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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동영상설교]

에베소서 2:19~22 터와 모퉁잇돌 2012. 11. 25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예수님의 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한 새 사람을 지으시고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을 지난주에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표현으로 보았습니다. 오늘은 이런 관계를 하나님께서 거하실 집을 짓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 창조에서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 창조하신 곳에 함께 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거하실 처소를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이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어 거하십니다.

 

에베소서 2:20절입니다. 바울사도는 에베소의 성도를 향하여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합니다. 이것을 복음을 듣고 믿는 모든 자들에게 동일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인한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자들의 터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입습니다.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가인의 후손과 아벨 대신 주신 셋의 후손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같은 이름인 에녹과 라멕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가인 계열은 자기를 위하여 성을 쌓고 악기를 만들로 무기를 만들어 스스로의 터를 세워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이름의 셋 후손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시기를 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분명히 터가 다른 것입니다. 그 차이는 땅과 하늘입니다.

 

먼저 터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터를 닦아두었다고 합니다. 이 터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 터를 닦은 자들을 사도와 선지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이며 이들은 특별한 권세를 받았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 자들입니다. 사도들은 성경이 완성되기까지 특별한 권세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사도들 외에는 다른 사도는 없습니다. 요즈음 신사도운동이라고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사도들처럼 직접계시를 받는다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다 엉터리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닦아둔 터 외에 다른 터를 만드는 이단입니다.

 

사도들은 구별이 쉬운데 선지자들을 어떻습니까? 선지자는 주로 구약에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신약에도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와 선지자를 하나로 보기도 합니다. 문법으로도 사도와 선지자들을 말하는데 하나의 관사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4:11절에서는 사도와 선지자를 분명하게 구별합니다. 그리고 순서상으로도 사도와 선지자라고 말하기에 구약의 선지자라고 하기 보다는 신약의 선지자로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구약의 선지자도 포함된다고 봅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과 선지자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에도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도(행11:3) 안디옥 교회에도(행13:1) 고린도 교회에도(고전12:28)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선지자라고 하는 자들의 이름도 나옵니다. 바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사울, 유다, 실라 이런 자들을 선지자로 부릅니다. 이런 자들도 사도들과 함께 성령이 임하여 터를 닦는 자들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때에 사도와 선지자의 역할이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터를 닦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터 외에 다른 터를 닦지 말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3:10~11절입니다.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바울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닦아 둔 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터를 닦는다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하여도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터가 어디에 있는지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7:15~27절을 봅니다. “봉독”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보면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열매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초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매라고하면 하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한 것보다 더한 열매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들이 자기 이름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이름으로 행하였는데 왜 이들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면서 쫓겨나는 것입니까? 24절부터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그 행하는 자가 무엇을 행하는 것입니까? 그 주초를 반석위에 두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위에서 세워지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다 무너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위에 세워진다는 말은 모든 것을 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공급받아 세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골로새서 2:18~19절입니다.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를 붙들지 않는 자들은 자기가 본 것과 생각을 따라 육체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머리로 또는 기초로 세워진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공급을 받아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는 그 터도 과정도 결론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가 터만이 아니라 오늘 본문 20절에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다고 합니다. 모퉁이 돌이란 건물의 기초가 되는 돌입니다. 그런데 요아킴 예레미야서라는 신약학자는 건물의 마지막 꼭대기에 건물이 완성되는 자리에 놓는 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됨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돌이 모퉁잇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하여 알아보아야 합니다.

 

이사야 28:16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이 돌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돌을 믿는 자는 불안하지 않고 든든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 돌이 시험한 돌로서 귀하고 견고한 주춧돌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돌을 바울사도와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시편 118:22~23절입니다. “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옛날에 집을 짓는 주요 재료가 돌과 나무입니다. 그런데 건축자가 돌을 버렸다는 것은 건축자가 원하는 재료가 아니라서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버려진 돌이 다른 집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이기에 우리 눈에 기이한 일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건축자들이란 집을 짓는 자도 되지만 성전을 짓는 자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전을 짓는 일에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 집 모퉁이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는 이 집이 성막과 성전을 말하는 집과 같은 단어입니다. 이정도로 말씀을 드리면 성경을 좀 보신 분이라면 이 말씀이 무엇을 증거 하고자 하는지 짐작이 되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20:9~19절을 봅니다. “봉독” 마태와 마가복음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농부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주인이 보낸 종들은 선지자들입니다. 아들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이 비유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듣는 사람들이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과 아들마저 죽인 자들을 진멸할 것이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고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시편 118편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 알고 즉지 잡고자 하였지만 백성들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결국 모함하여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118편의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버림을 받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붙잡은 건물은 옛 성전건물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께 성전 건물을 보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건물로 된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4:1~2). 나중에 예수님을 처형하려고 하는 죄목도 성전을 허는 자라는 죄목이었습니다(마26:61).

 

요한복음 2:13~22절입니다. “봉독”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았습니다.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면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고 한 시편 69:9절의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주의 전에 대한 저런 행동은 결국 자신의 죽음을 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유대인들이 보고서 내가 무슨 표적을 보여주겠느냐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3일 만에 일으키겠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 지었는데 어떻게 삼일 만에 일으키겠느냐고 합니다. 이 말씀은 성전이 된 자기의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을 나중에 제자들이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3일 만에 부활하과 승천과 성령의 부어주심을 통하여 알았습니다.

 

사도행전 4:10~12절입니다. “봉독” 성령이 임한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는 너희가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베드로 자신도 버린 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세 번이나 버린 돌입니다. 그 버려진 돌이 하나님의 참된 성전의 모퉁잇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임하고 이렇게 증거 합니다.

 

이것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들의 원하는 집을 짓는 건축자들입니다. 종교인들은 종교적인 건물을 지어서 신에게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종교가 없는 자들은 자기들의 집을 아주 멋있게 지으려고 합니다. 이런 집은 건물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며 세워가는 것도 건축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이익이 될 만한 것을 다 끌어 모읍니다. 건축을 하는 자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듯이 혈연, 학연, 지연, 종교, 선행도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모아들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도 필요하다고 해서 주워왔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여러 가지 도움이 된다고 해서 예수도 들고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제대로 알고 보니 자기 인생에 도저히 도움이 되지를 않습니다. 어느 구석에도 써 먹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돈을 사랑하고 싶은데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멋진 인생을 꿈꾸며 살아가려고 하였는데 그렇게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쓸데없다고 버려버린 돌이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 버려진 돌에 하나 둘씩 붙어지는 돌들이 있습니다. 이들 역시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들입니다.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이 그 돌에 붙습니다. 여기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터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모퉁이 돌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머릿돌이 되는 그런 하나님의 거하실 집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집을 교회라고 합니다. 이런 교회를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값 주고 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교회는 사람의 손으로 지을 수가 없는 교회입니다.

 

베드로전서 2:1~10절을 봅니다. “봉독”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가 맛보았다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말씀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무엇을 알게 됩니까? 사람에게 버린 자 되었으나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처럼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버려진 이 돌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지만 이 돌을 믿지 않는 자는 그 돌이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된다는 이사야 8:14절의 말씀도 인용합니다. 오늘 우리는 무슨 터 위에 세워졌습니까? 인간의 행함이라는 모래위에 세워진 집들은 다 무너집니다. 이런 인생들에게 아무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버려진 돌, 예수 그리스도위에 세워진 집만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 버려진 돌을 자기 인생의 전부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 예수님의 피로 그의 백성이 된 자들입니다. 이것은 오직 주의 긍휼로 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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