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에 환타지 영화 “업사이드다운”이 개봉되었었는데, 내용이 특이합니다. 위아래가 거꾸로 상반된 두 행성이 태양을 따라 공존하는데, 중력이 다른 두 세계의 만남은 결코 허락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트랜스 월드’라는 거대 회사에서만 상부세계의 사람들과 하부세계의 사람들이 일을 통해 만나게 됩니다.

 

상부세계의 부자 사람들은 유토피아로 묘사되고, 하부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은 디스토피아로 묘사되는데, 상부세계의 여자와 하부세계의 남자가 우연히 만나 사랑을 하고, 결국 상부세계의 여자가 하부세계로 내려와 남자와 함께 사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은 약간 틀리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 줄거리가 성경의 아담과 에덴 스토리를 상기시키는데, 남자의 이름이 ‘아담’인 것과 여자의 이름이 ‘에덴’인 점, 그리고 여자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아담'을 처음에 몰라본다는 점 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이 끊임없이 ‘에덴’을 찾아 상부세계로 가려고 하는 것은 범죄로 인해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이 에덴을 그리워하고 찾으려고 하는 인간의 원초적 향수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비록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그 ‘아담’을 그리워하는 것은 ‘에덴’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들은 서로를 만나 같이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영화에서는 중력이 다르게 작용하고, 상부세계의 이기심 때문인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성경에서는 뱀의 개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에서 쫓아내시고 화염검으로 에덴을 지키시기 때문이라고 풀이합니다.

 

영화에 보면, ‘아담’이 ‘에덴’을 만나기 위해 특수장치를 몸에 두르고 상부세계로 잠시 동안 가지만 시간이 오래되면 그 특수장치가 타버리기 때문에 그 전에 하부세계로 다시 와야 되는데, 이러한 불의 설정은 에덴을 지키는 화염검을 연상시킵니다.

 

영화에서 두 세계의 물질은 서로에게 중력을 거슬리게 되는데, 오직 두 세계에서 융화된 물질만이 중력의 저항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중력과 은총”이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읽지는 않았지만 이 책에는 인간의 조건은 중력이라는 필연성의 영향아래에 놓여 있으며 오직 은총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영화에서도 두 세계에 사는 사람은 중력을 거슬릴 수 없는 조건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고, 성경의 모든 이야기도 아담이 겪은 운명의 조건에서 시작됩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을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창조 때 지으신 아담은 그 창조의 결정판인 것이 진 에드워드의 ‘천국 연대기 5부작’ 중 첫 번째 책인 “사랑의 시작”에 보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위대한 아담의 타락은 그후 인간의 굴레가 되었고, 둘째 아담이 오기까지 에덴은 숨겨져야 했습니다.

 

이젠,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새 창조가 시작되었고, 그 위대한 완성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낙원된 에덴을 체험하지만 나중에는 영화로운 몸으로 이 에덴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상부세계와의 접촉이 상업화에 물든 ‘트랜스 월드’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신자들에게는 에덴과의 접촉, 하늘과의 접촉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집니다.(최근 책에서 에덴은 원초적 성전, 하늘 성전의 원형인 것을 읽었습니다.)

 

결국, 영화에서 에덴이 하부세계로 내려와 아담과 함께 살게 되듯이, 신자의 미래, 아담과 에덴의 미래는 새 하늘이 새 땅으로 내려와, 이 새 세상에서 중력의 법칙을 거슬린 은총의 삼위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