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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9-15 송영(頌詠)과 아멘 2015. 5. 17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주님 가르치신 기도의 마지막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이 부분이 괄호로 되어 있습니다. 괄호로 되어 있는 부분은 어떤 사본에는 있는데 어떤 사본에는 없는 경우에 이렇게 표시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헬라어 성경은 이 괄호부분이 없습니다. 성경의 원본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본으로 내려온 것이기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찬송가 앞에 주기도문에는 대개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 왜 성경에 없는 대개라는 말을 넣었느냐고 제가 전도사 때 나이 많은 권사님이 물었습니다. 성경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어야 하고 요한계시록에서 더하거나 빼면 안 된다고 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런 고민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하는 관심도 없는 시대라고 봅니다.

 

그러면 그 권사님이 질문한 배경이 어떤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유교는 항상 원전을 중요시 합니다. 사서오경을 말하고 어느 학자의 어느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권위로 삼기에 공자 왈() 맹자 왈 한 것입니다. ()이란 말하되’ ‘가라사대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없습니다만 전에 성경은 가라사대가 많았습니다. 한글개역에서 가라사대는 777회나 나옵니다. 한글개역개정에서는 가라사대를 이르시되로 바꾸었습니다. 이러한 한국의 상황에서 설교를 하면 항상 성경 어디 어디에 이런 말씀이 있다는 식으로 설교합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인들의 열심을 내게 하려고 성경을 인용한 것입니다. 요즈음도 어떤 목사의 설교를 들어보니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이렇게 기록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만 복을 받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율법의 조문을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하여 글자 하나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좋습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조문으로 전하게 되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3:6절입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로마서 7장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율법은 죽은 남편으로 비유합니다. 남편이 있는데 다른데 시집을 가면 간음하는 것이지만 남편이 죽었을 때 재혼을 해도 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기에 이제 새로운 남편인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일꾼이 하는 영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대게라는 한 단어의 유무를 가지고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성경의 문자를 율법 조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영으로 해석을 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시고 자기 백성에서 선물로 넘겨주셨다는 것이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살펴본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이 땅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하늘은 땅의 개념을 초월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도달할 수 없는 곳의 아버지이기에 이 아버지는 자기를 계시하여 주시지 않으면 결코 알 수가 없는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를 나타내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14:9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그래도 제자들이 못 알아듣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심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

 

로마서 8:15-17절입니다.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하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좋은데 고난이 옵니까? 이 세상의 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아버지라서 그렇습니다(8:44). 여기에서 분리가 일어나기에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둘째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원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시는 것이 자기 백성의 구원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도 송영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앞의 송영 뒤의 송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보아도 무관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아끼시고 자기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신 결과가 에스겔 36장에서 나온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더럽힌 자기 이름을 아끼고 거룩하게 하셨기에 그들을 구원하여 내심으로 자기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우리의 영광이 아닌 철저하게 하나님의 자기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 구원입니다.

 

셋째로, 나라가 임하기를 청원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나라의 번영과 영원을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자기의 나라가 다 있습니다. 넓게는 국가이고 더 넓게는 인류이기도 합니다. 작게는 자기 가정도 자기의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들로 가득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과 사상들을 다 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런 기도를 할 수가 없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나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데 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 자체가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이루어내시기 위한 기도임을 보게 됩니다.

 

넷째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청원합니다. 하늘에서는 아버지의 뜻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묵시적인 면에서는 이미 창세전에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로 앞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한 내용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이 땅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성경이 예언하였고 이 역사가 성경의 예언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땅도 결국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보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단지 하루하루 먹고살 양식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을 예수님은 자신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만이 참된 일용할 양식으로 사셨습니다. 우리는 다 썩는 양식이 일용할 양식으로 알고 있지만 예수님은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일이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양식을 위하여 사셨고 그 양식을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살과 피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이 세상에서 날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살아야 함을 아는 자들입니다.

