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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11~13 일용할 양식 2015. 4. 19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4)(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 말씀은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두 부분으로 나누어 말씀을 상고하려고 합니다. 먼저는 일용할 양식을 사전적인 뜻으로 매일의 양식에 대한 말씀으로 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양식입니다. 그 다음에는 생존의 양식이 아니라 생명의 양식에 대한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생존을 위한 양식이든지 생명을 위한 양식이든지  왜 일용할 양식만 필요합니까?

 

우찌무라 간조의 일일일생(一日一生)’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하루가 한 평생이라는 말입니다. 하루하루가 쌓여서 한 평생이 된다는 뜻도 되겠지만 사람의 생명의 단위가 하루라고 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은 매일 잠을 자야 합니다. 하루 단위의 마지막이 잠입니다. 그런데 이 잠은 죽음과 같습니다. 내가 어떤 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잠을 자면서 내일 아침에 일어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저녁에 잘 잤는데 아침에 영영 일어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루살이입니다.

 

욥기 4:17~20절입니다. “17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18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19 하물며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20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가 없으리라

 

욥이 나는 이런 고난을 당할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말에 대하여 엘리바스가 욥을 공격 하는 말입니다. 천사도 하나님 앞에 미련한 존재인데 어떻게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도 무너질 자이겠느냐고 합니다. 옛날에는 흙으로 된 집에 살았지만 인간 자신이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흙에서 나와 흙에서 난 것을 먹고 흙밥으로 돌아가는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하루살이 앞에서도 무너진다는 말이 아침과 저녁 곧 하루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는 인생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엘리바스가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욥이 의롭다 함을 받지만 그러나 연약한 인생을 아주 잘 표현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이런 인생임을 안다면 좀 홀가분해지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인생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사야 51:6절입니다.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하늘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면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는 다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하나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루살이 인생이기에 일용할 양식만 있어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반박하실 분들이 있습니까? 그런 분들은  너희가 안개라고 하신 야고보서 4:10절의 말씀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년 전에 이 본문을 설교한 내용을 인용합니다. 십계명이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이듯이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도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핵심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이것을 더욱 줄이면 서로사랑 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런 곳이 천국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받은 유대인들에게서 천국을 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지옥을 보게 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이 말씀을 이루어낼 수가 없다는 것을 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이루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이웃 사랑의 첫째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약 60억의 인구가 살고 있는데 이 중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어 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유엔에서 장 지글러라는 사람이 조사를 하였습니다. 지구에서 연간 120억 명이 먹고 남을 양식이 생산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금 지구 인구가 약 70억인데 충분히 먹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10만 명, 5초에 한명의 어린이가 굶어죽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 갈까요?

 

세계의 부가 누구의 손에 의하여 재편이 되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평화기구 설립에 20억 달러, 난민 정착 50억 달러, 영양실조와 기아퇴치에 190억 달러, 가난한 나라 부채 탕감에 300억 달러라고 합니다. 이것을 다 합하면 560억 달러입니다. 그런데 전 세계 군비지출액이 년 간 7.800억 달러라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금액의 10배가 훨씬 넘는 금액이 전쟁을 위한 비용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대한민국도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도 남북한과 강대국들의 탐심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은 일이 지금 지구상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루소라는 사람이 인간불평등의 기원에 대하여 논문을 썼는데 그 이유를 사유재산의 성립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유재산이 언제부터 성립하였는지는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근거를 설정할 수가 없고 여러 가지 추정을 하지만 지만 성경에서 보면 이미 아담의 범죄이후에 사유재산이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범죄 하기 전 에덴동산에서는 사유재산이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한 범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나서는 자기 생존을 자기가 책임져야 함으로 사유재산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인생들이 어떻게 일용할 양식만을 구하며 살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미 가인부터 자기를 보호할 성을 쌓고서는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라 에녹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성읍을 쌓았다는 것은 이미 자기의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여 살지 않고 스스로 신이 되려고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부터 모든 인간의 자기의 소유를 확보하여 지키고 더욱더 축적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인간의 삶에서는 경쟁과 시기와 질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게 하십니다. 자기의 소유와 소유의 근거지를 포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재산도 가지고 짐승 떼도 데리고 떠나지만 자신의 근거지를 떠나게 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게 하시면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잠시 있다가 지나갈 이 땅에 자기의 소유를 축적하여 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3-16절입니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아브라함 개인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로도 이런 나그네와 외국인의 경험을 하는 곳이 광야의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데 가는 길이 광야입니다. 물이 없고 양식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40년 동안 주리며 낮추게 하신 이유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훈련을 만나를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6:15-35절을 보시면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주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이 무엇이냐고 합니다. 그 말이 만나입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준 양식이라고 합니다. 한 사람에게 한 오멜씩, 2리터씩 거두게 합니다. 17-18절을 보시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하지 않게 한 사람당 한 오멜씩 즉 각 사람의 하루 분량이 된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가 말하기를 내일아침 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였습니까?

