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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22~24 눈이 성하면 2015. 6. 7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지난주에 본 말씀에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다고 하였습니까? 우리가 보물이라고 여기는 것에 우리의 마음이 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보물이 땅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마음이 땅에 있습니다. 우리의 보물이 하늘에 있다면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난주 본 말씀에서 우리는 질그릇이고 그 보배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보았습니다. 질그릇인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면 우리가 보배를 담은 자들이 됩니다. 이러한 보배가 담긴 자들을 하나님의 집 곧 성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보배가 있습니까?

 

로마서 6:6~9절입니다.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육신의 생각이란 로마서 7장에서 말씀하는 율법으로 의에 이르고자 하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있는 자를 해방시키시고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야 영에 속한 자가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의 의가 없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의 보물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의 보물이라고 하는 것들이 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보물임을 믿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알고 믿는 것은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눈이 연결됩니다.

 

오늘 본문 22~23절을 봅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우리의 눈은 몸의 등불과 같은 역할입니다. 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캄캄합니다. 그러므로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은 것이고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더하겠느냐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빛이 어둡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어둠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 마음에 빛이 없다면 눈이 어두운 몸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가는 것처럼 우리의 눈도 무엇이 보물인지 분별을 하지 못하면 그 눈이 어두운 자가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3장의 선악과 이후의 모든 인간들이 다 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 먹고 나니 눈이 밝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두워진 것입니다. 그 결과 피조물 주제에 선악의 주체가 되어 자기중심적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진리와 비 진리를 판단하고 아름다움과 추함을 판단하며 사는 것 자체가 이미 눈이 어두운 것이며 마음에 빛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인간들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빛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스스로 빛이나 생명을 찾아온다면 그 빛이나 생명이라는 것이 가짜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미 에덴동산에 천사들이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지키게 하여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아 버렸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구약을 통하여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받았지만 율법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율법의 의를 세우는 자들이 바로 앞에서 살펴본 로마서의 말씀대로 육신에 속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맹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된 것은 자기들의 의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의로 인하여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눈이 어두운 상태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이미 선지자를 통하여 다 알려주셨습니다.

 

이사야 6:9~13절입니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서 고백하는 말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입술이 부정한 자 중에 거하는 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뵈었으니 죽었다고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천사가 제단 숯불을 그 입에 대면서 죄가 정하여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실 때에 이사야 선지자 응답합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가가 가서 할 일이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고 합니다. 눈이 감기고 귀가 막히는 것과 마음이 둔하게 되는 것이 연결됩니다. 오늘 본문과 지난주의 말씀대로 마음과 눈이 다 연결됩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가 언제까지 그렇게 되느냐고 묻자 다 심판하시고 십분의 일이 남아도 그것마저 베이고 나서 거룩한 그루터기만 남기신다고 합니다. 그 거룩한 그루터기로 다시 시작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 심판당하고 남은 그루터기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눈이 없다는 것이 구약 성경 전체의 증거입니다.

 

이사야 43:8절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지난주에 내 백성을 보배로 여기신다는 말씀을 볼 때에 이 말씀 바로 앞의 부분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보배롭게 여겨서 속량하여 내시는데 이 백성들의 상태가 어떻습니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임을 확실하게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상태가 어떠한지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봅니다.

 

예레미야 5:20~31절입니다. “20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21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23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26 내 백성 가운데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꾼이 매복함 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27 새장에 새들이 가득함 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번창하고 거부가 되어 28 살지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판결하지 아니하니 29 내가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 같은 나라에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0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이것이 볼 눈이 없고 들을 귀가 없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볼 눈이 없고 들을 귀가 없기에 선지자들이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이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는데도 백성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처럼 이들이 심판을 당하고 거룩한 그루터기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들을 귀가 없고 볼 눈이 없는지를 예수님께서 다 드러내십니다. 이들이 볼 눈이 없고 들을 귀가 없었기에 발생한 사건이 십자가입니다.

