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12~20 네가 본 것 2020. 6. 28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지난주에 9~11절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봉독사도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함으로 밧모라는 섬에 갇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예수님을 증거 하면 환난을 당하게 되지만 그 길이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되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합니다. 여기서 네가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오늘 본문 19절은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합니다. 시공간에서 장차 될 일이라고 하지만 사도요한이 이미 다 본 것입니다. 다 보았다는 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도 이미 묵시 속에서는 다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이 역사 속에서 살아가기에 장차 이루어질 일이 이미 다 완료가 되었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식하기로는 지구는 가만히 있고 태양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지구와 지구에 속한 우리가 움직입니다. 지금 창문에 비취는 태양 빛은 태양에서 약 8분전에 폭발하여 비친 빛입니다. 지금 보는 태양빛은 8분 전에 일어난 과거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지구보다 8분 더 떨어진 거리의 어떤 행성에 이 빛이 비춰지면 지구는 이미 8분 전 과거의 일입니다. 태양은 18분 전 과거의 일입니다. 그런데 태양과 지구와 어떤 행성이 같은 장소에 있다면 과거도 미래도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많이 걸리면 공간도 멀다는 겁니다.

 

이러한 시공간에 갇힌 우리가 어떻게 영원을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이런 세계를 통하여 보이지 않으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신성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들은 보이는 것을 우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만 성경을 통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됩니다. 제가 태양의 빛을 말한 이유는 영원한 빛이신 하나님을 말씀드리고 위한 것이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과거도 미래도 없는 영원한 현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하면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영원하신 하나님을 말하면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느냐고 묻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인식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계시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스스로 계신다는 뜻은 누가 과거에 만드신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그 이름이 여호와인데 이 여호와의 이름의 뜻인 스스로 있는자가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내가 그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며 부활이며 빛이며 양의 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본 예수님의 모습이 구약에 나타난 그 여호와의 영광의 모습과 같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성경의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하나님은 마음에 뜻하신 것을 말씀하시는 순간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처소를 만드셔서 안식하시기 위한 창조입니다. 그런데 그 처소를 우주 공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속하신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 거하신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처소가 되는 자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처소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일을 이루어 내시는 일이 십자가를 지시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이루어내십니다.

 

사도요한이 본 것을 기록한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우리가 무엇을 보면 잘 믿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몇 주 전에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교회를 다닌 것은 아닌데 성경을 알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면 그 하나님을 내가 보면 잘 믿게 될 것인데 그렇게 잘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을 보는 방법이 없는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믿는 것이 보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구약에서 여러 부분으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에는 아들로 말씀하신다고 전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3절입니다.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이 모든 날 마지막이라는 날은 예수님께서 이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로 하나님을 뜻을 다 이루신 날이 마지막 날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 오르신 것을 히브리서 기자도 증언합니다.

 

오늘 본문 12~16절입니다. “봉독 하늘에서 큰 음성이 몸을 돌이켜 요한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켜 봅니다. 그 본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요한이 본 내용은 모두 구약성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다니엘서와 출애굽기와 에스겔서와 이사야서에 나오는 내용들입니다(28:4. 11:4, 49:2. 1:24, 43:2. 7:9,13,10:6). 구약에서는 이런 내용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는 이런 영광을 인자 같은 이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장과 왕과 메시아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는 겁니다.

 

다니엘 7:9~10절입니다. “9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상태에서 이 환상을 봅니다. 이런 환상을 통하여 장차 제국의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심판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본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지금 사도 요한은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에게서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여호와의 일을 인자가 합니다.

 

다니엘 7:13~14절입니다.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다니엘이 본 큰 신상과 네 짐승들의 제국을 말하는데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를 말합니다. 그리고 로마시대 인자가 나타나실 것을 예언하였고 그 말씀대로 예수님은 영원한 나라를 십자가로 세우셨습니다.

 

다니엘 7:27절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구약의 이러한 예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로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성령이 임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예수님께서 머리가 되어 다스리고 계십니다. 이 나라는 결코 사람이 세울 수도 없고 허물수도 없는 나라임을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일하심을 보고 기록한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본문 17~18절을 봅니다. “봉독 지난주에 17절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품에 안기기까지 한 사랑받던 제자 요한이 영광중의 예수님을 보고서는 엎드려져 죽은 자와 같이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하신 그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오른손을 얹고 두려워말라고 하시면서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이런 내용도 다 구약에 있는 내용입니다(42:4~12). 그리고 살아 있는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전에는 죽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죽으신 분이 지금 살아 계시는데 영광의 하나님의 본체가 되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인자됨으로 인하여 심판의 권세를 가지셨기에(5:27)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십니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본문 20절을 먼저 봅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요한이 본 것은 예수님의 오른 손에 일곱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고 합니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이며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합니다. 이것이 본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교회가 핍박과 환난을 당하고 있는데 요한의 이 편지를 받으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로 계시면서 자기 교회를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요한의 편지로 전달 받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환난과 그 나라와 참음에 동참된 자들은 이 소식이 위로이며 기쁨이며 소망이 됩니다.

