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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9-10 이름이 거룩히 2015. 3. 29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약 5년 전에 기도라는 주제설교를 하면서 한번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설교를 처음 듣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설교를 부분인용을 하면서 다른 곳의 말씀들을 더 추가하여서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주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있어서 아들이 아버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은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를 선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씨를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고 보니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범죄 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내가 죄인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태어나고 보니 죄인이더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여야만 자신이 죄인인줄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다닌다고 하여도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다닙니다. 이 죄란 권세이기에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혹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다고 하여도 그것은 자기들이 상상한 하나님이지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부른 하나님이 아님을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유대인들을 통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이 부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면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내신 일이며 그 이루어내신 일을 성령을 통하여 공급받아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면 이제부터 아빠가 생겼기에 아빠가 없는 고아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것은 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이 있어야 할 줄을 하나님이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는 내용은 우리보고 주문처럼 따라서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예수님의 뜻입니다.

 

5년 전 이 설교를 할 때에 예화를 드린 내용이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에서 하는 청지기 부흥회를 참석하였습니다. 뉴욕 순복음교회 목사입니다. 순복음교회 하면 얼마나 열심히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는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한 교회를 오랫동안 담임하다 보니 젊은 새댁이 손주를 보기까지 기도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전부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의 복을 구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 우리가 죽을 때에 사라지고 말 것들, 죽을 때에 의미 없는 것들에 대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였답니다. 성공과 번영을 위하여 기도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기도할 것이 없어서 가만히 있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祈禱)라는 말 자체가 빌 기자에 빌 도자입니다. 빌고 비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라면 빌어먹을 자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하번도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는 것을 말하면서 다음세대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선교단체들이 10/40에 복음을 전하는 타깃을 삼았습니다. 위도 상 10도에서 40도 사이에 가장 인구가 많고 복음이 적게 증거 되었다고 보고 집중을 하였는데 이 분은 북한을 몇 번에 걸쳐 갔다 오면서 어떻게 저런 체제가 오래 가는지를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북한 탁아소와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교육을 본 것입니다. 젖 때고부터 탁아소에 맡기고 부모의 손길은 조국통일에 이바지하게 만들면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교육시킵니까? 천지창조는 수령님께서 하셨고 나라는 장군님이 지키고 그들을 인도하는 것은 수령님의 영이 하신다고 합니다. 삼위일체죠! 탈북한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성경을 보다가 너무나 놀랐다고 합니다. 북한의 체제가 성경에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종교집단이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거짓말도 계속하여 들으면 거짓말도 사실로 믿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외부의 정보는 다 차단하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있으니 아시안 게임 때 장군님의 사진이 비에 맞는다고 웁니다.

 

이런 체제가 이슬람이며 가톨릭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세계를 보면서 교회가 아이들에게 집중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제는 10/40이 아니라 4/14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4세부터 14세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여러 나라에 유치원과 학교를 세우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그런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주님께서 이루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 안에 다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가르치신 이 기도도 주님께서 이루어내실 산상수훈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라고 불러놓고 무엇을 기도하도록 가르치신 것입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기도 제목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름은 어느 누구도 거룩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모든 인간이 죄 아래 갇혔기에 죄인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문둥병자가 성물을 손에 대면 부정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더럽힙니다. 모세와 이사야와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와 사도요한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죽은 자와 같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거듭났고 성령이 임하였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이름을 능동적으로 거룩하게 하여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땅의 티끌 주제에 어떻게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이런 기도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기도는 참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고 그 기도를 친히 십자가로 이루셔서 그 영을 자기 백성에서 넣어주시면 우리도 예수님의 그 기도 안에 포함에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성경에서 보겠습니다.

