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말씀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말씀하셨다

곧 지식이 깊어질수록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당하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여호와를 경외하기 위하여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연구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삶이겠다.

 

어릴 적부터 교회문턱을 드나들면서도 나는 왜 이토록 무지한가? ”라는 뒤늦은 깨달음은 언제나 나의 목 뒷덜미에 붙어서 근질거린다. 그리하여 금요성경공부만이라도 빠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나에게 그 시간이 너무나 귀하고 좋았다. 오랜 신앙생활을 했다는 체면 때문에 기초적 질문조차 민망하여 하지 못하는데 누군가가 내 대신 그 질문을 해주면 그것조차 좋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 나는 의아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 질문을 하면 저번과 똑같은 질문인 것 같은데 왜 또 하고 또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였다. 그때만 해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나의 교만이고 거만함 인줄 몰랐다.

 

며칠 전 교회식구들과 먼 길을 다녀오다가 찻집에 들러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나는 성경공부시간에 늘 반복되는 질문을 하기보다 목사님 말씀을 몇 편씩 들으면 답을 알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성경공부시간에 하게 된다라며 너무나도 가볍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솔직히 그 말을 꺼내면서 나는 얼마간 동조를 얻기를 바랬다. 그런데 어떤 분이 나의 말을 받아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요?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똑같은 반복을 하며 살고 있지 않던가요

 

그 순간 나는 내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내가 뱉아 낸 그 말은 나의 거만함과 교만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는 생각이 내 심장으로 날아와 박혔던 것이다. 내가 성경공부를 한다는 것이 하나님에 관한 정도를 알기 위한 몸짓이 아니라 어쩌면 지적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교묘한 몸짓은 아니 였을까?

내 안에 어설프게 자리 잡고 있던 상식과 이론들이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에 관한 정도 보다 나를 솔깃하게 하는 그 무엇을 찾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을 부인 할 수 없었다. 공부는 했는데 그 지식은 어디로 다 날아갔단 말인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쌓여간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로 내려가야 하는데 말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에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말이 아닌가.

 

그날 그분의 그 한마디로 나는 나의 죄악 깊숙한 바닥을 파고 또 파 들어가시는 하나님의 그 생생한 손길로 떨었다. 나는 그 죄악 된 자리를 끝까지 고집하며 그 자리를 무한반복하고 있는 확인으로 떨었고 그런 나를 끝없이 기다리시는 그분의 은혜 앞에 머물며 울었다.

 

그리하여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날카로운 혀로 견책해 줄 친구를 준비해 주셨음에 감사했고 이 길 가는 동안 외롭지 않을 것 같아서 기뻤다. 나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동조해 주고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지어주는 사람들만 내 곁에 있다면 나는 얼마나 헤매일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노릇이다.

 

심비에 새겨야 할 하나님의 말씀, 확인하고 확증해야 할 그 하나님의 말씀이 지식으로 내 안에 깊어지길 소원하며가는 이 길에 나를 견책하여 줄 동무들을 붙여 주심이 감사하다. 함께 지어져 가는 이 길이 그래서 좋고 견딜만 하다. . 모든 것이 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