 

20절을 보시면 남겨둡니다. 그 결과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습니다. 내일 양식은 내일 주실 것을 믿었다면 남겨둘 필요가 없을 텐데 그런 믿음이 없으니 모세가 화를 내었습니다. 그리도 또 하나의 불순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 전에는 2일 분량을 거두어 안식일에 거두러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에는 만나가 상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만에 썩는 양식을 통하여서도 안식일에 썩지 아니함을 통하여 참된 안식은 우리의 썩을 양식을 위한 노력으로는 결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썩는 양식 밖에 구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무엇이 우리가 구하여야 할 생명의 양식인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24~34절입니다. “봉독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지만 도저히 실천 불가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김 수가 없습니다. 돈이냐? 하나님이냐? 쟈크 엘륄의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만 우리가 하나님보다 돈을 섬기는 이유는 내가 나를 살려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이 이방인의 삶이라고 하시면서 그런 것을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처럼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그런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자녀라면 썩을 양식을 구하지 말고 썩지 아니할 양식을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이 과연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6:7~9절입니다.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말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지 하나님을 위하여 많이 바치면 많이 거둔다고 합니다. 그 거둔다고 하는 것이 썩는 것입니까? 영원한 생명입니까? 스스로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은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둘 뿐입니다. 이 땅의 최고의 부자라는 사람이 무엇을 심어 무엇을 거두고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심는다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일하십니다. 그런 자들의 결국은 영원한 생명을 거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성도에게 일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런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사도행전 4:32~35절입니다.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성령이 임하고 나니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합니다. 서로 통용하고 나누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자기의 소유를 일용할 양식으로 족하지 않고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축적하려고 하던 자들이 성령이 충만함으로 자기의 소유를 자기의 것이라고 하는 자가 하나도 없더라고 합니다. 우리도 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시면 적신으로 온 인생이 적신으로 가는 줄 알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게 되는데 그것은 썩을 양식이 아니라는 영생의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구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4:30~34절입니다.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실 때에 제자들이 음식을 구하여 와서 잡수시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자신이 먹을 양식이 있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누가 음식을 드렸는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양식이 아버지께서 보내신 그 뜻을 행하는 것이 예수님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양식이 무엇인지 이어지는 말씀을 봅니다.

 

35~38절입니다.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예수님의 양식은 아버지께서 구원하라고 맡겨주신 자들을 다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26~29절입니다.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예수님께서 하실 일용할 양식은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이며 그 일은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맡긴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썩지 아니할 영생을 얻는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기에 또 표적을 구합니다.

 

30~36절입니다.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만나를 먹은 자도 다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는데 그 떡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자들이 그 떡을 달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의 떡이기에 예수님께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며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는 가게 됩니까?

 

37~40절입니다.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예수님께서 구하신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자신의 살과 피를 주셔서 살려내십니다. 그러면 성도는 구하여야할 일용할 양식이 무엇이겠습니까?

 

마태복음 20:28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예수님의 살과 피 입니다. 예수님은 내 말이 곧 영이라고 하십니다(6:63).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았다면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날마다 사모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고 모인 자들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른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날마다 그 머리로부터 공급되는 말씀을 먹어야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라는 그 자체를 유지 발전시키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가 잘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잘 되어야 한다는 말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일반적인 가게나 회사가 잘 되어야 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그런 세상의 잘 됨을 보여주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가 이 세상의 어떤 단체도 보여줄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구제나 봉사나 착하게 사는 것은 어느 단체라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가 아니면 하루도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개성을 드러내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한 세상의 가치와 판단들이 말씀의 검에 의하여 배어지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과 판단들이 말씀 앞에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썩을 양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고 그 분만을 더 원하는 자들이 교회입니다. 그분을 먹고 마시는 것이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용할 양식으로 우리에게 한량없이 공급되고 있습니다. 이 양식은 우리가 애쓰고 노력하여 얻는 양식이 아닙니다. 값없이 은혜로 주어지는 양식입니다.

 

이사야 55:1~3절입니다. “1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 먹는 것은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대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생명의 양식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주를 바라본 것입니다. 그 확실한 은혜가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 것이 복음입니다.

 

요한계시록 22:17절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먹을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용할 양식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날마다 양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