 

마태복음 13:10~17절입니다.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이사야 예언의 성취를 말씀하십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되는 때가 거룩한 그루터기만 남게 되는 때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완성이면서 새로운 신약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결코 제자들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게 하시고 듣게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을 보고 듣는 것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제자들조차 십자가에서 다 도망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홀로 하나님의 언약을 십자가로 완성하시고 나서 자기 백성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십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의 빛임을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1~5절입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이신 하나님 안에 생명과 빛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의 빛이 비추었지만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봅니다.

 

요한복음 3:16~21절입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사람들이 요한복음 3:16절만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보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을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음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 심판 곧 정죄는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의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악하여 어둠을 사랑하였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윤리도덕적인 그런 어두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의가 있기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싫어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행위가 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빛으로 오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하는 자들에게 정죄를 받은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빛으로 오는 것은 그렇게 나아오는 것이 그들의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임을 증거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9:39~41절입니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쳐주신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로 인하여 유대사회에 일대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는 그 죄가 자기 죄인지 부모의 죄인지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침을 뱉은 진흙을 그 소경의 눈에 이겨 바르시고는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였더니 소경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경은 눈을 뜨게 해주신 분이 아직 누구신지도 모릅니다. 이 일로 인하여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소경의 부모까지 소환하여 확인을 합니다. 나중에 눈 뜬 소경에게 다시 묻습니다. 그러자 이 소경이 당신들도 그를 믿으려고 하느냐고 하자 이들이 화가 나서 자신들은 모세의 제자라고 하면서 모세에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이때 소경이었다가 눈뜬 사람의 말을 들어봅시다.

 

요한복음 9:30~34절입니다.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있습니까?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자가 날 때부터 본다고 하면서 그 중에 자신들은 의롭다 여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들이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이 사람을 쫓아 내어버립니다. 쫓겨난 그 사람을 예수님께서 만나시고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합니다. 그가 누구인지 믿고자 한다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와 말하는 자가 그라고 하시자 그가 믿게 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보지 못하는 자는 보게 하시고 본다고 하는 자들은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누구든지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는 것은 절대로 자기 능력과 실력이 아닙니다. 오직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는 예수님의 일하심으로만 눈을 뜨고 진리를 알고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이 열린 사람은 자기를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복음이 바울에게도 임합니다. 자신의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한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서서는 자신의 눈에 모세의 수건이 비늘처럼 덮어져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비늘이 벗겨지자 모든 구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울만이 아니라 모든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인간들이 다 장님이었기에 그 영광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디든지 이 십자가를 근거로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

 

사도행전 17:30~31절입니다.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지나간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지만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회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정죄를 당하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데 믿는 자도 있고 믿지 않는 자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사도행전 28:23~28절입니다.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이것이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결말입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였습니다. 여기에 바울의 말을 듣기 위하여 온 자들은 주로 유대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복음을 듣고 믿는 자도 있고 믿지 않는 자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게 하였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들리고 믿어지는 사람은 결코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자기 백성들에게 일방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게 됩니다.

 

이렇게 믿게 되는 자들의 눈이 성한 눈이며 온전한 눈입니다.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은 이제 무엇을 섬겨야 할지를 아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온전한 눈이 되어야 하나님을 섬길지 돈을 섬길지 구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24절의 말씀을 다음 주에 다시 보겠습니다만 우리가 믿는 것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입니까? 돈입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믿으면 세상에서 부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을 잘 섬기면 부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부자가 되는 것이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들이며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3~7절입니다.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임을 믿게 되는 것은 오직 주님의 창조의 능력입니다.

 

본문 24절의 말씀을 함께 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갑니까? 하나님입니까? 재물입니까? 우리의 눈이 무엇을 봅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입니까? 돈입니까?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이 사실을 알고 믿게 되는 자가 눈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부디 우리의 눈들이 온전하여져서 재물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하나님이심이 밝히 보여 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