 

여섯째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실 것에 대한 기도입니다. 죄란 빚이라는 단어와 바꾸어 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우리가 갚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희생을 근거로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죄가 용서 받은 자들은 자기들의 죄가 오직 예수님으로 인하여 용서 받았음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의 빚을 갚아 달라고 하는 것은 성도만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가 임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며 이런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와 이웃에게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죄의 빚에 대한 탕감의 기쁜 소식이 주님의 기도안 에 있습니다.

 

일곱째로,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함께 요약합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 이후에 태어났기에 이미 시험 안에 살고 있고 악한 자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고 악에서 구하여 달라는 기도가 세상의 시험과 세상의 악속에 더 깊숙이 뿌리내리고 살려고 하는 기도가 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육식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구한다는 것은 아직 그 사람이 시험과 악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이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구하여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죄인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예수님께서 이 모든 기도를 다 이루시고 자기 백성에게 선물로 넘겨주셔야 이런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예수님께서 이런 기도를 다 이루시고 우리에게도 적용하실 텐데 기도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지금까지 자기가 기도한 것입니다. 자기가 기도한 내용도 성경에서 구하라는 것은 구하지 않고 구하지 말라고 한 것은 구하여왔기에 그런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이제부터 묵상하면서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런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지 알게 됩니다. 이런 기도를 통하여서도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에스겔 36:36-38절입니다. “36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38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는 내용에서 본 말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모든 일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기에 이루어내실 것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기도 안하면 이루어지지 않아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아니지요! 이미 말씀하셨으니 이루어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기도하라고 하십니까? 기도하면 여호와께서 이루어주시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자기의 기도시간이나 며칠 금식이나 눈물콧물 흘린 것이나 목이 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의 이름을 더럽혔지만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것을 더욱 깊게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송영부분을 이렇게도 볼 수가 있습니다. 모든 청원을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찬양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도 주님이 이루어내실 일이지만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님의 기도를 주님이 이루어내신다는 것을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은 송영의 마무리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우리가 우리의 욕심을 잔뜩 청하여 놓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기만 하면 주신다고 하는 그런 예수님의 이름과 아멘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아멘하면 다 이루어주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런데 정욕을 위하여 잘못 구하면 응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정욕이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가정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기도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 안에 이미 내가 중심이 되어 있기에 탐심과 정욕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과 뜻과 정신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가 역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은 예수님이 이루십니다. 아멘이란 믿음, 진리, 확신, 확고부동, 신뢰 등을 가르치는 어근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는 청원과 기도이기도 하지만 찬송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에서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신명기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을 지어다고 하면 아멘으로 화답하고 불순종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지어다고 하면 역시 아멘으로 화답을 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축복과 저주의 선포에 다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요한계시록 3:14절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예수님이 아멘이시라고 합니다. 아멘이라는 단어에 정관사를 붙여서 그 아멘이라는 말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아멘이시며 그 아멘 되신 분이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라는 말과 연결되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과 연결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모든 언약을 다 완성하실 신실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송영 부분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부분에서 항상 아멘이 나옵니다. 이런 곳을 몇 곳 찾아봅니다.

로마서 9:5절입니다.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예수님께서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서 11:36절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여기서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태초에 말씀이계셨고 그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온 우주 만물을 그리스도로 통일되게 하시며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사람은 온 우주 만물의 주님의 주님 되심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유일하게 아는 곳이 교회입니다.

 

로마서 16:27절입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세세 무궁하도록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제쳐두고 따로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란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돌려집니다. 그 일에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마지막 그 영광의 날에는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6:16절입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디모데 후서 4:17-18절을 봅니다.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바울사도가 모든 사역은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는 그분께 영광을 세세토록 돌리는 것입니다.

 

끝으로 고린도후서 1:20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도 예수님 안에서 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우리가 아멘!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천지창조를 자기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루어내셨다는 이 말씀에 아멘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러한 아멘의 은혜가 우리에게도 넘쳐 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