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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18~21 성령으로 충만함(3) 2013. 12. 8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성령으로 충만함에 대하여 세 번째 말씀을 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로 충만함이며 성령에 의하여 말씀에 충만한 것임을 지금까지 말씀드렸습니다. 말씀에 충만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지난주 마지막 부분에 보았던 말씀을 한 번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0:4~6절입니다.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성령으로 충만함이란 말씀의 충만함입니다. 말씀이 무엇을 합니까?


히브리서 4:12~13절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성령의 검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엡6:17).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예리한지 우리 안에 숨겨진 모든 마음의 생각들을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내시어 수술하십니다. 그 말씀의 능력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과 생각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부산에서 어느 전도사님이 종종 전화가 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인데 복음을 듣고 복음을 전하면 자기 맡은 부서의 학생과 청년들은 귀를 세우며 듣는데 담임 목사나 신학교에서는 미친놈 취급을 받는다고 괴로워하면서 하나님이 불공평하다는 항의도 많이 합니다. 제가 이럴 때는 아주 차분하게 답변을 합니다. 감히 땅의 티끌주제에 그런 항의가 나온다는 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면서 당신의 모든 이론과 생각들이 전부 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론과 생각이라고 구박을 많이 합니다.


성도는 모든 이론과 생각들이 이 땅에서 살아있는 동안 다 무너지고 부서져서 그리스도에게 반드시 복종하게 됩니다. 이 복종이 온전하게 되면 어떤 모습이 나올까요? 주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다 옳습니다. 저는 다 틀렸고 주님만 전적으로 옳습니다. 나를 죽이시고 지옥에 보내셔도 옳습니다. 이것이 복종입니다. 그런데 이 복종이 죽기보다 싫어서 얼마나 열심히 빠져나가려고 합니까? 말씀이 아주 분명하게 증거 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만’ ‘그래도’ ‘그러나’를 붙여서 복종하지 않고 빠져나갑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도 인용하며 복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와 반대로 열심히 순종한다고 하면서 기도와 구제와 금식까지 하지만 그 속에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론과 생각들이 들어있는 것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나저러나 간에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게는 반드시 그 모든 이론과 생각들을 부수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복종이 완성되면 복종하지 않는 자들을 벌하시기 위하여 주님 준비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4:1~3절입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떠나신다고 하시자 제자들이 근심을 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십니다. 전에 성경은 처소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처소와 거처가 무엇일까요? 황금보석 꾸민 집일까요? 그 처소의 재료는 우리의 공덕으로 만들어진다고 천국에 갔다고 왔다는 자들이 말합니다. 이들이 갔다가 온 곳이 천국이 아니라 지옥을 보고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말들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6~20절입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께서 마련하신다는 처소 곧 거처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구하여 또 다른 보혜사 곧 성령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성도와 함께 성도 안에 거하신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였듯이 자기 백성도 성령으로 그 하나 됨에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23절에 보시면 아버지와 아들이 그에게 가서 거처를 함께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마련하신다는 처소가 성령입니다.


출애굽기 15:17절에서 주의 처소를 삼으시기 위하여 출애굽 시키신 것처럼 오늘날 우리를 이 세상에서 구원하시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그 처소를 삼으시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와서 사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 놀라운 복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자아로 충만하여 있는 우리들인데 말입니다. 그 자아란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론과 사상과 생각들이 가득한 곳에 오시는 것 자체가 오직 은혜입니다. 그렇게 오셔서 지금 그 성전이 지어져 가고 있다는 말씀을 에베소서 2:22절에서 보았습니다.


이어지는 요한복음 14:26절을 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 오시면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이라면 성령운동을 하거나 성령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령운동 한다는 사람들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지 아니면 성경에도 없는 이상한 짓들을 하면서 그것이 성령의 사역이라고 하는지 잘 분별하셔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와 바울사도가 무엇을 증거 하였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고난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8절을 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 끝 까지 성령의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는 것은 우리가 증인이 되자고 결단하고 결심하여 이루어 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만들어 내신다는 예수님의 의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 하셔서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이 임한 자들이 무엇을 증거 하였습니까?


사도행전 2:33~36절입니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오순절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그 성령이 임하게 되자 제자들이 무엇을 증거 합니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4:6~11절입니다. “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천하 인간에 예수 외에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이 없다는 것이 성령이 충만한 베드로가 증거 합니다.


사도행전 9:17~22절입니다.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에베소서를 기록한 바울사도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며 가말리엘 문하의 바리새파로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핍박하고 진멸하려는 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자 바울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며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증거 합니다.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다는 말은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3일 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가 안수하여 기도하므로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눈에 무언가 덮여져 있던 것이 벗겨져 나간 것이기도 하지만 성경을 보는 눈이 뜨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1~3절입니다. “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말씀합니다. 옛 언약은 돌 판에 기록이 되지만 새 언약은 육의 마음 판에 기록이 됩니다. 예레미야 31장의 새 언약의 성취를 말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에 기록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였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왔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4~11절입니다.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지만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살리는 영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임하시면 새 언약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이것이 살리는 영의 일입니다.


이어지는 12~18절을 봅니다. “12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바울의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듯이 율법을 읽을 때에 그 모세의 수건이 벗겨져야 한다고 합니다. 이 수건이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집니다. 그래서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고 주의 영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며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함이란 주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성령이 충만하여 증거 한 내용들이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도 뿐임을 증거 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십자가의 도만이 구원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런 십자가에 마음이 없고 성령의 능력은 돈 주고 사서 자기 돈벌이로 사용하려고 한 시몬 같은 자는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행8:18~25).


갈라디아서 3:1~3절입니다.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는 것은 성령으로 믿었다는 말입니다. 성령으로 믿게 된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밝히 보여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완성을 부인하고 육체를 자랑하기 위하여 할례를 행하고 날과 달과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자들이 성령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마감되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며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자들 곧 성령이 임한 자들은 오직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게 됩니다. 이러한 성령의 충만함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밝히 보여 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