 

이사야 29:22~24절입니다.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이며 23 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24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이 말씀의 앞부분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나 그 마음은 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의 맹인이 되었고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렇게 혼미한 자들로 총명하게 되는 구원의 때가 올 것인데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의 행하신 일을 보고서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다고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다고 할 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입은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4:7~9절입니다. “7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8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당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 같이 하시나이까 9 어찌하여 놀란 자 같으시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우리의 죄가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런 뻔뻔한 기도를 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레미야 14:19~21절입니다. “19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 받기를 기다리나 두려움만 보나이다 20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21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자신들의 죄를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구원하여 달라고 하는 것은 주의 언약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자기 이름의 영광 곧 그 아들과의 영원한 언약을 이루어 내심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임을 그리스도 영으로 인하여 아는 자들이 구약의 선지자들입니다(벧전1:10,11).

 

에스겔 36:16~20절입니다. “16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7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행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18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 위에 쏟아 19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헤쳤더니 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이스라엘 백성이 한 짓은 거룩한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 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셔서 흩어 버리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고 하게 됩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 것이 됩니다.

 

21~23절입니다. “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가 있어서 소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일뿐이지만 하나님은 자기의 거룩한 이름을 아끼고 그 이름을 위하여 돌이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철저하게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한 것인지 우리의 이름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 이름에만 의미를 둡니다. 자기의 이름을 내자고 합니다. 말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하면서 그 영광을 돌리는 자신의 이름에 가치를 두려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이 예수를 죽인 자들이며 오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는 자들이 예수를 죽이는 자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은 하나님 자신이 자기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24~28절입니다.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이것이 새 언약입니다. 새 언약은 그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 새 언약을 다 이루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장소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자기 아들이 다 이루신 십자가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28~33절입니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29 곁에 서서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이 기도를 누가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천둥소리로 들린 것입니다. 또는 천사가 말했다고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 소리가 들린 것은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 사역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기 백성을 십자가로 끌어 올리십니다.

 

요한복음 17:1~5절입니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아버지가 영화롭게 되는 길은 하나님의 아들로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아들예수 그리스도가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그 일을 아들이 온전히 이루어 냄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고 다 찾아서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십자가로 이루어내십니다.

 

11~12절입니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아버지의 이름으로 자기 백성을 보전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24~26절입니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예수님을 사랑하시므로 예수님께 주신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하려고 구원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이름을 아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안다는 것은 그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십자가로 다 이루어 내신 것을 믿는 것이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이 기도가 예수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나올 수밖에 없는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의 거룩히 여김을 받는 길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일이 됩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의 영원한 언약을 십자가로 완성하시고 그 완성된 의를 자기 백성으로 성령으로 부어주시면 이들은 이제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한다는 것이 무언인지 알게 됩니다. 아버지의 뜻은 그 아들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아버지의 영광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5~11절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은 곧 아들의 이름이 영광을 받는 것이 아버지의 영광입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는 성도에게 지금도 계속하여 현재화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입증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일은 오늘날도 주의 영이 임하여 자신이 죄인 됨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의 이름을 믿는다는 우리가 스스로의 능력으로 성화를 이루어낼 수가 있다면 내가 성화될수록 예수님은 밀려나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성령의 도움을 말하지만 성령의 도움도 내가 주체가 되고 성령은 내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주는 식으로 말합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이름의 영광과 자기 거룩함으로 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16-19절에서 봅니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거룩함을 얻도록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진리로 거룩하게 됩니다. 진리란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대속하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영이 임하여 아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원한다는 이런 간구를 하는 자는 구원이 오직 주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알기에 지금도 주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이 됨을 인하여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제 더 이상 자기의 이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나의 이름은 세상에서 삭제되어 지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한 그 일 곧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언약을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거룩하게 하신 결과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제 자기 이름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10~13절입니다.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고린도 교회에 파당이 생긴 것은 누구에게서 세례를 받았느냐고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말을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누가 십자가를 졌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종교적인 슈퍼스타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종교와 달리 복음을 전한다는 곳에서도 나름대로 유명한 이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름들이 십자가 앞에서 다 삭제되어야 합니다.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하는 말로 바울사도는 깔끔하게 사람들의 이름들을 정리해 버립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