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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24~34 하나님이냐 돈이냐 2015. 6. 14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6:19~34절까지가 최소한의 한 단락입니다. 19~24절까지의 말씀을 네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성한 눈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우리의 마음이 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보물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면 하늘을 생각할 것이지만 우리의 보물이 땅에 있다고 생각하면 땅의 일을 생각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란 눈과 연결이 됩니다. 우리의 눈이 밝으면 몸이 밝듯이 우리의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얼마나 어둡겠느냐는 말씀은 우리의 영적인 눈이 어둡기에 참된 보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썩어지고 불타 없어질 것들을 보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눈이 어두워져 있다면 반드시 돈을 섬기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이 하나님이냐 돈이냐는 제목입니다. 이 제목은 대장간 출판사에 나온 자크 엘륄의 책제목과도 같습니다. 마태복음 6:19~34절 전체가 하나님이냐 돈이냐는 제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음과 눈이 어두운 자는 돈이 보물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과 눈이 밝아진 자들은 하나님이 보물이 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거듭난 사람은 하늘에 있는 보물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거듭남이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땅의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위엣 것을 구하게 됩니다. 그 위엣 것이 무엇인지 먼저 말씀을 보겠습니다.

 

골로새서 3:1~7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7절 말씀을 보시면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있었다고 합니다. 즉 땅에 속하여 하나님의 진노만 쌓았던 인생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땅의 생각만 하고 자기를 신으로 섬기는 탐심이라는 우상숭배 자였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위에 것이 무엇인지 보물이 무엇인지 아는 자들입니다. 위에 속한 참된 보물이란 그리스도입니다.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란 이 세상에서 죽임 당한 것이며 그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 때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함께 받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리심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말씀들이 전혀 마음에 와 닿지를 않을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보고 들어도 그 마음의 생각이라는 것이 땅의 것만 향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이 원래의 뜻대로 읽혀지고 들려지는 것은 다시 살리심을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지식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능의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어떤 조건이나 이해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때가 되어 복음이 들리게 하시고 믿게 하셔야 됩니다.

 

창세기 1:29~30절입니다.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금요일 성경공부를 하면서 사람과 짐승의 차이를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은 씨 맺는 열매와 씨가진 채소가 사람의 먹을거리입니다. 짐승은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신다고 합니다. 짐승과 새들도 씨가진 열매와 채소와 씨 맺는 풀들을 먹이로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짐승들의 먹이에는 씨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이것이 사람과 짐승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이제 자기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생명나무의 열매로 가는 갈이 차단이 되었습니다. 생명에서 끊어진 인생들은 자신이 자신을 살려야 합니다. 그래서 농사를 지어야 하고 양식을 비축해야만 합니다. 이런 인생들의 삶을 창세기 6장에서 육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육체란 자기들의 마음에 좋아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은혜를 입은 자는 말씀대로 방주를 예비하면서 살아가는데 다른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만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도 노아의 때와 같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말씀의 씨에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23~25절입니다.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창세기 1장에서 사람은 씨가진 열매와 씨가진 채소를 먹으라고 하신 이유는 식물의 씨앗의 유무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합니다. 짐승은 말씀으로 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말씀으로 살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짐승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가 아니라 썩지 아니할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 말씀이 곧 복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눈이 성한지에 대한 설명을 위하여 골로새서와 창세기와 베드로전서 까지 보았습니다. 우리가 거듭났다면 생명의 말씀을, 그 씨를, 그 복음을 우리가 받았다면 반드시 위엣 것을 찾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땅에서 경험하는 바는 예수님보다 언제나 돈이 우선이라는 사실입니다. 말은 하나님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심지어 하나님을 잘 섬기면 부자 된다고 하는 말도 결국 하나님보다 돈을 섬기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재물이란 인간의 모든 가치를 다 포함합니다.

 

본문 24절을 다시 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아담의 타락 이후의 인간은 어느 누구도 스스로 힘과 능력으로 돈을 사랑하지 아니할 인간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자신을 살려야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여도 그들의 속은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말씀하신 이후에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리새인들이 돈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입니까? 돈입니까? 언제부터 인간이 돈을 섬기게 되었습니까?