 

여기서 일곱이란 완전하다는 뜻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교회는 예수님께서 반드시 붙들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일곱 금 촛대란 구약의 성전에 있는 등잔대입니다. 한 금덩어리를 쳐서 가지가 일곱 개가 있게 하여 그곳에 등잔불을 올립니다. 그러므로 일 곱 별이란 일곱 교회 사자를 말하고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해석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일곱 교회란 이해가 되는데 일곱별이 일곱 교회의 사자라는 이 사자가 누구냐는 것에 여러 가지 말이 많습니다. 일곱 사자란 헬라어 성경이나 영어 성경으로는 천사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여호와의 사자라고 하면 천사도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오른손으로 붙들고 계신다고 할 때에는 천사를 붙들고 계신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오른손으로 붙들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18:35). 구원도 주의 오른손으로 이루십니다(44:3). 주의 백성이 어디를 가든지 주의 오른손이 붙드십니다(139:10).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합니다(41:10). 사도행전 2:3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예수님을 높이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2:6). 그러므로 주께서 붙드시는 사자는 천사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2:14~18절입니다.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4)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예수님께서 붙들어주는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 곧 믿음의 사람을 말합니다.

 

앞으로 볼 요한 계시록 2장에서 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고 하는 것도 천사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편지를 받아 읽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바울사도가 복음을 전하여 예수 믿는 자들이 나오면 그들 가운데 장로를 세우고 떠납니다. 그 장로가 사도들의 편지를 받아 읽어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른 손으로 붙들고 계시는 것은 교회라고 보면 됩니다. 장로도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는 예수님께서 오른손으로 붙들고 계시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머리시니 교회는 그의 몸이 됩니다.

 

골로새서 1:18~20절입니다.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산 자들을 자신의 몸으로 삼으시기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께서 자기 안식의 처소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산 백성들을 하나님의 처소로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있다고 하시면서 처소를 만들러 가신다고 합니다. 그 처소란 십자가를 지시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십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믿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또한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겁니다. 물론 이 역사 속에서는 성령이 임하여 보증하셨습니다. 이 역사가 마무리되는 그 영광의 날에는 보증이 실재가 됩니다.

 

이것을 이미 사도요한은 다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묵시적으로 완성된 일들이 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성경의 내용을 알고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교회라면 성경의 이 모든 말씀들을 눈에 보듯이 믿는 자들입니다. 노아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눈으로 보지 못하였지만 마치 눈에 보듯이 믿습니다.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이 불에 살라질 것도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은 성경의 말씀들을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 보고 들은 것과 같은 시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본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네가 보는 것을 기록하여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형으로 기록이 되어 있지만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묵시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미 완료가 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본 것 안에 장차 될 일도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가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기도하게 하십니다. 이미 하늘에서는 아버지의 뜻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 구분하고 있기에 그 구분을 보겠습니다. 첫째로 네가 본 것입니다. 사도요한이 본 것이 요한 계시록 전체이지만 구분을 하자면 본 것이란 요한 계시록 1장의 내용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본 이사야, 에스겔,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들이 본 그 여호와의 영광이 예수님의 영광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분이라고 합니다. 살아계시는데 그냥 살아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로 살아계십니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를 그 전능한 오른 손으로 붙들고 계십니다. 사도요한이 본 이런 내용에 오늘날도 감사와 감격이 있다면 그런 자들은 믿음이 있는 자들이며 복음으로 핍박을 받는 자들입니다.

 

두 번째 지금 있는 일이란 요한 계시록 2장과 3장의 일곱 교회를 돌보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하여 책망도 하시고 칭찬도 하시면서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성도는 교회를 향하여 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겁니다. 그것은 기록된 말씀을 읽을 때에 성령께서 깨닫게 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지금 있는 일이라는 것이 일곱 교회만 돌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일곱 교회를 돌보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로 사탄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승리하신 일도 지금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4:1~20:6절까지가 장차 있을 일이 아니라 지금 있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4:1절을 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여기서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이라고 하니 장차 있을 일로 봅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이 계시를 받는 시점에서 과거로 올라가 십자가의 완성을 보는 일이기에 마땅히 일어날 일이라고 하지만 십자가 이전 시점에서 십자가의 완성을 보기에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그 증거는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이미 하늘 보좌에 앉혀진 것이기에 지금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교회를 붙들고 계시는 것은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영광의 주님으로 계시기에 붙들고 계십니다.

 

세 번째로 장차 될 일이란 요한계시록 20:7~22:21절입니다. 이렇게 보면 천년 왕국이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까지가 천년왕국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도 전에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므로 예수님이 오심이 왕으로 통치하심의 시작입니다. 물론 결정적인 사건은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이 활동하시는 그 현장이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곳이기에 예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는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 있는 일이란 십자가로 승리하셨기에 일곱 교회에 다니시며 그 사자를 붙들고 계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 있는 일이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일곱 인을 떼실 때에 동시에 성령께서 일곱 나팔을 부신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일곱 대접을 쏟으심으로 심판과 구원이 십자가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 오른손으로 교회를 붙들고 계십니다. 단지 붙드시는 정도가 아니라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어 자기 백성을 다 찾게 되면 그때 재림으로 사탄을 무저갱에 영원히 가두어 버립니다(20:7~10). 이것이 장차 될 일이지만 이미 묵시적으로는 완료되었기에 이미 본 것 안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이렇게 엄청난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다면 안심이 되며 동시에 주님의 그 얼굴을 뵙기를 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