교를 듣다보면 일종의 중독 상태에 빠지게 되고 말이다. 의사들은 5-hour Energy를 많이 마시지 말라고 한다. 바로 중독의 위험 때문이다. 이 음료는 마시면 마실수록 당장은 힘이 날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건강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전병욱의 설교가 그런 설교라고 생각한다. 들을 때는 확 힘도 나고 불끈 하는 용기도 솟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기독교와 점점 별 상관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설교 말이다.

 

한국교회는 지금 '목사라는 갑각'에 쌓여 있다. 그래서 이 목사라는 갑각이 떨어지면 연약한 속살밖에 없거나 아니면 그 속살마저 이미 말라있어서 아예 살이라고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목사라는 갑각에 더 목을 매는지도 모르겠다. 신앙생활의 생사 여부를 목사의 운명에 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목사가 사라지면 교회도 없다는 식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살려면 이 갑각부터 떼어 내야 한다. 목사라는 갑각을 떼어내고 처음에는 힘들지만 약하고 연약한 내 속살을 세상을 향해 과감히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목사라는 갑각을 떼어 내는 첫 단계로 우리는 지금 전병욱이라는 갑각을 만났다. 그리고 전병욱이라는 갑각을 자신을 잔뜩 감싼 채 하나님의 영광을 읊조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다.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수준을 그대로 가감 없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적나라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지금 어쩌면 하나의 작은 리트머스 시험지를 통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한국교회가 이 전병욱이라는 갑각을 떼어낼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는 작은 시험 말이다. 나는 분명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 전병욱이라는 갑각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치사하며, 더 두껍고 더 더러운 갑각들, 우리 주변에 널린 소위 말하는 '큰 목사'들의 갑각들도 결국에는 다 떼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반전이다. 하지만 반전의 기쁨은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는 진리가 구호를 넘어 행동으로 이어질 때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우리는 한국교회를 둘러싼 수많은 갑각들 중 하나를 벗겨 낼 호기를 지금 맞고 있다.

 

추신 : 이런 글을 쓸 때마다 항상 마음이 아픈 것은 그렇지 않은 목사들이 더 많다는 영광보다는 고통과 고난 속에 사는 목사들이 더 많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말로 쓰레기 같은 소위 말하는 '큰 목사'들 때문에 작지만 진짜 목사들이 도매금으로 취급당하는 것 같아서 마음 아프다. 하루 빨리 한국교회의 주인공은 재벌 총수를 꿈꾸는 '큰 목사'들이 아니라 진실 되게 좁은 길을 가는 작은 목사들이 되길 바란다.

 

참고 사이트 : http://cafe.naver.com/antijeon/55에서 발췌

 

- 제가 너무 당황하고 충격적이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괜찮다면서… "내가 너무 힘든데… 니가 나에게 위로가 된다" 이러면서 성추행 시작했고… 괜찮다는 말로… 이런 게 다 결혼하면 도움이 된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 고발해 봤자… 아무도 제 말을 믿어 주지 않고… 그리고 충분히 그 분은 설교가고 달변가기 때문에 제가 하는 말은 충분히 거짓말이라고…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매도할 수 있는 분이어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기….

- 교회라는 조직이… 그리고 목사라는 직분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자라게 하는 분인데, 그런 곳에서 그분을 거역하는 건… 음, 나를 성장시킨 분인데 그런 사람한테…어떻게 보면 아빠가 잘못한다고 해서 그 아빠를 고소 못하잖아요. 그쵸. 그런 맥락에서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교회라는 곳이… 다른 종교 단체들도… 아마 한 사람에게 너무 권력이 집중되고 그 사람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면서… 근데 그거에 대한 감시 능력이나 감사 능력, 옳지 못한 거에 대한 바른 목소리 내 주는 게 거의 전무한 거 같아요.

- 본인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형 교회가 무너질 수 있고 더 나아가 한국교회에서… 또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서, 한국교회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서 인정할 수 없다고..

- 저는 글쎄요. 목사도 똑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 종교 역할 담당한 제사장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