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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6 진주와 돼지 2015. 6. 28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잠언서 11:22절입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요즈음 아가씨들은 코에도 고리나 피어 싱을 하고 다닙니다. 그것이 아름다운지 아닌지 취향 따라 다르지만 돼지 코에 금 고리는 어울립니까? 전혀 아니지요! 돼지는 삼겹살이나 수육이나 국밥이나 순대와 어울리는 단어이지 금 고리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돼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않으면 돼지 코에 금 고리와 같다고 합니다. 여기서 삼간다고 하는 것은 분별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분별하지 않으면 돼지 코에 금고리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교회를 신부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분별력이 없다면 개와 돼지와 마찬가지가 됩니다. 오늘날 교회라고 이름 하는 곳에서 거룩한 것과 진주를 알아봅니까?

 

본문의 말씀을 봅니다. 거룩한 것을 개 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거룩한 것과 진주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하려고 오셨습니다. 천국복음이 거룩한 것이며 진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신 이후에 예수님 자신이 천국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전한 거룩한 것과 진주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개와 돼지에게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와 돼지는 무엇입니까? 사람입니다. 복음을 배척하는 자들이 개와 돼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천국 복음을 완성하시는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갔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도 개와 돼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시편 49:6~13절입니다.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7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9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10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11 그러나 그들의 속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3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 (셀라)”

 

1절부터 보시면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다 들으라고 합니다. 자기 재물을 의지하고 부요함을 자랑하는 자는 아무도 자기 형제를 구원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자기의 재물과 자기의 의로움과 선행들을 자기의 부요함으로 자랑합니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그가 죽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은 자도 죽습니다. 재물을 가지고 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런데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면서 살아갑니까?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를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등기등본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자가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시편 73:20~28절입니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편 73편은 종종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악인의 형통에 대하여 시기와 질투가 일어났습니다. 자신은 경건하고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종일 재난만 당합니다. 그런데 악인은 범사가 형통하고 죽을 때 고통도 없이 죽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지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고민하다가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악인들은 영원한 멸망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바로 깨달았습니다. 짐승이 아닌 자는 무엇으로 기뻐합니까? 자신의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자신의 영원한 기업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하늘과 땅에서 사모할 분은 주님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인 줄 아는 자가 짐승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7:1~5절입니다.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지난주에 본 말씀입니다만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도 포합됩니다. 세상의 윤리와 도덕이라는 기준으로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자들도 다 포함이 됩니다. 이러한 비판과 정죄를 하는 그들이 거룩한 것과 진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 진주를 발로 밟고 그 진주 주신 분도 해친 것입니다.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한 자들이 참으로 예수님을 헤친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합동으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제자들은 그 십자가 앞에서 도망갔습니다. 개와 돼지가 거룩한 것과 진주를 모르듯이 개와 돼지와 같은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로마서 5:1~10절입니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다고 합니다. 이 소망과 사랑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게 됩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 내는 것을 압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개와 돼지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진 자는 자신이 개와 돼지와 같은 자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짐승 같은 자를 살리시기 위하여 참된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통에 오신 것을 믿게 됩니다.

 

잠언 30:1~5절입니다. “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아굴은 지혜를 말하는 사람이지만 자신은 다른 사람에 비하면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무엇을 질문하고 있습니까?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라고 합니다. 잠언의 지혜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신약에 나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그 사람은 짐승과 다름이 없이 살게 됩니다.

 

전도서 3:18~21절입니다. “18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19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 인생들의 1)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1)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짐승과 사람의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흙에서 나와 흙의 것을 먹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일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짐승 같은 인간이 위로부터 다시 살리심을 받으면 땅의 것이 아니라 위엣 것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교회도 다닌다고 하는데 그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땅의 일만 생각하며 산다면 그 사람은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 누가 알겠느냐고 합니다. 여기서 혼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영입니다. 혼이라는 단어는 적게 쓰입니다. 그런데 짐승을 영이라고 하기에 거북하여 혼이라고 한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인생들도 땅에서 나와 땅의 것만 먹고 땅의 것만 생각하다가 땅으로 돌아가면 그것이 짐승입니다.