 

예레미야 2:13절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수십 번도 더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선악과 이후의 모든 인간들은 생수의 근원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웅덩이를 파야 하는데 그 웅덩이가 물을 가주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돈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버린 결과입니다. 그래서 재물로 자신을 살리려고 얼마나 많이 애를 씁니까? 그런데 아무리 모아도 자족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채워도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을 봅니다. “봉독 그러므로19절부터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더 줄이면 24절의 말씀을 연결하여 그러므로입니다.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데 믿음의 사람이라면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목숨이나 몸이 먹는 것과 입는 것보다 중하다고 합니다. 목숨과 몸이라는 말씀은 인간의 전인을 말합니다. 사람이 먹고 입는 것은 사람의 목숨을 위하여 먹고 입습니다. 그런데 먹고 입는 것이 목숨보다 귀하게 여겨진다면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고 죽이는 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만들어내는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아무리 먹을 것을 준비하고 입을 것을 준비하여도 나의 목숨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2:13~21절입니다.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유산 분배를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재산을 형이 가로챈 모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런 일 하려고 오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탐심을 물리치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 정당한 유산분배를 요청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듣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을 위하여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다 준비하여 두고 내 영혼아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네 영혼을 오늘밤 도로 찾으면 이 모든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목숨은 자기 것이 아님에도 그 목숨을 위하여 재물을 준비하는데 정작 그 목숨의 주인이 누구신지에는 전혀 관심 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입니다.

 

본문 26~30절을 봅니다. “봉독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시면서 자기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염려 없이 살아갈 수 있느냐고 하는 오늘 우리들의 마음을 아시기에 염려 없이 살아가는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십니다. 공중의 새는 심지도 거두지도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지만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들보다 귀하지 않느냐고 하십니다. 들에 피는 백합화를 보라고 합니다. 평행 단어는 들풀입니다. 들풀의 꽃 한 송이도 수고도 안하고 길쌈도 안하지만 모든 영광으로 입은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낫다고 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늘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믿음이 있습니까?

 

디모데전서 6:3~10절입니다.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않으면 경건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보신대로 구제와 기도와 금식도 자기들의 이익의 재료로 삼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자족하는 마음이 있어야 경건의 유익이 된다고 하십니다. 자족이란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것이 자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신다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인생임을 제대로 알고 먹고 입을 것이 있는 것으로 족한 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없기에 우리는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부자의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고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잘 섬기면 부자가 된다고 한다면 사람으로 멸망에 빠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왜 인간이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창세기부터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 곳 더 봅니다.

 

디모데후서 3:1~5절입니다.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오늘날처럼 돈을 사랑하는 시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메르스 전염병보다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더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말세의 고통 하는 때가 지금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고 항변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거듭난 사람이라면 이런 자리에서 돌아서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돌아설 능력이 우리에게 없기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아서게 만드십니다.

 

누가복음 18:18~30절입니다. “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본문의 이 사람은 재물의 부자만이 아니라 자기 의에 대하여서도 부자입니다. 유법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 가지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면 하늘에 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 평행구절에서는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자기 의로서도 부자이고 재물도 부자입니다. 그런데 그 자기의 부로서는 단 한명의 가난한 자도 구제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참된 구제란 복음을 전하여야 하는데 이 부자 관원은 자기 의로도 재물로도 어떤 구제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재물이 많은 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깜짝 놀라면서 저런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들어가느냐고 묻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신다고 합니다. 사람은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자기의 어떠한 율법적이 의로서도 자기의 선행이나 구제나 금식으로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우리는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과연 끝까지 주님을 따릅니까?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갔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의 말씀까지 봐야합니다.

 

누가복음 18:31~34절입니다.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예루살렘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올라가지만 전혀 다른 목적으로 가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임금이 되면 한자리 하려고 자기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하여서는 하나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가서 전에 버린 것을 다시 취하여 고기잡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들을 다시 찾아오시고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시자 이들이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셔서 주의 제자 된 자들은 이제 자기를 의지할 그 무엇도 없게 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할 수밖에 없는 자들로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해서 염려하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게는 염려조차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내시고야 마시겠다는 자기 약속을 이루어내십니다. 그러므로 다음의 말씀은 우리보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이런 자들로 만들어내시겠다는 예수님의 자기 의지입니다.

 

본문 31~34절입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하는 염려들은 이방인이나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자기 백성에게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로 완성하시고 그 완성된 의를 선물로 주시면 우리의 삶에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내십니다. 그 일에 부름을 받았기에 성도의 삶이란 녹록치 않은 것입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것인지를 우리의 삶에서 확인시키시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내일 일을 내가 염려한다는 것은 아직도 자기의 능력이 어느 정도 있기에 염려합니다. 정말 아무 능력도 없으면 염려할 것도 없게 됩니다. 이렇게 가난한 심령을 만들어서 그 나라와 그 의만 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