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34~38 무엇이 부끄러운가? 2019. 5. 12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지난주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는 잘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대답을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비로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죽는 메시아는 생각지도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리고 나서자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각이란 사탄이 심어준 생각입니다. 이것을 육신의 생각이라고 합니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육신의 생각이란 이미 아담의 타락이후로 모든 인간을 장악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본문 34~37절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과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에 대하여 수많은 오해들이 나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자기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즉 세상에서 복도 받고 천국에서 상도 받으려고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헌신 충성 봉사한 것은 자기 부인이 아니라 자기긍정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떤 분은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자기 죄 짐을 지는 것이지요?’ 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자기 죄 짐을 자기가 질 수 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독일성서공회 주석은 이렇게 단어를 설명합니다. 자기부인이란 자기 자신과 자기의 소원을 포기하는 것자기 십자가란 이 치욕적인 사형을 선고받은 자가 항소의 가능성이 더 이상 없고 그 사형 선고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었을 때에 짊어지는 것이다문자적인 해석이 이렇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과 자기의 소원을 포기하는 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게다가 사형확정 판결이 나서 더 이상 항소의 가능성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가 있습니까? 이 일은 예수님 외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의 의를 쌓는 것을 자기 부인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외식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14절입니다.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누가 자기를 부인하고 살아갑니까? 바리새인은 남의 것을 빼앗거나 불의한 행동을 하거나 간음하는 자와 같지 않다고 하면서 이 세리와 같지 않다고 합니다. 게다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리는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자기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합니다. 여기서 누가 자기부인을 한 사람입니까? 겉으로 보면 바리새인처럼 사는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여기는 자기 의에 붙들린 사람이기에 자기긍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리는 죄인이라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대입하여 보겠습니다.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도 잘 내고 모든 모임에도 열심을 내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우리교회는 그런 교인이 거의 없습니다만 예를 들어서 있다고 하면 이런 사람은 얼마나 자기를 부인해야겠습니까? 주일날 결혼식도 못 가고, 동창회도 못가고, 여행도 못가고, 그런 돈으로 십일조만이 아니라 감사헌금과 선교헌금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정 반대로 한 사람이 자신은 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의롭다고 하여주면 누가 반발하겠습니까? 앞의 사람이 반발합니다. 반발한다면 자기부인이 되지 않은 모습입니다. 자기 의를 마일리지 쌓듯이 쌓아간 것이지 자기 부인이 아닙니다.

 

지난주 기독신문에 이런 책 광고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불가능이 없다. 책의 저자를 붙잡아준 인생 말씀이라고 붙어 있었습니다. 책 제목은 이른 비의 기적과 늦은 비의 기적입니다.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라 보라(3:10). 끼니를 걱정했던 목사가 수백억에 달하는 세 개의 빌딩과 영어학교, 뉴질랜드 최대 선교센터, 대형 쇼핑몰과 크리스천 캠프장을 운영하기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의 기적! 믿음이 쇠퇴하고 있는 땅에서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고 계심을 생생히 증거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백억의 재산가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해 졌지만 예수님으로 기뻐한다면 간증이 되겠습니까?

 

본문 38절을 봅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라고 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바리새인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요구할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악하고 음란할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내가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삼일만의 부활이 예수님이 보여주실 표적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성공이나 기적이나 이런 것들로 표적을 삼으려고 한다면 그것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인 것입니다. 이런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예수님과 예수님을 말씀을 부끄러워한다면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하셨습니다. 인자란 예수님께서 자신을 향한 고유 칭호입니다. 에스겔 1:26절입니다.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에스겔 선지자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그발 강가에서 하늘이 열리고 이런 환상을 본 것입니다. 그 영광의 보좌에 있는 분이 사람의 모양 같다고 합니다.


다니엘 7:13절입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다니엘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이지만 계시를 받는데 인자 같은 이의 환상을 봅니다. 영광 중에 계신 이 인자 같은 이가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인자됨으로 인하여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되십니다(5:27). 그런데 이 인자로 오신 분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2:10절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메고 온 중풍병자에게 병 고침 받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내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병 고침 받으라는 말씀과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 어느 것이 쉽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리고 네 침상을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어제 우식씨 심방을 갔습니다. 아직 말을 잘 못하고 반쪽이 마비가 계속되고 있지만 사람을 알아보고 단 답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서 우식씨는 예수님께서 두 가지 중에 하나만 준다면 무엇이 더 받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잘 안 되는 발음으로 죄 사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고백이 진짜 성령의 감동으로 고백한 것인지 목사가 물으니 체면상 고백한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죄 사함이 더 중요하다고 하니 웃었습니다. 병 고침 받아도 다시 죽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자됨으로 인하여 죄를 사하여 주시는 권세를 가지고 오신 것이라고 전하고 왔습니다.

 

마가복음 8:31절입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예수님께서 죄를 사하는 권세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루어내시는 일입니다. 나병환자 열 명이 고침을 받아도 구원받은 자는 한 사람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고 감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나 베드로는 인자의 죽음에 대하여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계속하여 인자의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말씀을 하십니다.

 

마가복음 10:45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예수님께서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말씀이신 분이 사람의 아들로 오신 것은 자기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섬겨주신다는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섬김을 받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섬겨주심이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으로 섬겨주심을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부끄러워하시겠습니까?

 

마가복음 13:26절입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이 말씀은 본문을 보면서 상세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재림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완성하심으로 이미 구약의 성도들은 구원이 임하는 것이며 구약의 불신자들은 심판을 받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확증이 되고 다시 오실 때에도 수치와 저주스러운 십자가로 다 이루신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로마서 1:16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바울의 복음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보면 저주 받아 죽은 십자가입니다. 헬라인들이 보면 로마를 반역하다가 처형당한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처형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 복음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구원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넘겼고 지금도 반신을 사용하지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지만 정말 예수님께서 죄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믿게 되었다면 복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옆의 병상에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저게 무슨 복일까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부끄러워한다면 예수님도 우리를 부끄러워합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부끄러운 것입니까?

 

이사야 28:14~16절입니다. “14 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우상숭배자들은 거짓을 피난처로 삼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백성은 시험한 돌이며 견고한 기초 석을 믿기에 다급하게 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9:30~33절입니다.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이사야 28장의 말씀은 인용 하면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길은 예수님을 믿는 길이라고 합니다. 율법을 따라가면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로마서 10:9~13절입니다.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예수님을 믿음으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다니엘 12:1~2절입니다. “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는 것보다 더 큰 환난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죽으심이 얼마나 거리끼고 어리석어 보였으면 제자들도 다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들은 십자가를 지신 후에 부활하시고 다시 찾아오십니다. 그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십자가의 복음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구원의 능력임을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그 사람은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유일하게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나의 자랑이 하나도 나올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점도 흠도 티도 없이 영원히 거룩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