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권선교는 1회용이라고 비꼬았습니다.
중국에 무슨 가정교회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가정교회가 없는데 무슨 성경이 필요하겠느냐고 했습니다.
공산권 선교는 불가능 하다고 했습니다.
설혹 가능하더라도 1회용이라고 했습니다.
모래밭에 물 붓기라고 했습니다.
모두들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산권 선교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중국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구소련은 붕괴되었을까요?
몽골은 민주주의를 생각이나 해 봤을까요?
중국은 이제 기독교인이 1억이 넘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전해준 그 많은 성경들은 그 영혼의 젖줄이었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무너뜨립니다.
다니엘은 이방신의 제사에 사용된 음식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850명과 대적했습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무모한 사람들의 편에 서시면 일은 가능해 집니다.
아브라함도 무모했습니다.
모세도, 마리아도 무모했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모한 사람들의 편에 하나님이 서 계셨습니다.

한권의 성경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한 가방에 성경이 들어가면 25권에서 35권이 고작입니다.
한 차에 성경을 실으면 수 백권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에 실어 나르면 수 만권을 운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미련하고 무모한 짓을 왜 하느냐고 물으시겠습니까?
예수님도 무모하게 사랑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어 가십니다.
한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모한 짓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임을 아는 이들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순종하였습니다.
저는 공산권에서 복음 없이 죽어가는 이들에 대한 아픈 가슴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무모한 짓을 감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바보 같은 생각이 오히려 중국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미친 짓이 북한 김정일의 최측근에게까지 접근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저는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해 보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로 여길 뿐입니다.
저는 평양을 향해 울부짖기를 25년이나 했습니다.

 

그러나 울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북한말로 번역된 성경을 북한 안에 들여보냈습니다.
계속해서 북한을 향해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키워서 그곳에 침투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배달했고 풍선을 띄웠으며 일꾼들을 키워 되돌려 보냈습니다.
여전히 북한의 고위층을 위해 방송하고 있으며 DVD를 만들어 보내고 있습니다.

북한에 지하교회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필요입니다.

 

저는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현장을 25년 동안 지켜보아 왔습니다.
북한에서도 이것은 진리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다시 또 가슴 아픈 소식을 현장으로부터 듣고 있습니다.
부모가 없는 북한의 아이들이 버려져 북한과 중국에서 떠돌고 있습니다.
팬티만 입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니다.
이 아이들에게도 복음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서 벗은 아이들에게 옷을 입혀야 하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먹여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왠지 이 말씀은 북녘의 버려진 아이들을 돌봐달라는 저와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호소처럼 들려집니다.
이 일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익한 종  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