 

골로새서 3:1~5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다시 살리심은 받은 자라면 시민권이 하늘에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게 됩니다.

 

마태복음 15:21~28절입니다.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크다고 칭찬한 여인이 가나안 여인입니다. 그런데 율법으로 의롭다고 여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시며 진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알아보는 자는 율법의 의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 개같이 여기는 가나안 여인입니다. 자기들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은 세리와 죄인과 창기와 이방인들을 개같이 여깁니다. 그런데 이렇게 의롭다는 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에 의하여 정죄당하고 비판받고 비난 받는 이 여인을 예수님을 거룩하신 분이시며 진주로 알아보았습니다. 율법을 지켜온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진주로 알지 못했는데 어떻게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자신을 개와 같다고 하였습니까? 은혜의 선물이라고 밖에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 개와 돼지와 같은 자들입니까? 자기 의를 가진 자들입니다.

 

세상이 시끄럽고 요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집안에 분란이 왜 일어납니까? 교회끼리 또는 교회 안에서도 왜 분란이 일어납니까? 모두가 자기들의 의의 기준을 따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전적으로 잘못했다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마지못해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만 내가 전적으로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선과 악의 판단을 자기중심으로 하는 모든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이 예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죽여 버린 것입니다. 거룩하신 것이 무엇이며 진주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한 것이 바로 개와 돼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저주 받아 죽은 분이 개와 돼지와 같은 나를 살리시기 위한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신 사건으로 알고 믿는 것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이 이 사실을 알고 믿게 됩니다. 이렇게 믿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하시고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을 보내심으로 알고 믿게 됩니다. 이렇게 알고 믿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오늘도 복음을 증거 하게 하십니다. 이 복음의 핵심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개와 돼지처럼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추구하고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세상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17~22절입니다.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베드로후서 2장은 거짓 선생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봄 수련회 때 유다서의 내용과 같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일반으로 얻은 구원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버리게 하려고 거짓 선생들이 유혹하는 것입니다. 모든 유혹과 미혹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홀로 십자가를 지셨고 자기 백성들의 모든 죄를 홀로 해결하신 것을 믿지 못하면 결국 사람들은 자기 행위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라는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거듭난 나 자신의 새로운 자기 행위를 붙들게 만든다면 이것이 바로 거짓 선생들의 미혹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을 개가 그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눕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잠언 26:11절입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미련한 자의 특징은 미련한 짓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얼마나 미련한지 아십니까? 말씀을 들을 때는 그렇지 우리는 전적인 죄인이고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돌아서서 밥 먹으로 가면서 예수님은 간 곳이 없습니다. 개와 돼지는 천성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선악체계와 인과율로 돌아가는 우리를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반찬이 맛이 없다거나 밥이 잘 못 되었다고 하면 밥한 사람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밥을 먹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또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안 해도 속으로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또 판단한 것을 알아서 나는 정말 개와 돼지 같이 토한 것을 먹고 씻었다가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 눕는 자임을 알면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개와 돼지라고 고백하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자신의 판단은 늘 옳은 판단이기에 그런 판단을 해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길로 가게 됩니다. 자신은 개와 돼지처럼 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2~29절입니다.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복음을 듣고 자유라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전에는 모임에 빠지면 벌 받을 까봐서 또는 복 받으려고 열심히 모이든 자들이 복음을 듣고 자유라고 하면서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서로 권하라고 합니다. 복음은 혼자 도 닦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부딪혀야 자신의 약함과 악함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리의 지식을 받은 후에 짐짓 죄를 범하면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단번에 이루신 영원한 속죄를 믿지 않는 것이 짐짓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더 이상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자들은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립니다. 이런 자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는데 하물며 모세가 증언한 메시아 곧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고 합니다. 마지막 심판의 기준이 이 말씀입니다. 거룩한 것과 진주를 알지 못하는 개와 돼지처럼 오늘날도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있습니다. 개와 돼지가 거룩한 것과 진주를 알지 못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 곧 그 아들의 언약의 피로 인하여 거룩함을 얻는다는 이것을 발로 밟는 행위가 개와 돼지가 진주를 발로 밟고 그 진주 준 자를 찢고 헤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개와 돼지와 같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살과 피 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의롭게 하는 참된 양식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