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막15:1-5)

 

 

이제, 대제사장과 공회원들이 유대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고소합니다. 고소한 죄목은 ‘유대인의 왕’ 왜냐하면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는데, 이 물음은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이 그 죄목으로 고소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고소하였을까요? 여기서, 이들의 속셈이 드러납니다.

 

 

사실,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는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행5:27-33)

 

 

사도들이 복음(‘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을 전하니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이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54-60)

 

 

여기에 나오는 ‘그들’은 1절에 의하면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그들은 마음에 찔려 회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데반을 돌로 쳐 죽입니다.

 

 

이렇게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있는 그들이 왜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죽이지 않고, 빌라도에게 넘겼을까요?

 

 

‘유대인의 왕’은 유대인들의 반로마 독립전쟁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요세푸스는 반로마 폭도의 지도자를 대개 ‘왕’으로 불렀음을 언급합니다. 이러한 인물은 반로마 역도로서 정치범에 해당하므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제사장과 예루살렘 공의회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소한 이유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로마 무장투쟁을 이끈 적이 없습니다. 그렀다면 대제사장은 어떤 근거로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소했을까요? 심문 과정에서 예수님이 대제사장 앞에서 메시아임을 시인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란 군사적 메시아이고, 군사적 메시아는 군사력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회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군사적 메시아는 로마에 대항하여 군사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의 메시아를 로마인인 빌라도가 이해할 수 있게끔 한 호칭이 ‘유대인의 왕’입니다.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을 범한 종교범으로 직접 죽이지 않은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두려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죽이고 나면 그 반발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예수님을 참 선지자로 여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박해를 받아 순교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총독의 손을 빌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십자가형은 나무에 달아 죽이는 형벌이기 때문에 율법에 따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선언하기 위해서입니다.

 

 

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21:22-23)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선언함으로써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좌절시키고 예수운동을 소멸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의 속셈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정당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죽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죄를 위한 대속의 죽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