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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22~24 아내들이여! 2013. 12. 22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그동안 성령으로 충만함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이며 또한 말씀으로 충만한 것임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이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빌립보서 2장의 말씀처럼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내용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게 된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성령 충만의 결과가 복종인 이유를 다시 봅니다.


고린도전서 15:28절입니다.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만물이 아들에게 복종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만물이 아들에게 복종하게 될 때에 아들 자신도 복종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범사에 복종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악과의 유혹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이 유혹에 넘어간 인간은 하나님만이 만유의 주가 되시는 그 자리를 찬탈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려고 합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복종시켜서 자신이 만유의 주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힘과 돈과 권력을 가지고 남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군림하려고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들 이 세상에 속하여 태어났기에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내가 남에게 복종하는 것은 굴종으로 여기면서 어떻게 하든지 힘을 가져서 남을 많이 복종시키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런 힘이 나에게 없기에 신에게 찾아와 정성을 바치면서 힘을 달라고 합니다. 그런 힘들 중의 하나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능력을 행하여 모든 사람들을 내 앞에 무릎 꿇리고 싶어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함이란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 21~24절을 통하여 아내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지는 것이 무엇인지 보려고 합니다. 22절을 보시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아멘이 나오시는 분들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아멘만 하실 뿐 아니라 실제로 남편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반발이 일어나는 아내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 상태이기에 그런 반발이 나옵니다. 설교 시작하면서 성령으로 충만함에 대한 결론을 말씀드린 이유가 바로 이 말씀이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결혼 주례할 때에 신랑신부에게 질문합니다. 왜 결혼을 하십니까? 여러 가지 답이 나옵니다. 이미 결혼하신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왜 결혼을 하셨습니까? 역시 여러 가지 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대답들이 과연 성경에 나오는 내용인지 점검해 보시기바랍니다. 바울사도가 에베소 교회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미 결혼 한 자들도 있고 결혼할 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결혼이 무엇인지 자식과 보모와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 종과 주인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내에 대한 말씀입니다.


22절을 다시 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 말씀에 아멘이 되는 사람이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가 이 말씀을 에베소 교회에 전할 때의 사회는 대부분 가부장 사회입니다. 물론 모계중심의 사회가 있기도 합니다만 고대로 갈수록 여자는 남자에게 예속되어 있었습니다. 철학자들이나 종교인들도 남성이 우월하며 여자는 열등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남존여비의 사상은 아주 오래된 사상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사도가 이러한 세상의 원리들을 가지고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였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여성신학자들이 바울의 이러한 말로 인하여 가부장 제도를 강화시킨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들어간 곳은 여성들의 지위가 놀랍게 향상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27~28절을 봅니다.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었습니다.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로 옷 입었기에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가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입니다. 약 2천 년 전의 상황에서 이 말씀은 온 세상을 뒤집어 없는 혁명적인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복음이 들어가면 기득권 세력들이 가만히 두지 않고 핍박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고 온 세상을 요란하게 하는 자며 염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당시의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이 얼마나 높았는지 사도들이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서야 이방인에게도 우리와 같은 구원을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더구나 종과 자유인이란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신분의 벽이 있었습니다. 또한 여자와 남자도 얼마나 심한 차별이 있었는지 유대인들의 감사기도 제목 중의 하나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여자와 남자가 하나라는 것이 얼마나 혁명적인 내용입니까! 그런데 왜 바울사도는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하였습니까?


23절입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몸의 구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내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라 남자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마땅한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신부라고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남편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1:22~23절입니다. “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의 머리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만물이 다 그에게 복종해야 하는데 세상은 지금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만 복종하게 됩니까?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을 받은 교회만 그의 머리됨을 인정하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종은 여자나 남자가 다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내들을 향하여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비밀을 말씀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11~14절입니다. “11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갈라디아서 3:28절에서 이미 남자와 여자가 하나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본문처럼 이곳에서도 여자가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는 말씀과 여자가 가르치고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창조의 질서에서 남자가 먼저 지음 받고 나중에 여자가 지음 받았으며 또한 여자가 먼저 유혹을 받아 넘어간 것을 말씀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먼저 만드시고 하와를 만드시기 전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시면서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만드신 것이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남자와 여자의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처음 아담은 마지막 아담의 표상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옆구리에게서 하와가 나오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가 창에 찔려 물과 피를 쏟으심으로 자기 신부인 교회를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로 교회를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뱀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 유혹이 얼마나 교묘한지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을 받고 보니 따 먹으면 정녕 죽을 것이라는 말을 아담에게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 큼 탐스럽게 보이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남편의 말을 순종하여야 하는데 그 유혹에 넘어간 것을 지금 바울사도는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가 남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가정에서 남편에게 복종함을 통하여 남자가 먼저 지음을 받은 창조의 질서와 동시에 여자가 먼저 유혹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봅니다.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아담이 먹으면 죽는 줄 알면서 왜 받아먹었을까요?


로마서 5:12~14,19절입니다.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의 저주를 대신 받으심으로 자기 백성을 의롭게 하시는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은 그 남편을 통하여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 십자가를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남편이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폭력이나 쓰면서 이혼하자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사람은 복음 안다고 하면서 술을 먹고 아내를 패면서 죄인이라서 그런다고 하더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7:15절에 보시면 이혼해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남편이 믿는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고 합니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될 수 있게 때문이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3:1~4절입니다.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남편이 믿지 않는 자에게도 순종하라고 합니다. 아내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그 자세로 남편을 대할 때에 그 남편이 그 아내의 행실을 보고 구원을 받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이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5~7절을 봅니다.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다고 합니다. 신부의 단장은 세상의 꾸미는 일로 단장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에게 복종하는 것이 신부의 단장입니다. 그 예로 사라를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살기 위하여 두 번이나 아내를 팔아먹었는데도 순종하면서 예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사라를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아내 되신 분들이여 현재의 남편을 주께 복종하듯이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신부의 가장 아름다운 단장이 됩니다. 이것은 단지 아내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된 모든 교회를 향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유대인이나 헬라인니나, 종이나 주인이 다 하나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하여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45:10~11절입니다. “10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11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아내들이여! 교회들이여! 세상이라는 친정을 잊어버리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한 그 사랑으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