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 목사님은 출애굽기 강해를 하고 계신데, 오늘 본문 말씀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출애굽기 20:7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쓰기는 쓰지만 그대로 부르지 않고, ‘아도나이’로 대신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는 하였는데, 그 맹세의 결과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설교 중 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에 대하여, 다윗을 예로 들어 설명하셨는데, 그 내용이 특별하였고, 제가 평소 그 본문을 보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오늘은 큰 도전이 되기에 그 예를 부각시켜보고자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으로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고, 다윗의 왕국은 크게 번성하여서, 아브라함의 언약이 다윗 대에 와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국의 절정기를 맞고 있을 때 큰 죄를 짓게 되는데,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강제로 취하여 간음을 합니다. 그런데, 밧세바가 임신을 하게 되고, 다윗은 그 죄를 덮기 위하여 더 큰 죄를 짓게 되는데,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합니다. 이후 다윗의 범죄는 은폐되고, 다윗은 밧세바를 왕궁으로 들이고, 밧세바는 아이를 낳게 됩니다.


하지만 다윗이 행한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습니다.(삼하 11:7 참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고, 나단 선지자는 비유를 들어 다윗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1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2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사무엘하 12:1-4)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의 반응은 격하고, 즉각적입니다.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주어야 하리라 한지라(사무엘하 12:5-6)


여기서, 형식상 율법적으로 따지면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은 부자는 비록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죽을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부자에 대해서 죽을 자라고 하면서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율법에 따라 그 부자는 양을 빼앗긴 그 가난한 사람에게 4배를 갚아주어야 한다고 선고를 합니다.


1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출애굽기 22:1)


4 도둑질한 것이 살아 그의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을 막론하고 갑절을 배상할지니라(출애굽기 22:4)


율법에 의하면, 양을 도둑질하여 죽이거나 팔면 양 주인에게 4배를 배상하여야 하고, 그 도둑질한 양이 아직 살아있으면 2배를 배상하여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나단의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양을 잡아 죽였기 때문에 4배를 배상하여야 된다고 다윗은 정당한 판결을 한 것입니다.


현재 다윗은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은 그 부자가 자기 자신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의감에 사로잡힌 다윗은 그 부자에게 율법 보다 더한 사형을 선고하고, 다시 율법에 따른 4배의 배상을 선고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 부자보다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은 간음하지 말라는 죄와 살인하지 말라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 죄들은 죽음으로 갚아야 할 죄들입니다.


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레위기 20:10)


17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레위기 24:17)


율법에 의하면, 다윗은 죽음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간음죄와 살인죄는 죽음으로 갚아야 할 죄입니다. 나단의 지적을 받은 다윗은 자신이 가난한 사람의 하나밖에 없는 양을 빼앗은 그 부자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회개를 합니다. 그러자 나단은 다윗이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에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죽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세우신 언약 때문일 것입니다.(삼하 7장 참조) 하지만 다윗이 죽지만 않았을 뿐이지, 그이후 다윗과 다윗 가문 및 이스라엘의 역사는 엄청난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그러면, 다윗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한 사실, 즉 부자가 양 새끼를 네 배나 변상해주어야 된다고 한 다윗의 언급은 어떻게 될까요? 다윗이 스스로 내뱉은 이 맹세의 말이 성취되었을까요? 만약 성취되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성취되었을까요?


대한성서공회에서 발행된 ‘관주․해설 성경전서’는 독일성서공회 해설을 담고 있는데, 이 구절에 대한 해설을 보면, 다윗이 맹세한 4배의 배상은 다윗이 변상해야 될 4배의 배상을 암시하는데, 그 4배의 배상은 아들 넷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다윗의 죄 때문에 밧세바와 다윗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죽게 됩니다.


19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사무엘하 12:19)


이 아이는 다윗의 죄 때문에 죽게 되었습니다.(삼하 12:15 참조). 이로써 다윗은 가난한 자의 하나밖에 없는 양을 빼앗은 죄의 댓가를 이 아이의 죽음으로 배상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다윗의 장남 암논이 죽게 됩니다.


28 압살롬이 이미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기를 내라 한지라 29 압살롬의 종들이 압살롬의 명령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들이 일어나 각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사무엘하 13:28-29)


다윗의 아들 암논은 이복 누이이자 압살롬의 친여동생인 다말을 강간하고, 나중에는 버립니다. 그러자 압살롬은 2년 후에 암논을 죽이고, 도망을 가게 됩니다.


암논의 죽음은 물론 암논 자신의 죄의 결과일 수 있지만 다윗이 맹세한 그 내용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또한 다윗의 죄의 결과로 칼이 떠나지 않고 재앙이 일어나리라는 나단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이기도 합니다.(삼하 12:10-11 참조)


세 번째,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죽게 됩니다.


14 요압이 이르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15 요압의 무기를 든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사무엘하 18:14-15)


암논을 죽인 압살롬이 외가에서 3년 동안 숨어 지내다가 다윗의 용서를 받고 다시 예루살렘에서 살게 되었는데, 압살롬은 배은망덕하게도 반역을 일으키고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도망을 가게 됩니다. 그후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전쟁을 하다가 압살롬의 자랑인 긴머리카락이 나무에 걸리는 바람에 나무에 달리게 됩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지만 요압은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압살롬을 죽이게 됩니다.


여기서도 압살롬이 자신의 죄의 결과로 죽게 되지만 역시 다윗이 맹세한 내용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율법이 성취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을까요?


네 번째,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가 죽게 됩니다.


24 그러므로 이제 나를 세워 내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25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그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열왕기상 2:24-25)


압살롬의 반역을 경험한 다윗은 말년에 압살롬의 동생인 아도니야의 반역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자 다윗은 즉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 간신히 아도니야의 반역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후 다윗은 죽어 열조로 돌아가고, 솔로몬이 왕으로 즉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는데, 이 아도니야가 그냥 조용하게 살면 될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하고 다윗을 시종 들었던 수넴 여자 아비삭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하게 되고, 결국 솔로몬 왕은 아도니야를 죽입니다.


이 아도니야의 죽음은 다윗이 죽고 난 다음에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여기서 참으로 엄혹한 하나님의 율법의 성취를 보게 됩니다. 다윗이 죽더라도 율법은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아도니야를 죽일 때 솔로몬은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이 맹세는 다윗이 나단에게, 가난한 자의 하나밖에 없는 양을 빼앗은 부자를 판결하면서 한 맹세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이 한 그 맹세가 자신의 아들들에게 돌아오는데, 그 마지막 아들(아도니야)이 죽게 될 때 자신의 후계자인 솔로몬이 그 살아계신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다윗의 맹세와 율법의 배상과 다윗의 아들의 죽음과 관련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다윗의 맹세가 결국 자신의 아들의 죽음으로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는 것에 대해서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한 맹세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죄만 짓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게 됩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6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태복음 5:3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