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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소서 5:18~21 성령으로 충만함(2편) 2013. 12. 1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기에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다고 해서 성령운동을 하거나 성령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그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내 말이 곧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이란 바로 말씀의 충만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는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의 결과가 말씀의 충만함의 결과가 동일한 말씀임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오늘은 성령이 임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8:14~17절을 봅니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성령이 임하시면 그리스도의 영이시기에 그리스도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신 분을 우리도 동일하게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자녀이기에 상속자가 됩니다. 그리스와 함께 한 상속자이기에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로 가는 것이 성령의 인도입니다.


이어지는 로마서 8:18~25절을 봅니다. “봉독” 성령이 임하시면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기에 탄식하지만 이렇게 탄식하는 것은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온 세상에서 탄식소리가 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탄식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신입니다. 이 세상의 신들이 탄식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세상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그 영광을 추구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한 자는 세상의 탄식소리를 들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탄식하며 양자 될 것 곰 몸의 속량을 기다리게 됩니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던 성령의 충만함과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가 평소에 들어온 성령의 충만함이란 기적과 초인적인 능력으로 보통 사람들이 이루어내지 못하는 일들을 이루어내는 그런 능력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려고 이곳저곳으로 쫓아다니기도 합니다. 정말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예수님처럼 십자기를 지는 것이며, 스데반 집사처럼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자 죽는 것이며, 바울처럼 죽도록 고생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결국 순교하는 길로 가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내가 주체가 되어서 성령을 도구화하여 자신의 능력으로 사용하려고 하면 이런 자들은 악령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9~12절입니다.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악한 자의 나타남이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들로 몰고 갑니다. 이런 모습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아 심판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는 것은 자신이 성령을 부리는 자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이 해체당하고 그리스도가 자신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고린도전서 12:1~3절입니다.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는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가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우상에게 끌려가는 삶을 인간들은 사탄에게 속아서 인간의 주체성이라고 말하며 자아의 실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자아(自我)란 한문의 글자를 풀어보면 스스로 자기의 손에 창을 들고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피조물인 주제에 스스로 있는 자라고 행세하면서 그것도 자신의 손에 창을 들고 자기를 해체하려고 하는 자들을 다 죽이겠다고 하는 것이 자아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자기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기 않으시고 동생의 제사만 받아주었다고 돌로 쳐 죽였습니다. 아벨은 이런 자의 손에 의하여 허무하게 죽어간 이름입니다. 아벨의 뜻이 허무한 것, 무익한 사람, 안개, 헛것이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가인의 후손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어 자기를 지키는 자로 나옵니다. 그래서 가인의 후손인 라멕은 자신에게 상해를 끼친 자를 죽이고서는 보복당할까 두려워서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이 7배 이지만 자신을 죽이는 자는 벌이 77배라고 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라멕의 모습이 자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자들이 자기를 살리기 위하여 남을 죽여야 하는 이런 세상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자들은 자기 죽음으로 남을 살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3:34절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아버지께 간구하기를 저들을 사하여 달라고 합니다.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기도로 인하여 누가 회개하게 됩니까? 두 강도 중의 한 사람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지만 그 사형을 집행하던 로마의 백부장이 십자가의 죽으심을 보고서 이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을 합니다(막15:39). 이뿐 아니라 예수님의 이 죽으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모든 자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다 이루심으로 인하여 의가 나왔습니다. 그 의를 성령을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시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습니다. 이런 자들이 성령을 받은 자들이지만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사도행전 7장에 보시면 스데반 집사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이었으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자들의 표적과 기사와 악한 자들의 기사와 표적은 구별해야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자들은 자기를 과시하기 위하여 능력을 나타내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악한 자들은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며 그런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자기의 종으로 삼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가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과 같은 말씀을 합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충만한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러한 성령으로 충만함을 달라고 구하시겠습니까? 다들 피하여 도망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이루어내실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루어내실까요?


우선 에베소서 2:18절입니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새사람으로 만들어서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아버지의 집에 가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간다는 것은 우리가 죽어서 천국 간다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아버지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아버지의 집이 되는 것입니까?


에베소서 2:22절입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가 아버지의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일이 다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바로 앞에서 본 예수님의 피로 한 새사람을 만들어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간다는 말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의 머리를 자기 백성들에게 두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전이 됩니다.


마태복음 8:19~22절입니다.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서기관이라면 유대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실 때에 예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을 다른 말씀과 연결시켜 보면 예수님의 머리를 두시는 곳이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그런데 건물 성전은 이미 도둑의 소굴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21절을 보시면 제자 중에 한 한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지내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시자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다 죽은 자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의 머리를 두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성전이 됩니다.


요한복음 19:30절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영혼이 떠나가신다는 헬라어 원어를 보면 그 영혼을 넘겨주셨다는 말입니다. 영혼이 떠났다는 것과 예수님께서 영혼을 넘겨주셨다는 것이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이 다 이루심인데 그 다 이루심으로 넘겨주시는 것이 바로 그의 영혼을 넘겨주십니다. 헬라어로 영혼을 ‘프뉴마’라고 합니다. 이는 영, 성령, 말씀으로 번역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으로 자기의 영을 넘겨주시는 그 사람이 성전이며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입니다(엡1:22)


다시 에베소서 2:22절을 봅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는 우리 안에 자아로 충만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과 생각들로 충만하였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그 머리를 자기 백성에게 두신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이론과 생각들이 해체되고 철거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건물 7층에 독서실이 철거되고 다른 사무실이 들어온다고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자아가 철거되고 그리스도로 충만해지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에베소서 3:14~19절입니다. “봉독” 이미 본 말씀입니다만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역시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충만한 하나님의 충만을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이것이 성전이며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4~6절입니다.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우리 안에 사탄의 견고한 이론과 생각들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오셔서 모든 것을 다 해체하고 철거하여 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시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이란 우리의 모든 이론과 생각들이 철저하게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되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다른 말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충만함을 모두 받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